내 눈이 보는 것만 믿어요
정교한 묘사가 지배하던 시대…신속하고 자유분방한 붓터치로 미술계를 충격에 빠뜨리다

파리 명소인 오르세미술관에 가면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드가, 세잔 등 거장들 대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사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인상주의 화가라고 부른다. 인상주의 그림은 지금은 대중에게 인기가 높지만 처음에는 동시대인에게 냉대를 받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되돌아가면 보수파들이 왜 모네를 그토록 비난했는지 이유를 알게 된다. 모네는 당시 미술의 전통과 규범을 전복하는 파격적인 화풍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참신한 소재와 혁신적인 기법 동원

수세기 동안 미술계를 지배한 아카데미 화가들이 신봉했던 주제는 성경, 역사, 신화, 문학이었다. 이런 고상한 주제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데 적격이었다. 그러나 모네는 아카데미 화가들이 열광했던 진부한 주제와 결별하고 현대적인 소재들을 발굴했다. 예를 들면 일출, 안개, 눈, 구름, 파도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변화하는 대기 혹은 도시민들이 행락지에서 여가를 즐기는 다양한 모습 등이다.

모네가 동시대 미적 취향에 반하는 평범하고 사소한 소재들을 개발한 까닭은 무엇일까. 빛이 사물 형태와 색채를 결정짓는 요소라는 것을 그림으로 증명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모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그림 내용이 아닌 화가 눈이 포착한 그 순간 인상을 화폭에 표현하는 것이었다.

모네는 첫인상을 포착하기 위해 야외에 나가 자연을 직접 관찰하는 한편 마치 스케치하듯 신속하게 붓을 놀리면서 자유분방하게 색칠하는 기법인 모네표 붓 터치를 창안했다. 세부 묘사를 생략한 거칠고 재빠른 스케치풍 기법은 미술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왜냐하면 당시 대다수 화가는 작업실에서 정교한 테크닉을 발휘해 공들여 묘사한 그림을 최고로 여겼기 때문이다.

모네는 왜 대상을 꼼꼼하게 묘사하지 않았을까. 세심하게 묘사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신들린 듯 재빠르게 붓질하지 않으면 순간적인 대기의 인상을 포착할 수 없었으니까. 첫인상을 캔버스에 채집하려는 그의 열망은 `야외에서 햇살이 나뭇잎에 비쳤다가 사라지기까지 단지 7분이 걸린다`는 어록에서도 드러난다.

만일 독자가 모네의 풍경화와 아카데미풍 그림을 비교한다면 차이점을 확연히 깨닫게 되리라. 모네의 풍경화는 참신하고 생동감이 넘치며 현장에서 그린 그림답게 날것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스냅 사진이 더 자연스럽고 실감나게 느껴지듯이 말이다. 그러나 기교적인 그림에 길들여진 미술평론가나 관객 눈에 비친 모네표 화풍은 마무리가 덜 된 초벌그림에 불과할 뿐이었다.

모네의"일출"
독창성으로 미술사에 새 지평 제시

모네는 원근법을 적용해 사물을 최대한 정확하게 묘사했던 아카데미 미술 전통을 따르는 대신 자기 눈이 포착한 순간의 인상과 시각적 자극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화풍으로 미술사 지평을 넓혔다. 비평가 뒤레는 새로운 미술 영역을 개척한 모네에게 이런 찬사를 바쳤다. "모네는 그의 선배들이 간과했거나 붓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믿었던 재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인상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자, 이제 모네가 미술사 리더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을 정리하자. 그는 마이너리티였지만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주류미술계에 대담하게 도전해 승자가 되었다. 만일 그가 전통과 관습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거나 동시대 취향에 영합하는 그림을 그렸다면 오늘날과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으리라.

시대 변화를 꿰뚫은 예리한 통찰력이 모네가 미술사 거장으로 등극한 비결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그는 네 눈이 보는 것이 아닌 내 눈이 보는 것을 믿었다. 내 안의 힘을 발견하고 그 힘을 믿고 따르는 용기와 주체성에 대한 자각이 바로 모네의 리더십이 후세인들에게 주는 값진 선물이다. <-매일경제 2010.8.21
http://news.mk.co.kr/v3/view.php?year=2010&no=450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