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미술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러한 최근의 상품화시대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오히려 그만큼 미술의 공급과 수요가 어느 정도는 균형을 이루었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한 때 필자는 한국에 미술대학과 작가가 너무 많지 않나 생각했는데 최근 경제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화랑은 줄지 않고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구매도 증가하고 시장의 규모도 커졌을 뿐 아니라 이제 한국 화랑들의 입지도 한층 더 글로벌해졌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제 심심치 않게 한국 작가들도 외국 비엔날레에 제법 빈번히 이름을 올리고 글로벌하게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우리 미술계가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국내외의 여건들이, 특히 한국경제의 눈부신 발전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사실이며 더욱 더 전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유행이나 상품화시대에 편승하기보다는 국적있는 시각문화의 창출에, 그의 인프라 구축으로 시선을 우리 안으로 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창섭전, 한국적 모더니즘의 정수
그런 의미에서 지난 8월 초에 회고전을 가진 한국 모노크롬 회화의 대부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정창섭의 회고 전시는 한편으로는 시대착오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새롭고’신선하게 다가왔다면 역설일까. 해방 후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한국 현대미술의 1세대 화가인 정창섭의 화력은 앵포르멜/추상표현주의로 시작하여 단색화 경향을 거쳐 한지의 재료인 닥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작업방식으로 이용해“한국의 전통적 삶의방식이자 민족 공동체적 기억”을 되살렸다는 호평을 받았던 <닥>, <묵고>등으로 발전시켜간 여정이었다. 캔버스와 유화 대신에 닥의 물성을, 붓 대신에 손을 이용해 자연과 자신의 온전한 합일을 추구했던 그의 작업은 조선의 선비의 고아한 세련미와 격조는 물론 오랜 창호지에서 묻어나는 세월의 연륜과 울림을 느끼게 해주고 있어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한국적 모더니즘의 정수’를 고고하게 드러냈다. 현란한 스펙터클이 난무하거나 잡다한 무용담, 기괴한 아노말리, 아니면 정치사회담론이나 일상적 네러티브에 편중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과는 사뭇대조를 이루는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