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휴일이던 지난주 일요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다녀왔다. 춥지 않고 맑은 날씨에 가을 특별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로 고색창연한 미술관 건물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이날로 끝나는 전시가 꽃과 풀, 새와 짐승을 담은 그림을 모았기 때문인지 어린아이 손을 잡고 온 가족 단위 관람객이 유난히 많았다. 1층과 2층의 넓지 않은 전시실에는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명품들을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려는 인파가 길게 줄지어 있었다.

일제시대 우리 문화재의 수호자였던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 선생의 수집품을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미술 박물관이다. 훈민정음 초간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등 국보 12점과 보물 10점을 비롯해서 수천점의 문화재를 갖고 있다. 고서화와 도자기가 중심이며 정선·김정희·장승업 등 조선후기 대가들의 그림은 100점 넘게씩 소장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보아야 할 민족예술의 전당으로 꼽힌다.

그런데 간송미술관은 다른 미술관·박물관과는 달리 상설전시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 5월과 10월에 각각 보름씩 특별전시를 마련해 100점 남짓한 소장품을 일반에 공개한다. 그래서 봄과 가을이면 간송미술관 가는 길은 인파로 북적인다. 신윤복의 '미인도' 등 조선시대 서화(書畵)의 걸작을 추려 내놓았던 2008년 가을 특별전시 때는 20만명이 넘게 몰리는 바람에 관람객들이 빗속에 몇 시간씩 마당에서 줄지어 기다려야 했다.

간송미술관은 '연구 중심'을 표방한다. 1971년 가을 첫 특별전시 이래 전시회에 맞춰 간행되는 해설·논문집 '간송문화(澗松文華)'와 각종 자료집들은 한국문화사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최완수 연구실장과 그 제자들로 이루어진 '간송학파'는 조선후기 문화를 집중조명해서 '진경(眞景) 시대'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이처럼 간송미술관은 1966년 설립 이래 빛나는 연구업적을 내놓았다. 그러나 간송미술관의 소중한 문화재들을 보다 많은 사람이 언제라도 마음껏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또한 일찍부터 강력하게 제기돼 왔다.

간송미술관이 엄청난 소장품을 규모 있게 상설전시할 건물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1938년 지어진 현재의 미술관 건물 '보화각(華閣)'은 당시에는 최신식이었지만 이제는 좁고 낡아 불편하기 짝이 없다. 간송미술관의 새 건물을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짓는 것은 어떨까. 국가나 서울시가 적당한 곳에 새 건물을 짓고, 간송미술관은 소장품을 대여하는 것이다. 물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미술관 운영과 소장품 관리에 관한 관련자들의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간송 선생이 일제시대에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전 재산을 던졌던 정신과 간송미술관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내년이면 간송미술관이 특별전시를 시작한 지 40년이고, 2016년이면 개관 50주년을 맞는다. 그 사이에 우리 민족문화의 보배들로 꽉 채워진 상설전시실을 가진 새 간송미술관이 모습을 드러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박물관을 하나 갖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