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김광림] 문화가 산업인가?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며 이른바 ‘문화산업’이라는 것이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는 국내 관객 1000만 명을 넘어서 산업으로서의 가치를,그것도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서의 가치를 만방에 태극기보다 더 멋지게 휘날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문화가 산업인가,나아가 문화가 과연 산업으로 인식되어 산업적 방식으로 재단되어도 괜찮은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와 세계화는 세상의 모든 가치를 자본과 무역의 대상으로 환산하면서 무섭게 세계를 지배해 가고 있다. 세계화는 전세계를 ‘미끄러운 시장’으로 만들어 세상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어 어디든지 자유무역의 미끄럼틀을 타고 구석구석 스며들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가고 있다. 얼마 전 정부는 한-칠레 자유무역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우리의 자동차와 휴대전화를 남미의 손에 쥐어 주는 대신 우리의 식탁을 그들에게 열어주었다. 단순화하면 휴대전화 시장과 포도 시장의 1 대 1 맞교환이지만 이는 사실 있을 수 없는 거래다. 없어도 생명과 관계되지 않은 휴대전화와 우리의 생명활동과 직접 관계가 되는 ‘먹을 것’을 바꾸는 행위는 우리의 생명을 남의 손에 쥐어줘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휴대전화와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도 인간은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밥’만으로 사는 동물이 아니다. 인간의 삶에서 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문화다. 인간적 삶의 본질에는 ‘문화’가 배제될 수 없다. 인간의 배를 채워 활동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밥이라면 인간의 정신과 감정의 활동을 가능케 해주는 에너지원은 바로 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이 인간 삶의 본질 두 가지-먹을 것과 문화-에는 국가 차원의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이는 외국과 서로 교류는 할지언정 산업이나 무역처럼 돈의 가치를 따지는 교역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문화를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적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태도다.
‘쥬라기 공원’ 영화 한편 만드는 것이 현대자동차 몇 만대 파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영화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과거 어느 대통령의 문화에 대한 인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문화가 산업임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영화산업의 ‘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력을 받았던 것이고,우리는 문화는 산업이 아니니까 개방의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를 할 수 없었고,그래서 영화인들은 시위도 하고 삭발도 하며 투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분적이지만 우리 영화의 보금자리를 지켜냈기 때문에 지금이나마 한국 영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영화의 경쟁력이 이 정도 되었으니 이제 스크린 쿼터를 폐지해도 될까. 아마 대다수의 영화인들은 목숨을 걸고 반대할 것이다. 거대한 자본력을 가진 괴물과도 같은 할리우드 영화가 자유경쟁의 통행증을 손에 쥐고 이 땅에 들어와 우리의 정신세계를 집어 삼킬지 모르는 일인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문화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인간이 여러 음식을 통해 갖가지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듯이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재 잘 나간다는 우리 영화 몇 작품에 관객들이 엄청나게 몰려드는 현상을 보면 우리 영화의 발전에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영화의 산업화는 상업주의로의 획일화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문화는 문화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 이 역시 영화라는 문화를 자본으로 환산하는 인식의 관성이 작용한 탓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지만,문화는 산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문화는 인간 삶의 본질로서 어떠한 가치로도 교환되어서는 안 되며 그 다양성을 생명력으로 인간 삶의 풍요와 만족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설사 조금 덜 먹고 덜 입더라도 풍족한 문화적 삶을 누릴 수 있는 전통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다.
- 국민일보 2004.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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