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받은 연평도의 모습에 놀라고 ‘보온병’ 해프닝에 또한번 놀랐던 12월의 가슴은 일상의 평화마저도 치열하게 지켜내야 하는 어떤 것임을 생각하게 했다.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각종 행사로 늘 가슴 콩닥거렸지만,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더 떨리는 기분이다.

미술대학에서도 12월이면 졸업전이 열린다. 그리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전시장마다 화환이 즐비한 풍경이 낯설지 않다. 학생들의 졸업전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화환에 가려서 작품이 잘 안 보여도 화환이 없으면 섭섭한지 물었다. 수줍어하면서도 모두 “네~”라고 대답한다. 이미 인정받은 작가들이 ‘촌스러워’ 보이지 않기 위해 화환을 치우는 것과 비교하면 그들의 결핍은 내 심정을 복잡하게 이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졸업전을 다 치르고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듣지 못하게 될 때의 외로움은 또 어떤 것일까.

미대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진로에 관한 주변 사람들의 반대를 겪었을 것이다. 그런 반대에 항변이라도 하듯 그들은 4년 동안 작품에 몰입했고, 그 4년을 결산하는 졸업전시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전전긍긍하면서도 이 땅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하는 스펙 쌓기와는 담쌓은 채, 이 불안한 시대에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불확실한 미래에 내던져진 미대 졸업생들, 그 옆에 엉거주춤 서 있는 화환을 보며 나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졸업 후 겪어온 20년과는 다른 미래가 펼쳐지리라고 그들에게 말할 수 있을까. 젊은 예술가들의 고통조차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평준화된 지는 이미 오래고,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더욱이 예술은 외롭고 배고파야 나온다는 편견 때문에 예술종사자들은 이중차별의 굴레 속에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내게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작업을 해나가는 데 현실적으로는 손해일 뿐이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제 그들이 나설 미대 4년 이후의 삶은 일반적인 비정규직보다 더한 불안과 사회적 조소에 처해 있을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물론 졸업 후에도, 부모님의 절대적 후원을 받으며 예술에만 전념하는 행복한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예술을 위해 꿈꾸고 선택했던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삶은 생존에 떠밀려 끊임없이 포기를 종용받는다.

이 수많은 미대 졸업생은 다 어디로 가는가. 매년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는 미대 졸업생들이 내게는 너무나 다치기 쉬운 존재들로 비친다. 비정규직 규모가 60%에 달하는 이 시대에, 미대 졸업생들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보장체계를 마련하라고 요구한다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배제된 자들의 정치적 주체화’를 말했던 자크 랑시에르는 노동과 실업의 경계에서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예술적 실천과 생산물이 나눠지는 것을 꿈꿨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에서 순수예술, 디자인 그리고 콘텐츠의 주체는 자본이거나 공무원의 몫이다. 그저 게걸스러운 시선으로 화환을 던지거나 딱지를 붙이는 이 세상은 감각하고 지각하는 일을 랭킹과 랜드마크의 문제로 변질시킨다.

상념 속에 썰렁한 졸업전시 공간의 복도를 거닐다 문득 ‘콩알 탄을 던지는 친구들’을 찍은 영상을 마주하게 됐다. 그 옆에 화환은 없었다. 밀란 쿤데라는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하고 그 패배를 이해받고자 애쓰는 것’이 창작의 동기라고 말했다. 형용할 수 없는 슬픈 발견을 부여잡는 그들에게 내 마음의 화환을 보내고 싶다.<-경향 2010.12.1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2162215115&code=99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