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행들과 남대문시장에서 삼청동의 한 카페까지 걷게 됐다. 1시간을 훌쩍 더 걷다보니 평소와 달리 태평로, 세종로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처럼 새 의미들이 비로소 다가온다.

숭례문 자리엔 거대한 가림막이 처져 있다. 고려말·조선초 건축의 위용을 자랑하던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숭례문. 자취만 남았다. 처참하게 불길 속에서 무너져내린 게 2008년 2월이니까 3년이 다 되었다. 10여년 전에 숭례문에 올라본 적이 있어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숭례문은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600여년의 세월을 품어온 곳으로 서울을 상징했다. 우리는 그 상징을, 서울에 남은 목조건축물 중 최고(最古) 문화유산을 불태워 버렸다. 걷다보니 시청 앞 서울광장이다. 독재정권을 쓰러뜨린 민주화운동,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든 월드컵 응원 등 한 시대가 아로새겨진 생생한 현장이다. 하지만 광장이란 이름이 부끄러운 광장이다. 광장은 당연히 누구에게나,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할 공간이지만 황당하게도 현 정부는 자주 막았다.

광화문광장은 더 당혹스럽다. 열면서부터 광장의 사회적 의미, 도시의 기능과 개조, 디자인 등을 놓고 숱한 논란을 불렀다. ‘한국의 대표광장’을 표방하며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차량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인식을 전환했다는 광장. 눈이 내린 광장은 걷기조차 조심스럽다. 지난해 여름, 뙤약볕 한 조각 피할 수 없던 불쾌한 생각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편하게 모여들어 나른한 봄볕을, 여름엔 그늘을, 가을과 겨울엔 낙엽과 눈을 즐기며 차 한잔 하는 곳이 광장 아니던가. “튼실한 역사·문화의 뿌리에서 이렇게 천박한 열매가 맺히다니….” 일행 중 한 명이 한탄한다.

포럼에 초대합니다광화문을 지난다. 조선왕조 정궁인 경복궁,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그 광화문의 얼굴이 현판이다. 복원된 광화문 현판은 지난해 광복절을 맞아 큰 관심 속에 내걸렸다. 하지만 단 석달 만에 갈라졌다. 정부는 결국 바꾸기로 결정했다. 흐흣,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난다. 이 부실한 복원은 정치적 이유에 따른 공기 단축 혐의가 아주 짙다.

서울의 한복판, 쭉 뻗은 태평로와 세종로를 걷다보니 이 시대 우리의 문화 수준,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의 단면이 드러난다. 문화유산은 보존과 관리, 복원 그리고 현대적 계승으로 그 가치가 높아진다. 의미가 풍성해진다. 숭례문은 보존·관리의 허술함을, 광화문광장은 현대적 계승의 부실함을, 광화문 현판은 복원 의미의 무지를 잘 보여준다. 보존과 복원, 현대적 계승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은 셈이다. 2011년 1월, 서울 한복판의 풍경이다.

문화유산은 역사의 보물창고라 불린다. 깨진 도편 하나, 빛바랜 그림 한 폭, 공예품 조각은 귀중한 사료다. 그 문화재에는 당대의 시대정신과 가치관, 철학적 사유, 장인의 솜씨와 삶의 흔적까지 녹아 있다. 그래서 어느 민족·나라나 문화재의 보존·관리와 복원, 나아가 창조적이고 현대적인 계승을 강조한다. 가보가 한 가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구성원 통합에 역할을 하듯, 한 민족·나라의 문화유산도 마찬가지다. 자긍심이자 자부심의 원천이다.

아무리 물질적 풍요를 누리더라도 정신적 풍성함을 갖지 못한다면 늘 삶에 허기진다. 공허함에 몸부림친다. ‘왜 밥을 먹지?’라는 질문 한번 던지지 않는 배부른 삶의 한계다. 한 나라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만 보는 정책 입안자, 그 나라는 그저 배부른 돼지일 뿐이다.<-경향 2011.1.1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1122107025&code=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