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엄동설한에도 대학 캠퍼스만은 '미래인재'를 식별하는 열기로 뜨겁다. 최근 필자는 예년처럼 수도권 9개교로 구성된 연합관리 미술계열 실기 채점에 다녀왔다. 9대1 경쟁률에 비해 평가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른바 '연합관리'는 공정한 듯해도 맹점(盲点) 또한 없지 않다. '제 대학, 제 학생'이 아니라 '딴 대학, 딴 학생'을 뽑는 태생적 한계가 그것이다. 돌이켜보면 대학 불신, 교수 불신이 이런 어정쩡한 자업자득의 고육책(苦肉策)을 낳았다.

'발상과 표현' '사고의 전환' 등 창의성(creativity)과 상상력(imagination)을 묶은 '창상력(創想力·cremagination)'의 능력을 판단할 과목의 명칭들은 다채롭되 도화지 위의 그림은 단조로워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출제자는 수험생들의 창상력을 재보려 하지만 사교육의 해묵은 편향적 밀물에 휘둘려 그 노력도 썰물로 빠지는 형국이다. 틀에 박힌 암기식 '천편일률', 도토리 키재기 식 '막상막하' 답안지들만 드넓은 심사장 바닥에 빼곡히 누워 있다. 눈 부릅떠 다시 봐도 '붕어빵 그림' 미대입시의 실상이다.

발상이 다르면 표현도 달라진다. 발상 자체부터 획일적이니 '사고의 전환'도 당연히 기대하기 어렵다. 붕어빵 그림의 진원지는 단연 사교육 시장이다. 학부모들의 구부러진 허리는 붕어빵만 양산하는 몇몇 학원들의 배만 불린다. 이런 고질적 소모행사가 아직도 건재하니 딱하다. 선진국처럼 미술학원 안 다니고도 미대를 갈 수 있어야 '정의'로운 진짜 공정사회다. 사교육비를 없앨 획기적인 '통 큰'(?) 제도라도 내놔야 '묻지 마 평가'의 복불복(福不福)도 피할 수 있다. 로댕은 "예술은 모방 아니면 혁신"이라고 했다. 모방의 길은 비좁고 혁신의 길은 드넓다. 창상력을 갖춘 한국판 빌게이츠는 이런 토양에선 나오기 어렵다. 수학엔 공식이 있어도 예술엔 그 어떤 공식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학원에서 외운 틀 위에 대학에서 출제한 주제만 갈아 끼우는 패턴의 악순환을 막으려면, 시간은 걸려도 수험생 개인별로 다양한 평가를 거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눈 밝은 대학의 개선 의지다. 그림과 글은 둘 다 '생각의 표현'이다. 혹시 입시논술조차 외운 공식 틀에 주제와 관련된 단어만 바꿔 끼우는 '붕어빵 논술'인지 궁금해진다.
<-조선 2011.1.1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1/17/20110117023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