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대학 입시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그리기·만들기 능력보다 창의력과 잠재력, 학습능력과 개성을 우선시하는 비실기 전형이 그것이다. 이는 실기시험 비중을 거의 또는 완전히 없애고 내신과 수능·자기소개서·특별활동 내역 등을 중심으로 한 서류 입시전형을 말한다. 시행 학교가 아직 많지 않지만 미술대학의 21세기 발전방향에 적합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이런 제도는 사교육을 경감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입학사정관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미 소규모 미술기관인 사디(SADI·삼성디자인학교)가 15년 전부터 시행해 매우 큰 교육 효과를 거뒀다. 입학 당시 지원자의 실기 실력 못지않게 오히려 어떤 매체를 다루든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이해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부각시켰다.

미대 입학을 위해 일찍부터 학원에서 준비해 온 한국의 많은 수험생은 드로윙을 포함한 높은 이미지 제작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복잡한 지문을 주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문제에는 불충분한 표현력을 보여 왔다. 또한 다른 학문 분야에 대한 이해나 사회적 연계 능력도 부족해 전통적인 이미지 제작 외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즉 실기 전형은 사고력을 기술력만큼 중시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그래선지 최근 홍익대가 비실기 전형 확대를 발표했다. 몇몇 대학에서도 지원자의 잠재된 사고력과 창의성을 평가하기 위한 다양한 단계를 제공하는 등 입시제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제 미술대학들은 종합적인 사고력과 열린 감성을 총체적으로 테스트하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비실기 전형이 효과를 거두려면 선결조건이 필요하다. 미술의 표현도구인 매체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충분한 표현력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잘 짜인 커리큘럼을 준비해야 한다. 이들을 위해 1학년의 기초(파운데이션) 과정을 제공하는데, 여러 가지 상이한 목적으로 점차 많은 학교에서 이걸 채택하고 있다. 입학생들을 상대로 매체 장악력과 함께 창조적 발상, 사물에의 이해력 등을 어떻게 균형 있게 발달시키느냐 하는 것은 각 과목 간의 수평적 연계와 상하 과목 간의 심층적 연결의 완성도에 달려 있다. 대학이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부분이고, 입시제도 변화의 선결요건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언제나 완전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실기 전형이 미술에 일찍부터 재능을 갖춘 지원자에게 기회를 박탈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학업 능력이 뛰어나지만 시각예술의 표현에 어눌한 지원자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미술에 대한 열정·흥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매체에의 숙련도·표현력이 대한민국 미대생들의 가장 큰 경쟁력인데, 그것을 더욱 향상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실기 능력이 우수한 지원자를 비롯해 다양한 인재를 뽑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식은 무엇일까. 학교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인재상을 분명히 하고 옥석을 가려내는 방법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21세기 요구에 맞춰 훨씬 더 전문적으로 학생들을 육성해야 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문제 해결 능력’ 강화다. 어떠한 조건이나 환경·매체를 통해서도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기술적인 숙련만으로는 부족하다. 폭넓은 시각과 실천력, 개념·아이디어를 포함한 사고의 기발함이 있어야 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남과 다르게 접근할 뿐 아니라 다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미대가 이에 맞춘 새로운 입시제도를 제시할 때 젊은 지원자들은 자신에게 숨겨진 또 다른 능력을 발견할 계기를 만날 것이다. <-중앙선데이 2011.1.30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0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