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가 있는 아침]영화로 그린 성화
서양예술을 이끌어온 2개의 바퀴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특히 기독교 정신을 구현한 헤브라이즘은 서양문명 자체를 일구어낸 원동력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예수의 생애는 서양예술의 가장 중심이 되는 대표적인 모티브였다. 서양의 무수한 예술작품 속에서 예수는 언제나 중심에 서있었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예수의 고난과 순교는 익히 아는 이야기이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는 예수 사후에 가장 훌륭한 종교의 하나로 성장하여 인류문명을 이끌어온 셈이 되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도 이 뻔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전개과정이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을 2시간 가까이 꼼짝 못하게 만들고, 한동안 예수 고통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마력은 무엇일까.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예수 손바닥에 쇠못을 박는 장면을 영상이 아닌 소리로만 처리했는데도 손바닥이 저릿할 정도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쉬운 영상언어 감동선사-
감독은 과학적 사실과 상식에 근거한 상황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예수 고통의 실재감을 만들어냈고, 관객은 그 고통이 담긴 영상과 소리를 통해 마치 예수의 고통을 체험하기라도 한 것 같은 일체적 감동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서양미술사 속에서 무수한 작가들에 의해 다루어져 왔다. 그들 중 대부분은 성스러운 모티브로 표현되어 ‘액자 속에 들어있는 성스러운 그림’ 정도로만 인식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의 혹독한 고통을 실감케 하고, 고통을 가하는 인물들의 잔인한 악마성을 대비시킴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분노까지 느끼게 해준다. 그러한 고통을 준 이들을 용서하라는 성서의 메시지가 이처럼 실감나게 표현된 이 영화는 서양미술사 속의 그 어떤 성화보다도 더 강한 울림을 준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이처럼 예술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적 언어에 충실했다는 데 있다. 내용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영상과 소리, 음악을 통해 시청각적인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뻔한 이야기와 아주 쉬운 영상언어로.
최근 우리 예술계에서는 탈장르와 퓨전문화의 유행으로 각 예술언어의 혼란이 심해지고 있다. 본연의 예술언어는 진부한 표현양식으로 치부되고, 잡종 예술언어만이 새롭고 진취적인 것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미술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미술언어만을 고집하며 시각적 감동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작가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반면 과학적 기술이나 영상, 건축, 음악, 무용 같은 것을 혼합하여 새로운 표현방식을 만들어내겠다고 나서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퓨전문화만 새로운가-
물론 예술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도 커다란 가치가 있다.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예술형태를 창출해내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한 시도는 서양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그 덕분에 19세기 말 종합예술인 영화가 탄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1세기를 거치면서 독보적 영화언어를 만들어냈고,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로 자리잡았다. 영화가 영화적 언어로 예술의 영역을 넓혀주었다면 미술도 본연의 언어로 깊이를 더할 때 생존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예술에서 새로움은 다양한 예술언어를 혼합한 표현방식의 확장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경향신문 2004. 4. 17<<
다시읽기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