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광장 예술이 뭐기에… 전업작가들의 고행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안타까운 요절
“이제사 삶에 거침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중견 전업작가들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림만 그려서 먹고산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말 속에는 많은 것들이 함유돼 있다. 어떤 이는 아기의 분유가 떨어졌다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공사판과 대리운전을 전전하기도 했다. 한 작가는 인테리어 공사장에 몸을 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붓과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괴감에 빠져 절망하기도 했다. 그리 해도 무위도식한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흔히 듣는다.

하지만 이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그래도 붓을 끝까지 부여잡았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붓을 꺾고 아예 생계전선으로 뛰어들게 마련이다. 전업작가란 당당한 타이틀을 내세우기까지 이들은 미래의 걱정거리들을 화폭에 녹여내며 수많은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는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이다.

“작가로서 정신적 자유를 누리는 만큼의 대가라 할 수 있지요. 환경적인 부족함과 고독은 하늘이 창작자에게 주는 천형이라 할 수 있어요.” 이들은 그림을 위해 일정 부분 감수하는 자세를 가졌다. 모든 것을 가지려는 욕심에서 일정 거리를 유지했던 것이다.

오히려 먹고사는 일이 ‘심각한 일’에서 ‘사소한 일상’이 됐다. 언제든지 어떤 일도 할 수 있다. 그런 시간이 이젠 그림만을 가지고 사는 삶이 되도록 했다.

“돈 벌어서 그림 그리겠다는 친구들은 모두 그림판을 떠났어요. 먹고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짐에 눌려버리면 예술가의 길을 가기 힘들지요.” 나름의 고뇌도 있었겠지만 전업작가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삶의 승리자란 생각이 든다.

나름의 입지를 굳힌 한 전업작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내가 생활비 걱정을 하면 즉시 자그마한 좌판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졸업식장 꽃 장사부터 해본 일만 100가지가 넘는다. “먹고사는 일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가 돼야 합니다.” 그를 보면 삶에 거칠 것이 없다.

그렇다면, 예술이 뭐기에 그리해야 하는 걸까. 고인이 된 미국의 화가이자 미술교육자였던 로버트 헨리는 자신의 책 ‘예술의 정신’에서 명확한 답을 주고 있다. “예술이란 어떤 일이든 잘 해낸다는 개념이다. 그것은 결코 우리 생활 밖에 있는 여분의 어떤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예술가의 정신이 살아 있다면 그는 어떤 일이든 창의적이고, 탐구적이며, 과감하게 자신을 표현하려 할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다른 사람에게 흥미로운 사람이 된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놀라움을 주고, 깨달음을 주고, 나아가 사물을 더 잘 이해하는 길을 열어준다.” 예술정신을 갖고 삶을 가꾸어 갈 때 각자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얘기다.

전업작가로 살아남은 이들은 예술로 끝장을 보겠다는 용기와 정열을 가진 이들이다. 그리고 혼자가 될 각오도 한 이들이다. 고독 속에서 자신을 알고 자신을 성장시킨다. 대중에 휩쓸려 붓놀림을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감동과 영감은 그래야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로버트 헨리는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출세를 위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수정하는 사람과, 출세와 무관하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절대적으로 믿으며 밀고 나가는 사람이다. 첫 번째 부류가 압도적 다수이지만 그들은 모두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 부류야말로 이 세상의 진정한 자유인이다. 비록 가난에 허덕이고 감옥에 가더라도 그들은 자유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늘 가난에 시달리고 감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언제나 바보의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다. 진리를 ‘보여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진리를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작가들은 시대의 감수성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이들이다. 도심 속 산골풍경을 지니고 있는 서울 부암동 뒷 산골에서 작업하고 있는 50대 전업작가는 요즘 인디언 관련 책들을 탐독 중이라 했다. 환경문제를 화두로 작업하고 있는 그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오랜 전업작가 생활은 그를 명상가로 만들었다. 인디언 세계관과의 조우도 그런 과정에서 얻어졌다.

그는 인디언의 세계관을 원시적이거나 미개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인식하고 있다. 그가 한 추장의 글을 소개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주는 피처럼 같이 맺어져 있다. 사람이 생명의 그물망을 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로 맺어져 있는 생명의 그물망에서 한 가닥에 불과하다. 생명의 그물망을 해치는 짓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예술을 업으로 하는 전업작가들은 이렇게 시대의 촉수가 돼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고 들여다보게 해준다. 그만큼 가치 있는 효용성도 없을 것이다. 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은 그래서 우리 사회의 큰 손실이다.<-세계 2011.2.11
http://www.segye.com/Articles/News/Opinion/Article.asp?aid=20110210004977&c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