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연구원 원장그림과 금융, 정말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주제다. 하지만 역사적 발전과정을 보면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다. 전통적 시대를 거쳐 현대 모더니즘 시대로, 다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발전하는 과정은 마찬가지다.

예술에서 말하는 ‘현대성’이란 예술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의미다. 회화로 말하면 문학 등 다른 예술 장르에 대한 종속에서 벗어나 회화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탐구해 가는 것이다. 19세기 말까지 회화는 재현(representation)의 예술이었다. 무엇인가 그리려는 대상이 먼저 존재하고 이를 화폭에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전통적 회화의 목표였다. 대상의 재현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 회화 고유의 특성인 ‘평면성’을 추구한 것이 바로 현대미술이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회화의 재현은 ‘그리려는 대상과 닮은 정도’를 의미하는데 금융의 재현은 ‘실물경제와의 근접성’을 뜻한다. 1980년대 이전까지 금융은 실물을 보조하는 종속된 존재였다. 사정이 달진 것은 80년대부터다. 금융이 자유화하고 금융자산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넘어서면서 금융도 스스로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마치 회화가 대상을 재현하는 데서 벗어난 것처럼 금융도 실물을 보조하는 데서 벗어나 ‘금융을 위한 금융’으로 발전했다. 세잔과 마네, 피카소가 현대회화의 장을 열었듯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헤지펀드가 현대 금융을 이끌었다.

예술은 영원하지만 예술 사조는 유한한 것. 60년대 미니멀리즘 회화와 팝아트의 등장으로 모더니즘 회화는 힘을 잃고 포스트모더니즘에 권좌를 넘겼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은 무엇보다 ‘경계 허물기’와 ‘섞임’이다. 예술 양식 간, 예술 장르 간, 심지어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간의 구분 자체가 모호해졌다.


금융의 포스트모더니즘은 99년에 시작됐다. 80년대 시작한 현대금융은 시간이 흐르며 섞임과 경계 허물기가 진행됐다. 미국에서 1999년 ‘금융서비스 현대화법’이 제정돼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분리를 핵심으로 하는 ‘글래스-스티걸법’이 무력해졌다. 금융에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온 것이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섞이고 이들과 헤지펀드들이 연결되면서 금융상품도 변형돼 갔다. 회화만의 정체성을 추구하던 모더니즘이 막을 내렸듯 금융에서도 금융사들이 개성을 잃고 비슷해졌다. 투자은행은 헤지펀드를, 상업은행은 투자은행을 모방했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다.

미래 금융은 어떻게 변할까. 위기 후에도 ‘섞임’을 특성으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금융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회화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여전히 건재하다. 지난해 제정된 미국의 ‘금융개혁법’을 보더라도 분리를 통한 금융의 정체성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만큼 포스트모더니즘 금융이 뿌리깊이 박혀 있다는 말이다. 금융의 또 다른 미래 방향은 과거로의 회귀다. 지나친 섞임에서 벗어나 분리된 금융사들이 실물부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바로 주요 20개국(G20)이나 금융안정위원회(FSB)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개혁 방향이다.

미래 금융과 관련해 참고할 만한 회화 사조가 있다. 바로 극(極)사실주의(hyper-realism)다. 말 그대로 사진보다도 정확하고 세밀하게 대상을 묘사하는 사조다. 과거 19세기 사실주의와 다른 점은 특정 부분을 선택해 지나칠 만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의 극사실주의는 무엇일까. 선택된 실물 부문과 극도로 밀접해진 금융이다. 조선업 금융, 원전설비 금융, 반도체 금융, 생명공학 금융, 우주개발 금융처럼 말이다. 금융사도 그렇게 전문화할 수 있다.

그림도, 금융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금융에도 극사실주의가 등장해 회화에서처럼 각광받을지 두고 볼 일이다.<-중앙 2011.3.2
http://news.joinsmsn.com/article/532/5127532.html?ct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