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느꼈어요.” “뭐라고?” “완벽(perfect)…. 난 완벽했어요.”

전 세계의 예상대로 내털리 포트먼이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영화 ‘블랙 스완’의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과 발레리나가 주고받은 대사가 떠올랐다. 최고의 연기를 향한 집념, 그 집념 덩어리에서 고름처럼 불거져 나온 편집증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다 자해(自害)까지 하는 발레리나 역을 바로 내털리 포트먼이 맡았다. 그녀는 소름 끼치도록 연기를 잘했다. 광기(狂氣)가 스크린을 지배하던 막판에는 영화관 의자에 편히 등을 기대고 있기가 힘들었다.

예술가의 집념, 또는 예술혼(魂). 생각하면 진부한 소재다. 역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영화 만들기 나름이다. 문학·미술 등 여러 예술 장르마다 광기의 역사가 서려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김동인의 ‘광염소나타’ ‘광화사’, 김성동의 ‘만다라’ 정도만 떠올려도 충분하다. 벌써 여러 해째 ‘마음의 감기’를 앓고 있던 최승자 시인이 최근 대산문학상을 받고 11년 만에 시집도 냈을 때 모든 문인들이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했다. 다른 직업에선 찾아보기 힘든, 마치 칼자루 아닌 칼날을 손으로 움켜쥔 것 같은 예술행위와 정신세계의 독특한 관계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낀 건 아니었을까. 얼마 전 대산문학상 시상식 뒤풀이 술자리에 갔을 때 최 시인을 잘 아는 원로 문학평론가가 한 말이 기억난다. “최승자는 옛날부터 남들이 ‘거기가 한계야. 더는 위험해’라고 해도 거리낌이 없었다. 조금도 겁내지 않고 그냥 내처 달려갔다.” 유난히 성감대가 발달한 사람처럼, 진짜 예술가는 세상과 닿는 부위마다 반응하고, 아파하고, 덴다. 그 고통을 자양분 삼아 작품들을 잉태한다.

그렇더라도 밥은 밥이다. 안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으면 더 힘들고 비참하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생기는 의문이다. 예술가는 도대체 얼마나 벌어야 만족하는 걸까. 이미 돈을 많이 벌고 있는 예술가는 빼고, 생계 차원에서 돈벌이를 해야 하는 예술가들은 수입이 얼마나 돼야 만족할까. 흥미 있는 최근 연구 결과가 있다.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학에서 문화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김상희씨의 ‘예술교육에 대한 예술가 노동선호 연구’라는 논문이다.

김상희씨는 논문 작성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하고 있는 2010년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참여한 예술인 40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국악·연극·영화·무용·만화애니메이션 등 5개 분야에 나이는 20~60대였다. 결론은 이렇다. 예술가들은 당장의 경제적인 곤란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그 시점부터 ‘수입(돈)’보다는 작품을 창작할 ‘시간’을 선택한다. 그 시점의 수입은 어느 수준일까. ‘연간 급여로 따져 2252만9000~3410만4000원’이었다. 소박하다. 웬만한 기업의 신입사원부터 5년차 정도가 받는 연봉이다. 결국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작품을 창작할 혼자만의 시간을 절실히 원한다는 얘기 아닐까.

며칠 전 국회에서 여야가 ‘예술인 복지 지원법안’을 이번 임시국회 회기 중에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생활고와 지병으로 시달리다 1월 말 세상을 뜬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을 빌려 ‘최고은법’으로 불리는 법안이다. 그동안 기획재정부가 예산이 없다며 반대했던 법안이 드디어 통과된다니 정말 반갑고 기쁘다. 나는 법안에 신설하기로 명시된 ‘예술인공제회’는 이미 같은 기능을 갖고 있는 문화예술위원회 산하에 두어야 거액의 국민 혈세를 절약할 수 있다고 본다. 건강보험·고용보험 등의 혜택을 받을 예술인도 자격요건을 엄격히 정해 선발해야만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예술‘지상(至上)’주의자는 아니지만, 예술가들도 보통 사람들과 ‘지상(地上)’의 권리를 함께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가 최고은씨의 명복을 빈다.<-중앙 2011.3.2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5127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