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시대와 민족,지역의 범주를 넘어서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을 이슬람 원리주의 집권세력인 탈레반이 무참히 파괴하고,이라크 전쟁 초기에 국립박물관 소장품 대부분이 도난당했을 때 세계인이 분노했던 것도 모두 문화재가 개인이나 특정 국가의 소유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문화재 소유권의 성격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지금 실효적으로 점유하는 자가 그 권리를 갖는 상식적인 물건의 소유 개념이다. 다른 하나는 마치 소크라테스나 괴테를 그들의 모국이 독점하지 않듯 특정한 민족의 문화적 성과를 인류 보편의 가치로 공유하는 개념이다.
내 돈을 주고 산 것일지라도 문화적 소유권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더불어 그 시간적 범위 또한 당대에 그치지 않고 미래의 후손들에게까지 영구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과거와 앞으로 생산할 모든 문화유산은,그 가치를 온전히 드러내고 원형이 손상되지 않게 보존할 책임을 우리가 사는 동안 잠시 맡고 있는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변 곳곳에 비문화적인 환경에 노출된 문화유산이 널려 있어 안타깝다. 새 도로를 뚫고 건물을 신축하는 현장에서 무관심과 인식 부족으로 훼손되는 경우가 많지만,무엇보다 문화시설의 핵심이라 할 박물관에서조차 보존 상태가 위험 수위에 도달하여 결과적으로 문화재의 수명을 단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수집하는 데 쏟는 열정에 비해 전시 환경과 보존 처리를 위한 배려가 거기에 미치지 못한 탓이다. 현실을 간과한 제안일 수 있으나 충분한 보존 능력을 갖추기 전에는 수집보다 보존과 전시 환경의 질을 높이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발굴도 유물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할 수 있는 준비를 할 때까지 유보하는 것이 문화적인 태도다.
개인이 운영 주체인 사립 박물관의 문화재 환경은 더욱 열악하다. 270개가 넘는 국내의 각급 박물관 가운데 사립 박물관의 비중은 막중하다. 사립 박물관 운영은 사재를 털어서 어렵게 수집한 문화재를 개인의 노력으로 전시하고 연구하는 일이어서 어떤 면에서는 국가의 문화적 책무를 개인이 대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의 지원은 인색하기 짝이 없다. 어렵게 문을 연 문화지기들의 노력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고 규제가 많아 운영 주체가 겪는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음향기기를 소장한 한 사립 박물관의 경우 강릉시 바닷가의 허름한 건물을 전시관으로 쓰고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15만점이 넘는 소장품 가운데는 미국의 에디슨 박물관에도 없는 희귀 자료가 있을 만큼 그 내용이 탄탄하다. 그러나 전시 환경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전시 시설이 소장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낡은 상가 건물과 컨테이너 박스를 쓰고 있는 전시장은 보기에도 애처롭다. 더욱이 창고에 쌓인 소장품은 큰 비가 오면 물이 차 곤욕을 치를뿐더러 가장 심각한 것은 바다에 인접한 박물관의 위치다. 소금기를 머금은 해풍이 예민한 음향기기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부지를 시에서 배려한 결과가 이 정도니 나머지 작은 박물관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하루 관람객 수가 많아야 10여명에서 적게는 서너 명이 고작인 작은 박물관들은 3000원 내외의 관람료만으로는 수익은커녕 운영비도 건질 수 없다.
박물관 등록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 일정 수의 유물과 전시장의 규모,수장고와 함께 큐레이터 한 명 이상의 고용이다. 박물관에서 소장품을 연구하고 전시 기획을 맡길 큐레이터의 존재가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규정을 제대로 지킬 만한 박물관도 많지 않지만 큐레이터를 둔 박물관의 운영난은 더욱 심각해진다. 최근 사립 박물관의 큐레이터 고용 여건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고무적이지만,근본적으로 문화적 책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각종 사립 박물관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체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뜻은 있으나 어려운 여건 때문에 문화의 이름으로 문화재가 훼손되는 일만은 최대한 억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국민일보 2004. 5.4 <국민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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