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급할수록 돌아가라

나는 항상 한국에서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얘기해 왔지만, 그렇다고 한국 사람들이 가장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속도와 효율은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장 빠른 비행기를 만드는 과정은 면밀하게 기계의 모든 면을 점검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총알보다 빠른 비행기 SR71을 만드는 과정은 새로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비행기의 전체를 까뒤집듯이 샅샅이 살펴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 아무런 선례도 없는 엔지니어링의 수단을 새로이 발명해내야 하는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결국 느림이 빠름을 낳는다는 역설이 생긴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한국의 옛말이 이미 그런 태도를 품고 있는 것이다. 많은 기대만큼이나 많은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고속전철을 보면서,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고속전철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저절로 해결해준다는 것도 아니다. 많은 말썽들을 겪고, 비난을 받고, 그것들을 고치는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체가 움직이는데 연료(에너지)가 필요하듯, 한국의 속도는 시간이라는 연료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 연료를 너무 빨리 태우고 있는 것 같다. 공업기술의 선진국에서 수십년에 걸쳐 개발된 기술을 훨씬 짧은 기간에 실현하려니 말썽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속도가 빨라지면 밀도가 높아지는데, 말썽의 밀도도 높아지는 것이다. 점점 빨라지는 속도의 패러다임에 온통 휩싸여 있는 한국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단순히 좀 속도를 떨어트리고 느리게 하는 문제가 아니라, 과연 속도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으로 적당한가 하는 것이다.

동남아 관광을 가보면 현지인들의 느려 터진 모습에 발전이 없는 거라고 조롱조로 말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보고 웬 휴식과 관광을 저렇게 바쁘게 서둘러서 해야 하느냐고 비웃고 있는지도 모른다.

속도에 반하는 패러다임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 그러나 지나친 상상은 위험하기 때문에 삶에서 속도를 지우는 일은 여러분을 폐인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신록을 보느라 회의에 늦은 직장인을 누가 용서하겠는가.

- 경향신문 5월 12일자 <그루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