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육대학교박물관 신축개관식(2013.5.30)
삼육대학교박물관은 지성과 영성, 신체의 균형 잡힌 전인교육을 통한 인류사회 기여라는 대학의 교육이념 아래 2000년 10월, 교내 도서관에서 문을 열었다가 2013년에 독립 건물로 신축·개관하였다. 박물관은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근동(近東)에서 사용하던 등잔과 화폐(금화, 은화), 성경 사본, 지도 등과 세계 각국의 성경 500여 종의 자료를 주요 소장품으로 하고 있다.
또한, 박물관에는 삼육대학교 교사(校史) 자료 전시실을 별도로 두어, 학교를 설립·운영하고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재단의 역사와 관련한 문서와 사진, 기념품 등도 소장하고 있다. 이를 볼 때, 학교와 박물관의 성격이 종교와 관계되어 있음을 짐작게 한다. 그 외에도 박물관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도자기류와 안방 가구 등을 비롯해 선인들의 손때가 어느 폐가의 벽지처럼 켜켜이 묻은 민속유물들도 빈 여백을 채워주고 있어 종합박물관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박물관에서는 이러한 자료들을 활용한 다양한 문화예술강좌와 답사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 여기에 참여하는 학생과 시민들에게 문화의 향기로 소통하고 교감할 다채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학교 박물관은 소장자료의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활용을 통해 문화유산을 후대에 계승하고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국제적인 박물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학교를 떠난 주미경 전 관장의 말에는 지금도 박물관에 대한 애정이 묻어있다.
박물관에서 학예연구실장과 부관장, 관장을 역임한 주미경은 삼육대박물관의 산증인이다. 그는 박물관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자료를 기증받고 정리하여 관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적지 않은 어려움 속에서도 박물관 신축과 개관 업무를 총괄하여 지금의 박물관을 있게 했다. 박물관의 연구와 운영체계를 정비하고, 학교를 넘어 서울 동북부와 경기 동서부 지역의 문화여백을 메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도 주 관장의 헌신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
그의 이러한 전문적인 활동에는 일찍부터 뼛속에 자리 잡은 문화예술의 종양으로부터 기인한다.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주미경은 문화의 향기가 가도의 벚꽃처럼 만발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해는 한국전쟁으로 피난 온 지식인들의 흔적이 발굴지의 잔해처럼 남아 인문과 문화예술 분야에서 꽤 수준 높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문화와 예술의 언저리를 넘나들 수 있었다.
추상화가이자 진해중학교 미술 교사로 있던 유택열(1924-99)은 원로 조각가 박석원의 회고에도 등장하는 교육자이자 홍대 교수를 지낸 판화가 유강열(1920-76)의 사촌 동생으로도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음악다방 ‘칼멘’을 인수하여 문화예술인의 사랑방이자 해군들이 가져온 LP판으로 클래식을 들려주던 ‘흑백다방(국가등록문화재)’을 운영하는 등 지역문화의 파수꾼으로도 활동했다. 주미경은 부모님의 주선으로 6세 무렵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그에게서 미술을 비롯한 폭넓은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으로 보면 1:1 영재교육인 셈이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가장 큰 자양분은 유택열 선생님이 주신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림지도를 해주시는 것 같았지만, 돌이켜보니 문화와 예술, 역사를 기저로 인문학적 소양을 심어주려고 애쓰셨던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이런 교육적 환경 조성에는 저희 부모님의 특별한 교육방식과 문화예술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었습니다.” 주미경 전 관장의 회고다.

가족사진(1976년 경, 뒷줄 중앙이 주미경)
중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틈이 나면 슬하의 4남매를 앞세우고 박물관과 유적지, 전시회, 공연장에 가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겼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어머니의 교육방식은 특별했다. 전인교육을 강조하며 자녀들에게 음악과 미술을 비롯한 역사 인식을 갖추도록 몸소 실천해 준 게 그것으로 악기를 다루게 했으며, 문화예술현장을 폭넓게 경험할 기회를 마련해 주고자 했다. “그런 까닭에 지금의 저와 음악교육자의 길을 가고 있는 제 동생이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작고하신 부모님을 회상하며 한 주 관장의 말이다.
고미술품을 수집하며 안목도 높았던 어머니는 경남 함안이 고향으로, 조선말 경상도에서 도백(道伯)을 지낸 외조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한학자이자 명필가로도 명성이 높았던 외조부는 벼슬에서 물러난 후 고향 함안에 터를 잡고 지역 교육 발전에 헌신했다. 지금의 함안초등학교가 있게 한 것도 외조부로부터 기인한다.
외조부의 교육열은 형편이 어려웠던 사촌들과 이웃으로도 전파되었으며 외숙부들을 일본에 유학할 수 있게도 했다. 따라서 어머니가 받은 이러한 교육적 혜택이 자녀들에게로 전이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반면 집안 사정이 넉넉지 못해, 막노동을 해가며 어렵게 부산에서 대학을 마친 주미경의 부친은 본인이 누리지 못한 문화예술 향유의 빈 여백을 자녀들에게 채워주려고 애썼다. 대학 강사와 중등교사를 거쳐 교장으로 은퇴한 그는 자녀들이 성장해서도 신문에 실린 전공 관련 기사와 정보를 정성껏 스크랩해 보내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필자가 아는 주미경은 어느 석상에서든 늘 차분하고 정갈하며 평상심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인품의 소유자다.
이런 주미경은 학부에서 미술교육을, 석사과정에서는 기독교육학과 도예디자인을,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커뮤니케이션 아트(Communication Arts)를 전공해 석사 학위를 세 개나 취득했다. 그리고 귀국해서 시작한 박사과정에서는 미술사를 수학했다. 대학과 어머니가 지향하던 전인적 교육 목표를 예술의 영역에서 스스로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토대로 주미경은 대학에서 미래 트렌드와 학생들의 취향을 예측하여 아동미술과를 미술콘텐츠전공으로, 또 아트앤디자인학과로 개편해가며 그의 어머니와 본인이 그랬듯 문화예술의 전 영역에서 공시적(共時的) 안목으로 일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에 힘썼다. 특히, 박물관 전문가인 본인과 같이 뮤지엄에서 전문직으로 일할 수 있는 학습환경을 조성하여 다수의 제자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도 앞장섰다.

삼육대학교박물관 교육프로그램(2015.9.19)
박물관에서도 그는 박물관의 포용성을 인식하고 예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개관 특별전으로 추상화로 일가를 이룬 하인두 화백의 작품을 선보인 《불멸의 빛》전과 건축가이자 화가인 김석환이 그려낸 《불암산과 서울의 산》 초대전 등을 기획하기도 했다.
이제 주미경의 가족력을 그의 딸이 잇고 있다. 박물관 전문가로 성장한 딸에게 주미경 가(家)의 유전인자가 4대째 전이된 까닭이다.
- 주미경(朱美卿, 1956- )
New York Institute of Technology(NYIT) Communication Arts 석사, 경희대 문학(미술사) 박사. 삼육대 아트앤디자인 학과 교수·문화예술대학장·대외협력처장·박물관장 역임. 한국예술치료학회 회장, 한국색채연구소 소장, 프라임문화재단 전문위원, 한국디자인진흥원 운영위원, 국립항공박물관·한국색채문화진흥재단·한국동양예술학회·한국조형교육학회 이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상 및 국무총리상(박물관 유공) 수상. 「전통색의 역사와 한류 콘텐츠화」(경희대출판문화원, 심영옥과 공저)와 다수의 연구논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