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훈이 공간에 개입하는 방법
하계훈 | (미술평론가
공성훈 작가는 예술의 핵심을 파헤쳐 그 본질에 다다르기 위하여 회화와 영상 ,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순례한 끝에 1990 년대 말부터는 회화로 정착하였다. 이후에 그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실재와 이미지, 리얼리티와 평면성 사이의 관계 등에 관심을 두기도 했지만 주로 회화를 통해 자신의 생활공간을 일기처럼 작품에 담아내는데 주력해왔다. 따라서 공성훈이 기록하는 그의 작품에는 뭐랄 것도 없는 흔한 일상이 담겨 왔다. 그러나 공성훈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상황이 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생활 속에서 작가가 직접 목격하고 개입하여 작가 특유의 촉으로 감지한 상황인 것이다.
미술사에서 특별할 것 하나도 없는 일상의 평범한 장면을 담은 작품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알렉산더와 다리우스가 일전을 벌이는 터키 남부의 이서스 (Issus) 전장 (戰場)과 역사 속의 모든 석학과 영웅들이 무대 뒤편에서 앞으로 쏟아져 나온 듯한 아테네 학당의 계단, 혹은 점령군 프랑스의 용병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잡아들여 처형하는 고야의 작품 속에 펼쳐진 공포의 프렌시페 피오 언덕과 알프스를 넘어가는 나폴레옹의 기마상 배경을 장식한 고산준령(高山峻嶺 ) 정도 되어야 우리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콘스터블의 <건초마차>나 밀레의 <만종>, 모네의 <해돋이 -인상>은 영웅담과 신화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심사위원들과 저널리스트들의 조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공성훈의 작품 속 평범한 공간은 굳이 분류하자면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 어느 곳에도 합류하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작가가 담아내고 있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작가 본인이 그 현장을 목격하고 그 상황에 가담하거나 자신을 거기에 투사한, 그런 성격의 공간이었다. 2019 년 대구미술관 전시 도록에 수록된 작가의 말을 빌리면 “저는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제가 보았던 것, 제가 밟았던 흙, 제가 마셨던 공기와 날씨가 그림의 대상을 해석하고 재구성하게 만듭니다 ”라고 하며 알리바이처럼 자신이 머무른 공간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기록해갔다. 벽제 시기의 교외 신도시의 낯섦, 접경지역에서의 부조리하고 까닭 모를 불안의 엄습, 여행에서 마주치는 자연이 신비로우면서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벌어질 것 같은 절박함 등에서 작가는 때로는 관찰자로 또 때로는 그림자나 작품 속 모티브의 시선으로,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뒷모습을 실루엣으로 등장시키기도 하였다. 필자는 작가의 2019 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이인성미술상 수상 기념 전시에서 이러한 공성훈의 풍경화를 징후적 (symptomatic) 풍경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그 가운데 작가가 부산과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실제로 체험한 공간의 분위기를 담아내려던 물가의 공간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독특한 시선은 공성훈의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그 공간에 스며든 초자연적인 정신성과 감흥을 몸소 체험하고자 했다. <바닷가의 남자 >에서 보는 것처럼 이 무렵의 공성훈의 풍경화들을 관통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햇빛을 극히 제한적으로 화면에 도입하면서 짙은 단색조의 대형 화면에 명암의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하여 원인 모를 긴장감과 불안감을 입혀놓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작품 속에 표현된 시간은 동트기 전이나 일몰 즈음의 어둠을 담는 경우가 적지 않다 . 이러한 풍경은 사진의 사실성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심리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주입된 이중적인 화면을 형성하게 되고, 그 지점에서 우리는 공성훈의 작품이 일반 풍경화들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에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왠지 낯설고 기이하며, 사실적이면서도 현실에서 한 걸음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교묘한 양면성과 반전이 감지된다는 특징을 담고 있어서 일부에서는 그의 작품에서 낯선 기이함과 함께 낭만적 숭고미나 서정성을 읽어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