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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문화산책]겸재 산수의 진면목
[문화산책]겸재 산수의 진면목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를 보러 간송미술관에 갔다. 보고 또 본 산수화이지만 봐도 봐도 물리지 않는 것이 겸재 산수의 진면목이다. 겸재 애호가는 예상대로 넘쳐났다.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사람들은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전시장 안에 들어선 사람들의 어깨에서 겸재 그림에 묘사된 이내처럼 뽀얀 김이 피어올랐다. 그림 속의 이내는 진열장을 뚫고 나오고, 현실 속의 사람들은 그림 속에 빨려들었다. 그것이 겸재의 복인지 관객의 복인지 알 수 없더라도 행복한 전시장의 풍경은 마땅히 그러한 모습일 터였다.
사람들은 A4 크기만한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탄성을 머금었고, 깎아지른 총석정 만폭동을 위태로워했다. 사람들은 북악산 인왕산의 좌향에 한마디씩 거들었고, 광나루 송파나루의 옛 모습에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종이나 비단 위에 그려진 그림을 보는 관객이 아니라 산하를 돌아다니는 유람객의 모습이었다. 그림 속 박연폭포 아래서 물소리를 듣고, 그림 속 청풍계에서 솔바람을 쐬는, 희한한 유람객들이 전시장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비를 맞으며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삿갓과 도롱이만 걸치지 않았을 뿐 겸재 그림의 조선사람과 빼닮았다.
겸재 정선은 세속 산천의 아름다움을 그렸다. 그의 명승경개는 세속에 있었다. 그것이 겸재의 위대함이다. 그는 천공을 나는 학의 노래에 귀를 빼앗기지 않았다. 사된 몽상이나 헛된 선경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이 조선 천지를 밟을 때 그의 옷깃은 속진에 때묻었으리라. 까마득한 선배인 안견은 ‘몽유도원도’에 혼이 나가고 강희안은 ‘고사관수도’에 자족했으나 겸재는 금강산과 남한강 임진강으로 나가 강산의 형세와 지리를 살폈고, 심지어 쥐가 파먹은 수박을 골똘히 관찰하기도 했다. 그는 당대의 장관을 찾아헤맸다. 현실에서 장관을 발견하려 애썼다. 땅의 기운을 살점으로 느끼고 강의 흐름을 맨눈으로 지켜보며 그는 실재하는 것의 힘을 믿었고 허황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화폭에 옮겼다.
흔히 겸재의 산수를 ‘진경(眞景)산수’라 부른다. 그 참된 풍경은 물론 실경에서 나왔다. 실재하는 경치가 참 풍경이다. 이 뻔하고도 올바른 이치를 화가들은 백인백색으로 묘사한다. 그것이 개성과 독창을 낳는 것이라 해도 예술의 아우라는 곧 현존과 원전에 터를 둘 때만 가능한 것임을 왕왕 잊는 듯하다. 진경이 기막힌 구경(珍景)이나 본질적인 경지(眞境)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실질’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물을 좋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그림이 실물을 닮았다고 좋아하는 것은 얼마나 몽매한 짓인가”라고 설파한 사람은 겸재보다 앞선 시대의 파스칼이다.
겸재의 아래 세대인 연암 박지원도 예술에서 보이는 성급한 탈속과 망령된 상상을 혐오한 사람이다. 그 역시 삶의 장관은 당대의 세속에 있다고 믿었다. 중국을 다녀온 사대부들이 저마다 그곳의 장관에 대해 한마디씩 늘어놓을 때, 그는 민가의 담장을 장식한 와편(瓦片)과 육각 또는 팔각형으로 쌓아 놓은 말똥이야말로 장관이라고 말한 사람이다.
이번 겸재 정선의 전시 제목은 ‘대(大)겸재전’이었다. 대가를 넘어 겸재는 미술사에서 ‘화성(畵聖)’으로 불린다. 성(聖)의 반열에 오른 겸재가 속(俗)에서 답을 구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그는 세속에서 당대의 장관을 찾아냈다. 우리 시대의 장관은 과연 어디에 있으며 또 누가 그려낼 것인가.
/ 세계일보 6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