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출범한 밀라노디자인위크(Milan Design Week)는 올해 62번째 행사를 개최했다. 가구박람회인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와 장외전시 ‘푸오리 살로네(Fuori Salone)’, 격년 개최인 주방가전박람회 ‘유로쿠치나(Euro Cucina)’로 나뉜다. 2024년 올해 행사는 밀라노 도시 전체가 전시장으로 변모해 신진디자이너 600여 명을 포함한 2,300여 개 업체가 디자인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필자는 로산나올란디갤러리(Rossana Orlandi)에서 열린 한국 공예전《사유의 두께 Thoughts on Thickness》(4.15-4.21) 개막을 위해 방문하였다.
밀라노라는 도시가 그대로 이탈리아의 역사와 전통을 품고 있는 세계적인 관광명소이지만, 60여 년간 ‘밀라노디자인’이라는 독자적 브랜드를 지속한 것 또한 경이로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일부 협회·행사가 반세기 역사를 자랑하지만 국제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이처럼 잘 유지하는 사례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번 방문에서 기억에 남는 곳 중에 밀라노트리엔날레디자인박물관이 있다.

밀라노 트리엔날레박물관 전경 ⓒ 사진 장동광

밀라노 ADI디자인박물관 전시장 ⓒ 사진 장동광
1929년 트리엔날레장식·건축미술관으로 개관했다가 2007년에 현재 이름으로 바뀐 후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 박물관은 영국 런던디자인박물관, 네덜란드 스테델릭디자인박물관, 독일 레드닷디자인박물관, 스위스 취리히디자인박물관, 덴마크디자인박물관, 벨기에 겐트디자인박물관, 미국 쿠퍼휴잇스미소니언디자인박물관 등 전 세계 10여 개가 미처 되지 않는 디자인박물관 중의 하나이다. 이곳과 더불어 방문한 ADI디자인박물관은 이탈리아산업디자인협회(Associazione per il Disegno Industriale; ADI) 소속이다. 1956년에 밀라노에 설립된 ADI는 이탈리아 디자인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해 왔는데, 그 가운데 1954년 이후 이탈리아 최고 디자인 제품에 수여되는 ‘황금컴퍼스상(Compasso D'Oro)’을 심사하는 단체로 이탈리아 디자인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전기공급 회사 에넬(ENEL) 본사 건물을 고쳐, 과거 전기공급을 위해 설치된 배전기 등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밀라노산업디자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설전과 디자인 기획전을 여는 전시공간이자 박물관으로 2021년 개관하였다. 필자는 이 두 박물관이 오늘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품브랜드회사가 키워낸 산파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한 디자인문화 진흥기관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현재 세종시에 국립디자인박물관을 설립하기로 하고 기초건축설계를 마치고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세종시 행복청의 대규모 박물관단지 조성의 막대한 예산 소요와 관련하여 개관시기가 불투명한 상황이나 무엇보다 그 비전이나 미션의 설정, 운영주체, 박물관의 운영방향이나 운영계획 등이 아직 기초적 논의단계에 머물고 있어 아쉽다. 산업디자인의 발전을 추동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공공디자인의 수요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시대적 추세에 비추어 우리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한국디자인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거점박물관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할 것은 한국디자인의 정체성이라고 했을 때 과연 어떤 좌표를 설정하고 디자인박물관의 항로를 지도화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 좌표 설정의 키워드는 한국공예의 뿌리, 즉 그 정신과 미학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의 생활사와 문화유산 속에는 우리 선조의 수공예 장인정신과 한국문화의 독자적 미학이 보물처럼 숨어있기 때문이다. 국립공예미술관과 국립디자인박물관을 혁신적으로 설계하여 그 공간 안에서 디자인미학을 재발견하고, 전통공예를 재해석하고, 미래세대들과 창의적으로 교감하는 일, 이것이 바로 동시대 우리에게 부여된 역사적 과제이자 소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