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전국대전 — 신진 작가들의 현실 비판적 유머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년에 이어 올해 진행되는 《2024 전국대전》은 전시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전국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임을 표방한다. 다만 이 전시는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 혹은 신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전국 규모를 지향하는 여타 전시와 차별성을 지닌다. 특히, 국내 미술 현장으로부터 소외된 지역 대학 졸업생들을 주목했던 작년 전시와 다르게, 2024년 전시는 지역 분배보다는 역량 있는 신진 작가를 찾아 발굴하는 데 주목했다. 기획자들은 전국의 55개 미술대학의 졸업 전시를 86회 방문하고, 졸업 작품, 포트폴리오, 줌 인터뷰 등 총 3회의 심사를 거쳐 최종 26인을 참여 작가로 선정했다. 기획자들은, 이들이 저마다 다양한 작품 세계에 천착하면서도, 주류 세계로 잠입하기 전 단계의 신진 작가로서 현실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그들만의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을 분석하면서, 전시 부제로 ‘현실 유머’를 내세웠다. 







II. 비주류로 출발하는 이머징 아티스트의 현재적 위상 
여기 미술대학을 갓 졸업하고 ‘예비 작가, 신진 작가’라는 이름으로 미술 현장에 나선 이들이 있다. 26인의 《2024 전국대전》 참여 작가들은, 연령상 젊은 작가들이며, 대개 무명이며, 아직은 전시 경력이 일천한 '거의 새로운 얼굴'이다. 이들은 현재 미술 현장의 중추 세력이 아니지만 훗날 미술 현장의 중심 세력이 될 미래를 꿈꾸는 미술가 주체들이라는 점에서, ‘차세대 작가’, 혹은 떠오르는 작가라는 의미에서 이머징아티스트(emerging artist)로 부를 만하다. 아울러 이들은, 상투화된 조형 언어를 오랜 실험으로 도달한 완숙함의 경지라고 우기는 기성세대의 작가들과 달리, 경계 없는 아방가르드적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 관계로 새롭거나 힘 있는 ‘신예(新銳, new and superior)’ 혹은 ‘신예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렇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구축한 관성화된 미술계에 이견을 제기하고 그것을 깨뜨리려는 아방가르드의 정신을 품고 산다. 이들은 ‘서로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창작과 매개 사이에 벌어지는 미술의 공동 음모에 아직은 오염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예비 작가 혹은 신진 작가들이 맞닥뜨린 난관이 도처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먼저 예비 작가들은 미술대학이라는 수련의 장을 떠나기 전까지, 교수나 선배의 ‘가르침 아닌 가르침’에 오랫동안 훈육되어 왔던 까닭에, 그들이 품은 아방가르드 정신에 필적할 만한 조형적 결과물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한국의 미술 현장이 학맥과 인맥 등 인간관계로 얽혀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지금 신진의 순수 정신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오염되기 십상이다. 한편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오랜 아포리즘이 실현된 21세기 다원주의 미술의 시대에 기성세대 작가들에 대한 차별성을 도모하는 신진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아방가르드 정신에 대한 형식 실험 자체는 이미 효용성을 상실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들이 자력으로 주류 세계에 성공적으로 편입하는 일이란 쉬운 것일까? 그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일보다 더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엇보다 이들은 주류를 향한 문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 생계와 작업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미술가로서의 이름과 정체성 그리고 자신의 작업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비주류로 출발해서 오늘을 사는 이머징 아티스트, 즉 신진 작가들의 현재적 위상은 불투명하다. 나아가 불안하기조차 하다. 




III. 네트워킹하는 신진 작가들의 탈영토화 
《2024 전국대전》은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전국의 예비 작가 혹은 신진 작가들을 서울에 자리한 아트스페이스 신사옥으로 집결하여, 향후 이들의 자생적인 네트워킹이 자라는 토양을 제공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언급하는 아비투스(Habitus)는 우리의 신진 작가들이 주류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공유하는 네트워크화된 일종의 집단 무의식이자 공통 성향이 된다. 물론 기득권 세력의 아비투스 역시 존재하지만, 신진 세력에게 이것은 일종의 연대 의식과 같은 것으로 기득권을 누리는 기층 계급과 그들이 만든 상징 권력(pouvoir symbolique)에 저항하는 치열한 상징 투쟁(Lutte symbolique)을 견인한다. 
예비 작가, 신진 작가들이 벌이는 상징 투쟁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기성 작가들뿐만 아니라 기층 계급의 경제 자본, 문화 자본을 한데 아우르는 상징 자본의 구조적 질서를 해체하고 그들이 획책한 ‘구별짓기(distinction)’를 무너뜨리는 민주적 실천을 감행하는 것이다. 토끼를 잡으려면 토끼 굴에 들어가라고 했던가? 신진은 주류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주류의 문을 지나쳐야 한다. 다만 기성 작가들이 구축한 동굴의 깊은 세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로 재편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미학 내부적으로는 누군가 더 이상 미술 형식에 새로움이 없다고 단언할지라도 기성 작가들의 작업과는 다른 새로움을 찾아 창의적 조형 실험을 거듭하는 일이며 미학 외부적으로는 기성 작가들이 이미 구축한 질서 안에 거주하기보다 신진 작가들(만)이 공유하는 네트워킹을 새롭게 취하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성세대가 구축한 그릇된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오인(méconnaissance)을 탈주하고 당면한 미술 현장의 개혁을 재구조화하고 재편할 수 있을 것이다. 
창의적 조형 실험과 신진 작가들의 새로운 네트워킹?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2024 전국대전》에 참여하는 신진 작가들의 실천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그것은 제도권의 입구에 분명히 들어가되 그 안에서 기층 계급의 질서를 해체하고 탈주하게 만드는 탈중심 혹은 다중심 구조의 네트워크를 예술의 장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신진이 품은 비주류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실천하는 소수미술(art mineur)과 소수그룹(groupe mineur)을 형성하는 것이다. 소수미술과 소수그룹이라고? 이것은 들뢰즈와 가타리(Gilles Deleuze et Felix Guattari)의 소수문학(littérature mineure) 논의로부터 소수자 개념을 빌려, 소수 작가(artiste minoritaire)라는 예술 생태계를 변환시킬 주체적 작가상을 제안하는 것이다. 
'소수 작가'란 어떠한 존재인가? 그것은, 들뢰즈가 카프카의 문학에서 발견했듯이, 이른바 대가(大家)들의 다수 문학(littérature majeure)의 정형화된 글쓰기로부터 탈주하는 소수 문학의 비정형화된 글쓰기를 실행하는 주체를 지칭한다. 즉 언어를 동질화시키고 통일시키는 권력과 지배의 다수 언어를 피지배 언어인 소수 언어로 대치시키는 작업을 실행하는 주체이다. 시각예술에서 예를 들면 표준이라는 척도로 20세기를 이끌었던 추상이라는 지배적 담론의 다수 언어에 종속되지 않은 채 그것이 버리려고 했던 잉여적 존재를 변형하는 오늘날 다원화된 추상의 실험 주체가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프레임 내부로만 귀속하려고 했던 모든 회화적 행위 너머에서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모든 소수적 요소를 새로운 실험으로 견인해 오는 어떠한 것일 수도 있겠다. 마치 들뢰즈가 소수문학의 예로 조이스(James Joyce)와 베케트(Samuel Beckett)가 아일랜드 영어를 탈영토화하거나 카프카(Franz Kafka)가 프라하의 독일어를 탈영토화하는 과정을 설명했듯이 《2024 전국대전》참여 작가들은 소수 작가의 이상을 자기 방식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행위의 풍요화와 빈곤화를 오간다. 마치 조이스가 패러디, 속어, 모국어 의성어까지 혼합하며 풍부하게 하려는 풍요화의 태도로 주류 혹은 다수의 언어를 탈영토화시켰다면 베케트나 카프카는 자발적인 언어적 금욕주의를 통해 빈곤화의 태도로 그것을 탈영토화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IV. 에필로그- 전유의 현실 유머 
《2024 전국대전》이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특성으로 제시하는 주제어 ‘현실 유머’는 탈영토화의 관점에서 매우 유효하다. 신진 작가의 ‘현실 비판적 유머’가 주류 혹은 다수 언어를 비트는 풍요화나 빈곤화를 촉발하면서 탈영토화를 지속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여기서 ‘유머’는 현실 풍자뿐 아니라 기존의 현실을 가져와 비틀기를 시도하는 전유(appropriation)의 개념에 육박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모든 참여 작품이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전시 취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현실 비판적 유머가 지닌 전유의 미학이 무엇인지 탈영토화의 관점에서 간략히 해설한다. 

1) 탈락자의 시선에 주목하는 미디어아트(강승호), 2) 버려진 오브제나 패러디 이미지를 통해 의식주 너머의 비주류의 세계를 견인하는 멀티 미디어아트(김민유), 3) 죽은 것들을 소환하는 뉴 바니타스 한국화(김세연), 4) 상투화된 일상을 회의하고 비트는 개념적 설치(김수빈), 5) 구조화된 도시 풍경의 이면에 주목하는 사진, 영상(김지원), 6) 현실 속 정보를 변주하는 스토리텔링 기반의 다매체 실험(김지혜), 7) 도시 공간을 심리적으로 번안하는 다매체 실험(박예원), 8) 도시 삶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매체 실험(박정아), 9) 현실 속 이야기를 새롭게 작화하는 회화(방세현), 10) 현실 속 사물을 연약한 재료로 재현하는 만들어진 심리적 오브제(변다효), 11) 청년기의 자전적 일상의 작품화(서우정) 12) 타자의 내러티브에 감정 이입하는 상상 드로잉(이소희), 13) 현대인의 삶을 전유하는 퍼포먼스 영상(임지수), 14) 신체에 담긴 인간 정체성을 탐구하는 영상(권영재), 15) 시선의 문제와 상실된 흔적을 상상으로 추적하는 회화(김슬아), 16) 일상 사물의 조각적 변주를 통한 심리 탐구(남지강), 17) 비정형 덩어리로 추적하는 조각과 일상의 전유적 아카이브(노경민), 18) 통제에 대한 저항을 번안하는 회화 및 다매체 작업(박지원), 19) 인간의 근원적 불안 감정을 탐구하는 현대 한국화(서은별), 20) 에코 페미니즘 관점의 다매체 작업(심지민), 21) 부재와 상실의 흔적을 탐구하는 회화(안휘민), 22) 현대인의 욕망이 투영된 실내 풍경(유슬비), 23) 현실을 투영하는 무작위적 회화 행위(유정), 24) 주변인을 재현하고 자아를 탐구하는 회화(윤사유), 25) 꿈을 담은 주변인 초상(주상돈), 26)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비판적으로 풍자하고 전유하는 다매체 작업(최예나). 
(20240305)


출전 /
김성호, 「2024 전국대전 — 신진 작가들의 현실 비판적 유머」, 『2024 전국대전_현실유머』, 카탈로그, 2024.
(2024 전국대전_현실 유머, 2024. 03. 13~04. 03, 신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