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시적 향기의 시각화와 물질화 – 사랑의 아포리즘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변선영은 구상과 추상, 평면과 입체, 오브제와 설치를 넘나드는 오랜 회화 실험을 거쳐 최근작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시각화’에 대해 골몰하면서 그것에 관한 조형 실험을 존재론의 근원적 지평에서 탐구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시각적 현현(顯現)이라는 미학적 질문에 대한 작가 자신의 화답인 셈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아울러 그녀의 최근작이 동시대에 지니는 미학적 함의는 무엇인가?  




I. 보이지 않는 향기의 시각화와 은유 – 사물, 인간, 신의 존재론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많다. 가시광선을 삼킨 어둠 속 사물의 형상, 장막으로 덮인 사물, 연기로 뒤덮인 풍경! 물론 우리는 어둠, 장막, 연기를 시각으로 인지하지만, 애초에 보고자 하는 대상이 가려질 때 우리는 흔히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더더욱 눈의 감각으로 파악할 길 없는 사람의 마음, 의식과 무의식과 같은 정신적, 심리적 양태는 어떠한가? 또한 참과 거짓을 나누고 진리와 윤리를 논하는 철학적이고도 추상적인 개념과 의미는 어떠한가? 그것들은 시각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만 우리는 다른 방식의 감각을 동원하고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 그러한 존재를 지각하고 인식한다. 어둠 속에서 촉각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거나 사람의 표정과 행동에 대한 공감각적 투여를 통해서 심리적 양태를 간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대개 눈의 감각으로 쉬이 포착할 수 없지만 다른 감각으로 포착되는 것들이다. 하물며 언어와 소음을 분별하는 청각이나 단맛이나 쓴맛을 인지하게 하는 미각, 그리고 향기나 악취를 감지하는 후각은 어떠한가?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비로소 인지하게 만든다. ‘비시각적 존재에 대한 타감각적 현현(顯現)’,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다른 감각으로 드러내는 이러한 방식은 도처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비시각적 존재에 대한 시각적 현현’, 즉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적 장치를 통해서 보이게 하는 방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특히 시각 예술 작품에서 향기와 같은 비시각적 테마는 어떤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을까?  
작가 변선영은 ‘향기의 흩날림’이라는 테마를 통해 ‘비가시성의 시각적 현현’을 성취하(려)는 ‘가시(可視)의 미학’을 탐구한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실상 이전 작품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그동안 발견된 오브제를 평면이나 입체로 구축하면서 탐구하던 선, 면, 지표(指標)의 관계, 그리고 구상 회화나 추상 회화를 통해 탐구하던 질료와 형상, 시메트리(symmetry)와 아시메트리(asymmetry)와 같은 조형 언어뿐만 아니라 동행, 만남, 자연과 같은 주제 의식을 낳게 되었는데 최근작은 이러한 주제 의식이 총체적으로 도달한 지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최근의 ‘꽃’ 연작이 ‘사람과 사물의 향기’, 더 나아가 ‘사랑의 향기와 메시지’와 관련된 주제 의식에 최종적으로 이르게 한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변선영이 탐구하는 ‘향기’란 “꽃, 향, 향수 따위에서 나는 좋은 냄새”라는 사전적 정의를 넘어선 지점에서 드러나는 어떠한 존재 양태를 은유하는 셈이다. 즉 그녀가 탐구하는 향기는 ‘좋은 냄새’라는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물질 속성에 한정되지 않는 ‘향기의 속성을 담은 사물, 나아가 어떠한 향기를 지닌 품성의 인간’, 더 나아가 ‘사랑의 향기를 전하는 신의 메시지’로 향하는 존재론적 탐구로 나아간다. 그것은 사물과 인간의 향기를 넘어선 지점에서 탐구된다. 달리 말하면 그녀가 탐구하는 향기는 보이지 않는 것이면서도 후각으로 포착될 수 없는 무엇이다. 그녀가 그리는 향기는 인간의 감각으로 쉬이 포착되지 않는 마음 깊은 곳에서 발원하는 어떠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향기는 정신 혹은 영성의 차원에서 비로소 만나게 되는 사랑, 즉 신의 사랑이다. 따라서 종이죽 질료를 화면 가득히 얹은 현실적 물질의 세계와 더불어 그것과 대비되는 십자가라는 종교적 도상은 강력한 영성의 정신적 세계를 함께 만나게 한다. 물질과 도상은 그녀의 작품이 탐구하는 보이지 않는 향기를 비로소 보이게 만드는 강력한 상징이 되는 셈이다.   




II. 보이지 않는 향기의 육화 – 물질적 상상력의 지평에서 
변선영의 작품이 탐구하는 ‘질료를 통한 향기의 물화’ 차원은 육화(肉化, incarnation)의 미학을 전한다. 기독교에서 대개 성육신(成肉身)으로 해설하는 이 육화는 ‘인간의 몸을 입은 그리스도’를 지칭하지만, 간혹 사람이 신의 은총을 입은 어떠한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 시각예술에서 육화는 비물질적 요소나 주제를 표현할 때, 물감이나 진흙과 같은 미디엄이 지닌 질료적 속성을 강조하는 물질화, 질료화를 가리킨다. 
변선영이 탐구하는 향기의 육화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언급하는 물질적 상상력’(imagination matérielle)이 작동한다. 물질의 4원소인 ‘물, 불, 공기, 흙’으로 범주화해서 상상력을 살피고 있는 바슐라르의 고찰에 기대어 볼 때, 변선영의 향기(의 움직임)에 대한 상상력이란 바슐라르의 ‘공기의 상상력’과 연동한다. 바슐라르의 견해처럼, 공기의 상상력이란 예기치 않은 사건 혹은 새로움에서 기인하는 ‘형태(식)적 상상력(imagination formelle)’과 달리 존재의 지평에서 영원한 근원을 탐구하는 물질적 상상력과 같은 것이다.
변선영은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향기라는 비물질적 요소의 운동성을 물감과 미디엄이 지닌 마티에르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질료화하고 구체화한다. 구체적으로 변선영은 한지를 미디엄과 섞어 만든 종이 죽을 나무 패널 위에 올려 화면의 기저층을 만들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나이프로 찍어가며 향기의 궤적 혹은 움직임을 만들어 나간다. 그것은 때로는 씨앗들이 산포(散布)하듯이 잔잔히 흩뿌려진 형국으로, 때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너울거리는 패턴으로, 때로는 짙은 운무가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는 듯한 질료 형상으로 포착된다. 종이 죽이 수분을 잃고 마르기 전에 기본적인 조형이 자리를 잡아야만 하는 까닭에 작가는 계획된 구도와 형상을 유지하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연신 나이프를 들어 작업을 지속해야만 한다. 그녀는 종이 죽을 찍어 골과 마루의 형상을 만들고 화면 위 요철의 높낮이를 조절하기 위해서 나이프와 여타 도구로 다름질하듯이 눌러 평평하게 만들면서 미세하게 반복되는 마티에르 효과를 극대화한다. 
 바슐라르는 그의 저작 『공기와 꿈(L’Air et les Songes)』에서 다음처럼 말한다: “역동적 상상력 속에서는 모든 것이 활기를 띠고 그 무엇도 멈추지 않는다. (...) 운동이 존재를 창조한다. 소용돌이치는 대기는 별들을 창조하고 외침은 이미지를 낳는다. 외침은 이미지를 낳고 외침은 말과 생각을 준다”이 저작이 ‘운동의 상상력에 관한 에세이(essai sur l'imagination du mouvement)’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상상력은 움직임, 운동과 밀접하게 관계한다. 변선영의 작품에서 향기의 이동, 움직임, 그리고 운동이란 그녀의 상상력이 이끄는 결과물이다. 
이처럼, 변선영의 작품이 탐구하는 향기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 물질적 상상력을 잉태한다. 근원적 존재 탐구의 차원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비로소 자각하게 만드는 물질적 상상력을 견인하는 것이다. 가히 ‘보이지 않는 것이 잉태한 운동성의 물질적 상상력’이라고 할 만하다. 




III. 보이지 않는 향기를 비로소 보이게 만드는 것 – 사랑의 도상과 아포리즘 
이 글은 변선영의 작품이 탐구하는 ‘십자가 도상을 통한 향기의 시각화 혹은 메시지화’의 차원에 주목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향기의 육화 차원이 종이 죽을 통한 질료 탐구였다면, 보이지 않는 향기를 비로소 보이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십자가 도상을 통한 형상 탐구로부터 기인한다. 
이러한 십자가 도상은 변선영의 작품에서 질료 탐구가 일차적으로 마무리된 이후 진행되는 형상 탐구의 마지막 지점에서 비로소 선명하게 자리한다. 달리 말해 십자가 도상은 육화의 차원에 육박하는 두터운 질료 탐구와 단색조 계열의 물감을 서서히 쌓아 올리는 형상 탐구를 거치면서 화룡점정의 차원에서 자리한 셈이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종이 죽이 마른 후에는 뻑뻑한 재질감의 화면 위에 의도하는 색으로 물감을 입혀 올리면서 세밀하게 화면을 완성해 나간다. 대개 개별 작품마다 같은 색상 계열의 물감을 올리는데, 운동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형상과 대비되게 화면 위 올라선 단색조와 유사한 계열의 색상은 그녀의 작품 바탕을 마치 ‘모노크롬 페인팅’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아울러 표면 위에 은은하게 올라선 실버 및 골드빛의 안료와 미디엄은 반사된 조명 효과에 의해 작품을 신비로운 경지로 견인해 내기도 한다. 
종이 죽의 표면을 긁어 만든 요철의 거친 마티에르와 향기를 출현시킨 발원지를 유추하게 만드는 핵과 같은 지점으로부터 소용돌이 혹은 방사선처럼 퍼져 나가는 향기의 운동성과 미세하게 겹치는 단색조의 물감층 그리고 그것을 응축하는 십자가 도상은 화면을 역동적으로 만들기에 족하다. 십자가로부터 향기가 흩뿌려지는 듯한 형상으로 꿈틀거리는 화면은 고요함 속에 역동성을 내재한 정중동(靜中動)의 세계를 구축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동(動)과 정(靜)뿐만 아니라 물(物)과 심(心), 성(聖)과 속(俗)이 상호 기묘한 긴장 관계를 형성한 셈이다. 
주지하듯이, 십자가는 고대 페니키아 시대 이래, 고대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죄인에 대한 책형(磔刑)의 도구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책형 사건 이후, 그리스도교가 로마에 전파된 이후부터는 십자가를 사형 도구로 삼는 일은 폐지되었고, 십자가 도상은 오히려 신자들에게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과 수난의 상징, 그리고 죽음에 대한 승리의 상징으로 숭배받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의 십자가 도상은 그리스도가 약속한 생명, 영원, 사랑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이 도상은 기독교의 상징 기호인 만큼, 인류에 대한 매우 강력한 구원과 사랑의 내러티브와 메시지를 전한다. 가히 사랑의 도상과 아포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변선영의 작품에는 횡목(橫木)이 짧고 종목(縱木)의 하단부가 기다란 ‘라틴식 십자가’가 화면 에 큰 비중으로 자리한다. 운동성을 드러내는 유연하게 휘어진 커다란 십자가 주변으로 신비한 기운이 감싸고 있는 그녀의 ‘풍경 아닌 풍경’, 또는 ‘추상 풍경’에는 마치 꽃가루가 뿌려지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전하는 사랑의 향기가 퍼져 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 향기가 사랑에 관한 메시지임을 전하려는 듯, 작품 속에는 하트 문양이 멀티플 형상으로 퍼져 나가거나, 십자가 주변에서 마치 식물처럼 자라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종교를 떠나 예술로 작품에 임하자”는 다짐 속에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스도의 그 숭고한 최고의 향기밖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작가는 신앙인이자 예술가로 사는 변선영에게 있어서 최고의 향기였던 셈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란 사랑의 향기고, 그 사랑을 대면한 향기는 감사의 향기라고 할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그 어디에선가 예리하게 사이를 뚫고 피어오르는 한 줄기 감사의 향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나 스스로를 태워 내 주위를 빛으로 밝히는 촛불과도 같은 삶은 아니라도, 주어진 삶이 진실되고 성실하게, 내 곁과 사랑들을 아름다운 향기로 넉넉히 품어 전해주리라.”
이러한 차원에서 작가 변선영에게 있어, ‘보이지 않는 향기를 비로소 보이게 만드는 것’은 ‘십자가’라고 하는 사랑의 도상이자, 그것이 품은 향기는 사랑의 아포리즘(aphorism)이라고 해설할 수 있겠다. 이러한 차원에서 ‘비가시적 향기의 시각화와 물질화’를 조형적으로 실험하는 변선영의 최근작은 ‘사랑의 향기와 사랑의 아포리즘’을 성찰하면서 매일 가슴에 십자성호(十字聖號)를 긋는 한 예술가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것이다. (20240623) 


출전 /
김성호, 「비가시적 향기의 시각화와 물질화 – 사랑의 아포리즘」, 『변선영』, 카탈로그,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