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기계 – 행위자 전환의 미학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설치미술가 김진우가 기획한 《2024 The Drawing-숨 쉬는 기계》전은 국민대학교 자동차융합대학의 학부생 50인의 드로잉 150여 점과 함께 시각예술가 13인의 기계 미학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러한 차원에서 전시는, 해당학과 학부 신입생들이 ‘Adventure Design I’ 강좌를 수강하는 동안 탐구했던 드로잉을 선보이는 결과 발표회이자, 미술가들이 기계를 화두로 함께하는 그룹 전시의 특성을 지닌다.
전시는 피상적으로는 ‘기능성’의 차원에서 다른 성격의 활동으로 규정되어 온 공학도의 디자인과 예술가의 순수미술이 어떻게 ‘기계 철학’의 차원에서 함께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공학도에게는 “문화적 소양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융합적 사고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적 역할을 부여하고, 예술가에게는 기계공학의 근본적 역학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함으로써 각자의 예술적 활동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의식은 전시명 ‘숨 쉬는 기계’가 함축하는 인간-기계의 관계에 관한 질문에서 촉발된다. 즉, 인간을 위한 종속 변수로 간주해 온 기계에 대한 ‘인간중심주의적 사유’를 탈주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II.
주지하듯이, 자연 자체를 과학적 방법론으로 분석했던 17세기 갈릴레이(G. Galilei)의 천체학, 역학 연구나, 세계를 역학적 인과관계로 설명하고자 했던 데카르트(R. Descartes)의 기계적 철학은 세상의 신비를 과학적 사유로 풀고자 했던 ‘인간중심주의적 사유’의 일단이었다. 또한 도시와 기계 문명의 역동성과 속도감을 새로운 미적 가치로 탐구했던 20세기 초반의 미래주의는 어떠한가? 이 또한 기계 문명을 인간의 미래적 삶을 위한 터전으로 두고자 했던 인간 중심주의의 일단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기계를 통해 인간 해방을 부르짖었던 18세기 산업혁명이 전통적 수공업을 파괴하고 비인간적 공장 노동자를 무수히 양산했던 경험이나, 무기 제조를 통해 인류 문명을 폐허에 이르게 했던 양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무수한 전쟁의 역사를 낳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을 위한 목적으로 생산했던 기계 문명이 낳은 역설인 셈이다.
이러한 기계를 통한 인간중심주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 사회에 심각한 반성과 성찰에 이르게 했다. 20세기 중반 매클루언(M. Mcluhan)의 기술 결정론은 중립적인 기계가 사용자 인간에 의해 친구가 되거나 적을 되는 가능성을 경고한다.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그의 아포리즘은 인간 감각기관의 확장으로서의 모든 기계적 미디어의 긍정적 가능성을 탐구하면서도 그것 자체가 지닌 부정적 메시지의 측면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이제 인류는 나노, 유전공학, 사이버네틱스, 인공지능이 만드는 인간상을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으로 새롭게 규정한다. 그것은 인간중심주의가 극단으로 밀고 간 기계 문명에 대한 장밋빛 전망 너머에서 인류학적 반성과 성찰을 촉구한다. 노화, 질병, 죽음이라는 인간 한계를 극복하려고 시도했던 기계화된 육체와 첨단의 물신화된 기계주의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이다. 이제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 주체와 타자를 나누고 차별하는 인간 중심주의 사유를 벗는 새로운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이 필요한 때이다.
III.
이러한 차원에서 이번 기획전은 ‘숨 쉬는 기계’라는 전시명을 통해서 들뢰즈(G. Deleuze)와 가타리(F. Guattari)의 ‘되기(devenir)’라는 철학적 메타포와도 연동하는 새로운 포스트휴먼 상을 제시한다고 해설할 수 있겠다. 즉 기계를 도구화해 온 인간 중심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기계 되기’, ‘동물 되기’를 실천해 보는 것으로 말이다. 이제 인간 중심주의 사유를 벗는 새로운 포스트휴머니즘에는 철학자 라투르(B. Latour)의 주장처럼 기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자연의 정치학’이 필요해 보인다. 라투르가 인간뿐만 아니라 기계와 같은 비인간 또한 동일한 ‘행위자’로 간주하는 정치학으로서 말이다.
이번 기획전에서 13인의 예술가들은 기계 미학에 담긴 가상, 현실, 인간, 자연, 불확실성, 우연에 관한 비판적 분석과 엉뚱한 상상을 펼쳐 보인다. ‘숨 쉬는 기계’라는 전시명처럼, 참여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간, 비인간의 이분법과 기계에 대한 인간 중심주의를 탈주하고 기계를 인간과 공존하는 그리고 미래를 가속하는 또 다른 행위자의 모습으로 선보이는 셈이다.
한편,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물 기계 및 자동차 등 ‘인간 확장으로서의 기계’에 대한 각자의 사유를 역학 및 공학 설계로 시각화하는 젊은 공학도들의 드로잉 또한 흥미롭다, 재료역학, 유체역학. 열역학, 동역학과 같은 기계공학의 4대 역학을 탐구하면서도 순수 예술이 견지하는 창의력을 디자인 개념으로 되살린 작품 또한 없지 않다. 남겨진 관건이라면 공학적, 인문학적 성찰뿐만 아니라 무모하기까지 한 기계적 상상력을 더듬어 봄으로써 새로운 상상력의 지평이 무엇인지를 지속해서 탐구할 필요성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숨 쉬는 기계’와 같은 주제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행위자 전환을 탐구하는 새로운 기계 미학은 동시대의 주요한 화두라 할 것이다. (20240517)
출전 /
김성호, 「숨 쉬는 기계 – 행위자 전환의 미학」, 『숨 쉬는 기계』, 전시 카탈로그, 2024.
(2024 The Drawing-숨 쉬는 기계展, 국민대 조형갤러리, 2024. 05. 22-26 &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2024. 05. 27-0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