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은 큐레이터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에게 장르가 있듯이 큐레이터에게도 장르가 있다. 특정한 의제나 작가, 시대, 사조를 중심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회화나 조소, 미디어아트 등의 매체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뮤지움 종사자는 가능하면 폭넓은 지식과 안목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중요성만큼이나 전문분야의 깊이도 필수불가결하다. 그것은 큐레이터라는 지식인을 보편성과 특수성의 중간에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창조적인 영역에서 활동하게 만드는 저변의 힘이다. 미술영역에서는 작품을 이해하는 큐레이터의 안목이 최대 관건인데, 이 경우 특정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스페셜리스트의 입지는 제너럴리스트로서 큐레이터 활동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임종은은 한국화에 대한 남다른 식견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7년, 그는 쌈지스페이스 큐레이토리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뻥倣화론〉을 펼쳤다. 이 재기발랄한 화두는 대안공간 활동이 꽃피던 시절,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30대 초반의 신예 임종은을 일약 주목받는 청년 큐레이터로 인식하게 해주었다. 연구, 전시, 출판으로 이어진 이 프로젝트는 조선시대 화론서를 가상으로 발굴하여 전통과 현대미술을 견주어 재구성한 것이다. 이후에도 그는 ‘도쿄원더사이트’(2010)와 청두의 ‘A4 아트뮤지엄 레지던스’(2018) 등에 참가하면서 한국화와 아시아 미술에 천착하는 시간을 가졌다.

《상하이국제종이비엔날레》 특별전 예술감독(2019), 《족자카르타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2021) 등의 일을 통하여 그는 각국에 대한 현장조사를 기반으로 동시대 아시아성에 대해 깊이 있는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영역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현대미술로 확장하고 있다. 그는 전시, 작품, 토크, 낭독회, 강연 등을 통해 한국과 아시아의 공동체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궁극의 거래》(2019), 《설탕과 소금》(2021), 그리고 《약장수와 약속의 땅》(2023)과 같은 시리즈 전시는‘세계화 이후의 아시아 동시대 미술’을 통하여 현실의 삶과 예술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이렇듯 그는 이른바 국제미술이라는 말의 허황된 미망을 좇기보다는 한국과 전지구의 각 지역을 찾아 특수한 가치를 발굴하는 데 집중해왔다.

한국화와 아시아통 큐레이터 임종은은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이라는 구도보다는 한국화와 아시아미술이라는 상대적으로 구체적이고 특수한 국면의 의제들을 채택하면서 활동해왔다. 그것은 국내에서의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미술을 다루기 보다는 그것을 각 지역 공동체와 자연의 특수성과 만나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보편성의 예술에 경도되기보다는 특수성 기반의 예술 프로젝트를 통하여 큐레이터로서 지역성과 예술에 관해 좀 더 구체적인 일에 파고드는 데 관심을 두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서울은 단일한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각 지역구가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스물다섯개의 서울’이다. 그는 서울 안에서도 지역성을 찾는다. 최근에 영월에서의 예술프로젝트 《영월기행_안녕 + 하늘, 땅, 우리》(진달래장영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그는 조만간 서울시 영등포구와 협업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듯 지역성과 예술의 특수성을 접목하는 일은 그가 20년동안 미술현장에서 한국화의 잠재력을 더 깊이 파고들어 아시아미술현장과 연결하는 네트워킹의 연장선상에 있는 활동이다. 임종은정신의 핵심은 협력이다. 그는 더 넓고 다양한 세계와 연대하는 것이 연구과 기획의 제일 중요한 원리라고 믿고 있다. 그에게 큐레이터정신은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공존과 공유의 정신을 나누는 연대의 실천이다. 예술은 지난 시대의 유산이면서 동시에 현실과 호흡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창의 영역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 선 예술 영역의 큐레이터로서 임종은은 부지런히 특수와 보편, 지역과 아시아를 만나며 종횡무진하고 있다.


- 임종은(1976- ) 홍익대 미학과 석사 졸업 후 박사 수료. 대안공간루프 큐레이터(2006-2007), 아트센터화이트블럭 큐레이터 팀장(2013-2015) 역임. 일본,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서 다수의 레지던스와 국제미술전 기획 활동, 홍익대 미술대학원 초빙교수(2023- ), 독립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