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제공 이상원미술관 www.lswmuseum.com


이상원미술관(관장 이승형)은 《이상원, 50년 예술의 여정-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 않는다》전을 오는 11월 4일까지 연다. 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이다. 이상원(1935- ) 화백의 대표작 55점과 〈안중근 의사 표준 영정〉(1970) 원본을 접할 수 있다. 그동안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소장돼 있어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던 공인 영정이 처음으로 원작자의 고향을 찾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 않는다》(4.27-11.4) 전시포스터


전시는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이상원 화업(畵業) 반세기를 관통한다. 주제는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소설 『노인과 바다』(1952)에서 따왔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았던 인간의 강인한 정신을 담은 전시제목으로, 도전의 연속이었던 작가로서의 이상원의 삶과도 맞닿는다.

실제로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와 근대화를 경험한 이상원 화백의 삶은 외세의 침략과 지배, 내부의 혼란과 저항,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복잡하고 깊은 20세기 한국의 민중사의 굴곡 그대로이다. 비전공자임에도 변화의 의지를 텃밭으로 국내외 모두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한 예술가로서의 그의 인생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역사 속에서 건져 올린 이상원 화백의 주요 작품과 인간 이상원을 조명하는 자리다. 출품작 중엔 그의 화력(畵歷)에 중요한 분기점이 된 〈안중근 의사 영정〉을 비롯해, 극사실주의의 면모가 명료한 〈마대의 얼굴〉, 작가의 조형실험에 대한 의지가 읽히는 〈시간과 공간〉, 추상화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막〉 시리즈 등을 선보인다. 모두 70, 80년대 대표 연작이다.



《2024광복畵音-大韓國人 안중근 춘천에 나시다》포스터


이 중 지난 8월 15일 개관 10주년 기념행사인 〈2024광복 畵音-大韓國人 안중근 춘천에 나시다〉를 통해 공개된 〈안중근 의사 영정〉은 가장 주목되는 작품이다. 노산 이은상 선생의 요청으로 제작한 이 그림은 순수미술가로의 정체성 변화를 이끈, 초상화가로서 이상원 화백의 입지를 터놓은 계기가 됐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발표한 〈동해인〉 연작과 주요 작품인 〈수탉〉(2015), 〈순무〉(2015), 〈철모〉(2018) 등도 볼 수 있다.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6·25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작품 〈철모〉와 〈군화〉(2008) 연작에서처럼 잊히지 않는 비극의 잔상을 새긴 작품도 있지만, 노년에 접어든 작가가 자연과 흙에 초점을 맞춰 작업한 실험적 근작도 적지 않다.

이 가운데 〈동해인〉 시리즈는 인간의 삶에 대한 감정의 깊이가 물씬하다.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에는 시간의 흔적과 삶의 지혜, 존재의 무게가 드리워져 있으며, 치열한 노동의 장면에선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민중에 대한 작가의 살가운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이상원은 격변의 시대, 그 중심에서 사회와 민중의 삶, 인간의 강인함과 존엄성을 그렸으며, 영웅이나 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대신 ‘이곳’의 ‘현재’, 당대의 일상을 미화나 왜곡 없이 담았다. 그래서 그를 한국적 리얼리즘(Realism)의 대가로 평가하는 건 이상할 게 없다. 이번 전시의 의의도 그 리얼리즘의 재발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