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아트의 영역은 한없이 넓은 것 같다. 마치 홍수처럼 정착할 줄 모른다. 과거를 파괴하고 혁신하던 방법은 – 이제와서는 미지의 미래를 실현하기 위하여 현재를 파괴한다. 부정한다. 아니 「생기기 이전의 상황」을 실현하는 전위정신이 모던·아트의 영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세계는 합리나 비합리-추상이나 초현실의 조형이념으로는 따질 수 없는 비정형의 미의식 - 「앙포르멜」 〈Informel〉의 세계다. … 세기의 고도, 고도 속의 고아인 우리들의 현대미술은, 전환하는 앙포르멜과의 실존의식에서 모던·아트의 새로운 영역을 찾아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다. - 미지의 미래에로 확대하는 세계의 조형언어를, 우리는 우리들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세대의 전위정신은 우리들에게 그 가능성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대미술엔 오늘이란 철학의 뒷받침이 미약하고, 사고의 배경엔 고질적인 잔재가 많다. 지성의 빈곤에서 어떠한 동시대적인 공존의식이 싹틀 것인지 – 실로 숨가쁜 새로운 과제가 눈앞에 놓이게 되었다.”

김영주, 「앙포르멜과 우리미술」, 26×18, 15장
『조선일보』 1958.12.13. 수록원고
김영주(1920-1995)는 1950년대 한국의 현대미술을 견인했던 서양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이다. 1943년 일본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일본 전위미술단체인 미술문화협회전에 참여하였다. 김영주는 일관된 주제의식과 표현을 가지고 있었는데, 강렬한 원색과 독특한 필치, 독창적인 화풍으로 당대 전위적인 작품을 선보였으며 195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평론에서도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화풍인 앙포르멜과 전위성을 주장하는 글을 발표했다.
1953년 한국전쟁시기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1955년 홍익대학교를 출강하며 1956년 최순우, 한묵, 김중업, 정규, 이경성과 함께 한국미술평론가협회를 창립하고 1957년부터 1962년까지 대표를 역임하며 한국미술의 평론의 시대를 열었다. 195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잡지 『신미술』의 창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필진으로 활동하였다. 50년대 후반에만 잡지와 일간지에 60여 편 이상의 미술평론을 게재했다. “시대를 위해 글을 썼고 그림을 통해 시대를 맞섰다”라는 평가처럼 창작과 이론을 겸비하였으며 미술행정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57년 앙포르멜이라는 뜨거운 추상의 도입과 현대미술로의 도약의 시점에 한국 미술계를 견인하였다. 김영주의 활발한 평론 활동은 당대의 인식과 미술계의 논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본 박물관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평론 중, 5점의 신문기사, 1점의 작가평론, 1점의 원고 총 7점의 육필원고를 소장하고 있으며, 1964년 발간한 『동서미술개설』(문리사)을 소장하고 있다.

김영주 육필원고 소장목록
「앙포르멜과 우리미술」 (조선일보, 1958.12.13)
「전위의 언덕에서 열풍을 타고 – 7월회전평」 (조선일보, 1962.9.16)
「유기적인 추상미 – 김정숙 조각개인전평」 (1회 김정숙개인전, 1962, 신문회관)
「1963년 상반기의 미술」 (부산일보, 1963.8.2)
「추상·구상·사실」 (한국일보, 1963.8.20)
「세종로에서 남대문까지, 나의 꿈 나의 미학」 (조선일보 1964.10.27)
「예술활동에서 대립이나~」 (연도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