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일, 베니스비엔날레 귀국전에 즈음하여, 1996, 19×26cm, 11장, 서성록 기증
이일(李逸, 1932-1997)은 196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을 견인하며 이론적 틀을 정립한 1세대 미술평론가이다. 이일은 평생 시인으로 살기 원했던 문학도였다. 피난지인 부산에서 서울대 불문과에 재학중 『문학예술』에 추천되어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시 공부를 위해 1957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소르본대학교 불문과에서 수학 중 큐레이터 리아(Lia Grambihier)를 만나게 되면서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리아의 권유로 1961년 불문과에서 고고학, 미술사연구원으로 전과하였으며, 프랑스 미술평론가인 미셸 라공(Michel Ragon)의 『추상예술의 모험』을 추천받고 본격적인 미술사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책 서문에서 이일은 1961년 제2회 파리비엔날레 현지커미셔너로 활동하면서 추천 작품이 모두 추상화인 점에 고무되어 번역서 발간을 결심하였으며, 추상미술이 한때 유행일 뿐이라는 인식을 부인하며, 그럴수록 올바른 이론적인 이해를 위해 『추상예술의 모험』(1964, 문화교육출판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소장)을 발행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책의 발간에는 이일처럼 문학도였던 라공의 글에서 받은 감동과 서양화가 한묵, 박서보 및 리아의 조언과 격려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당시 많은 미술가들에게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이일은 1961년 제2회 파리비엔날레 현지커미셔너로 참가서문을 발표한 것이 첫 미술비평으로 알려져 있으며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조선일보 주불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현지의 소식을 전했다. 1965년 귀국하여 순수한 미술비평가들로 구성된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1966년부터 30년간 홍익대 교수로 재직하며, 동아일보 미술전담 집필, 1968년 앵포르멜 이후 이론과 창작을 겸비하며 실험미술의 장이었던 한국아방가르드협회 창립회원으로 미술비평가 오광수, 김인환과 함께 이론적 틀을 세웠다. 특히 1회전 《70년 AG전》 전시 서문을 통해 이일의 중요한 한국현대미술의 이론개념인 “환원과 확산”이 제시되었다. 이후 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이일은 모노크롬 회화와 관련하여 한국적 자연관을 접목시킨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일이 처음 활동할 시기에는 기사나 잡지 등에서 해외미술계 동향을 간접적으로 받고 있던 한국미술계는 이일이 전하는 최신 국제미술계의 동향과 파리 현지의 소식을 생생하게 전달 받았다. 또한 이일은 국제미술계에 한국미술을 소개하고 발판을 마련하며 한국미술계가 국제무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국제미술 속에 한국미술에 대한 분석과 비평을 통하여, 현대미술의 위치와 방향, 이론 정립에 공로를 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원고는 이일이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커미셔너로서 전시를 마치고 1996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된 귀국전의 친필서문이다.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는 윤형근, 전수천, 김인겸, 곽훈의 네 작가가 선정되었으며, 1986년 첫 비엔날레 참가 이후 4번째 참가로 한국관이 개관되는 열매를 맺게 된 전시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