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 등록 사립박물관·미술관 평가인증 시범운영
사립박물관에 대한 정부 지원의 규모와 종류가 늘어나면서 부작용도 뒤따르고 있다. 박물관이 ‘사회와 그 발전에 기여하는 비영리적이고 항구적 기관’이라는 ICOM의 박물관 정의는 박물관에 대한 정부 지원에 합리적 명분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정부 지원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박물관의 건강한 생태 유지와 다양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박물관이 사회와 그 발전에 기여하는 비영리적이고 항구적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과 ‘재정자립도’라는 두 개의 운영 기반이 튼실해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산하의 국·공립박물관에서나 기대해 볼 사안이다. 개인이 설립하여 운영하는 사립박물관의 경우 지속가능성과 재정자립도의 안정화는 허황된 구호가 될 공산이 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립박물관은 정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정부 지원을 받는 일이 쉬운가. 사립미술관의 설립자가 품었던 소명과 의욕은 대를 잇지 못하고 중단될 위기에 와 있다. ‘관장이 자식 세대로 바뀌면 사립박물관의 70%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어느 원로 사립박물관장의 말은 사립박물관의 어두운 미래를 보여준다. 문제는 사립박물관의 수가 우리나라 전체 박물관의 절반을 넘어서 있다는 것이다.
2023년 전국문화기반시설총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등록박물관 수는 1,199개 관이다. 국·공립박물관이 523개, 사립박물관이 557개, 대학박물관이 119개로 집계된다. 사립박물관이 국·공립박물관보다 수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1991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을 만들며 1,000개소 시대를 선언한 초대 문화부 장관의 노력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박물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정부가 주도하는 진흥정책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이들 신생 박물관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이후에 박물관 전문가, 특히 사립박물관 관장의 열정은 1976년에 출범한 한국박물관협회의 울타리를 해체하며 수많은 단체를 조직하며 정부 지원정책의 수위를 한층 높여 놓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립박물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실과 허의 상황을 만들어 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립박물관에 대한 정부 지원에 따른 문제점은 ‘지속가능성’과 ‘재정자립도’에서 드러난다. 우선 지속적인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면서 나타나는 불안정한 운영체계이다. 매년 지원금 수혜 여부에 따라 예산이 들쑥날쑥하고, 지원금을 겨냥한 기획안에 매달리다 보니 박물관의 회계 지표는 널을 뛴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사례를 보면 최근 2년 동안 사립박물관이 매년 받은 지원금은 3개-7개 사업에 5,600만 원-1억 7,000만 원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지원사업의 종류도 프로그램지원, 전문인력지원, 도슨트지원, 예비학예인력지원, 미술관문화가있는날, 문화예술기관연수단원지원, 시각예술창작산실공간지원, 현장예술인력지원, 지역문화유산교육사업, 생생문화재사업, 국가문화유산DB화 사업 등 다양하다. 정부 지원은 사립박물관의 지속적인 운영에 필수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재정자립도의 향상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립박물관 진흥을 위한 변곡점이 요구되고 있다.
사립박물관의 지속가능성과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와 박물관 전문가 그리고 일반 시민 모두가 나서야 한다. 우선 정부의 지원사업은 특화된 전시·교육 프로그램으로 독자적인 정체성을 모색하는 사립박물관을 우선 지원대상으로 삼아 지원금을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사립박물관은 정부 지원에 의존도를 낮추고 지속가능과 재정자립을 위한 특화 경영 전략을 세워야 한다. 관내 지역주민 공동체와 초중등 교육 기관, 기업과 단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외연 확대를 모색해야 한다. 시민의 입장에서 박물관이 운용하는 미술작품이나 유물 등의 문화유산(heritage)이 ‘공공재(public goods)’라는 인식을 갖고 함께 사립박물관 사업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립박물관이 문화 견인차로서 정체성을 회복하고 건강한 박물관 생태계의 주역으로 거듭나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