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우재필통박물관 정범진 설립자


10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모 대학 대학원에서 필자에게 강의를 듣던 어느 여학생이 아버지가 필통 수집가라며 박물관 상담을 해 왔다. 며칠 후 그 여학생의 부모님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방문했다. 많은 서책에 고풍스러운 서화가 정갈하게 걸려서인지 묵향 그득한 집안 분위기는 번잡한 일상에 모처럼 편안함을 안겨 주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필통 수집가인 동시에 중국 문학과 동양학 연구에서 큰 업적을 쌓아온, 대학자이며 모 대학 총장을 지낸 전직 교수였다.

소장품이 있는 방을 살펴보니,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여러 나라의 필통이 진열장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어진 차담에서 많은 대화가 오갔지만, 박물관만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피력하고 말았다. 필통은 펜이나 붓을 꽂는 것 말고는 별다른 원리가 없다는 것. 크기가 고만고만해 아기자기하지 못하다는 것. 구시대적 유물이어서 관람객에게 어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따라서 개인이 항구적으로 운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설립자의 고향인 경북 영주는 역사적으로 유교를 중심으로 한 선비문화가 강한 지역이니, 지역 정서와도 잘 맞는 수집품을 지자체와 협업하여 공립박물관으로 건립하는 게 어떻겠냐는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상담은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그 기억은 시간의 거리만큼 멀어져 있었다.



모우재필통박물관 ⓒ 제공 영주시청


지난해 이맘때쯤 그 여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동안 아버지가 영주에 박물관을 설립하셨다는 거였다. ‘모우재필통박물관’(관장 정해창)이다. 모우재(慕愚齋)는 설립자가 그의 10대조인 유학자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을 흠모해서 지은 서재 이름이다. 그리고 며칠 전 설립자인 정범진 전 성균관대 총장님의 서명본 도록이 도착했다. 도록을 펼치자 모 인사의 ‘모우재 소개’와 ‘추천사’, 정 총장의 ‘머릿말을 겸한 필통이야기’에 이어 정갈하게 촬영한 필통 사진에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다. 그 아래로 입수 일자와 장소, 입수 경위, 생산국가 및 연대, 재질과 등급, 말미에는 모우재를 찾아가는 길이 제시돼있다. 기승전결 전혀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 편의 논문같이 잘 정리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갈바람을 타고 잘 우려낸 차향이 은은히 스며 나오는 듯했다. 그 자체가 박물관이며 수장고이자 웹사이트처럼 느껴졌지만, 무엇보다도 설립자의 성품이 잘 담겼다는 느낌이었다.

정범진이 필통을 수집하게 된 계기는 특별하지만 자연스러웠다. 1978년, 그는 학교와 자매관계를 맺고 있던 대만의 한 대학에 교환교수로 파견된다. 그에게 제공된 관사의 책상은 주인이 용무를 마치고 나면 펜과 붓 등이 늘 어지럽게 나뒹굴곤 했다. 시내 나갈 일이 있어 염두에 뒀던 필통 하나를 사 와 정리했더니 이내 말끔해졌다. 그때 구입한 것은 대나무 마디를 한 대리석 필통이었다. 필기구가 늘어나자 필통도 하나둘 자리를 넓혀 갔다. 간혹 찾아주는 손님들은 정범진이 필통을 좋아하는 줄 알고 집에 있던 것을 가져와 놓고 가기도 했고, 사 들고 와 선물해 주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필통 수집에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귀국할 때 짐을 정리해 보니 그렇게 모인 필통이 20여 개나 되었다. 짐을 줄일 요량으로 몇 개를 버릴까도 궁리해봤으나 물끄러미 필통을 보자니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는 것들이라 귀국 인사 때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돌아와 짐을 풀어보니 일일이 포장해 어렵게 가져와서인지 오히려 애착심이 강해졌다. 필통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게 된 계기다.

수집은 국내외 학술행사나 여행, 학교 공식 출장이나 파견 등을 기회 삼아 현지 골동품 가게나 벼룩시장 등에서 구입한 것이 많다. 소문이 나자 지인들이 선물해 준 것과 많지는 않지만, 좋은 나무가 생기면 정 총장이 직접 글씨나 그림을 그려 제작한 것도 있다. 한번은 단체로 스위스 취리히에 갔을 때 일이다. 공식 일정이 마무리된 어느 날 늦은 시간, 주어진 약간의 자유시간에 마침 근처에 있던 호숫가에 벼룩시장이 서 있었다. 본능적으로 여기저기 좌판을 살펴보는데 뜻밖에도 귀한 필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파장 시간인데다가 가랑비까지 내리자 주인은 다급히 짐을 싸기 시작했고, 주어진 시간도 거의 허비한 정 총장 역시 마음이 조급해지긴 마찬가지였다. 이보다 더 완벽한 거래 환경은 없다. 좋은 작품을 저렴하게 수집할 수 있는 행운의 순간이었다.

어느 해에는 대낮에 집에 도둑이 들었다. 정 총장은 지방에, 부인 역시 출타 중일 때였다. 집에는 가사 도우미 한 사람이 있었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뉴스에도 나온 이 사건으로 귀한 서화 몇 점과 아끼던 필통 3-4점이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수집 의욕마저 크게 떨어뜨리게 됐고 이후로는 거의 수집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동을 지나가는데 땅바닥에 보자기를 펼쳐놓고 몇 가지 물건을 파는 아주머니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쪽을 향해 슬쩍 고개를 돌려보는데 필통 하나가 루페를 댄 활자처럼 눈에 확 들어왔다. 분명 도둑맞은 필통 중 하나였다. 아주머니의 처지를 생각해 추궁은 포기한 채, 어쩔 수 없이 하나의 필통을 두 번이나 구입하는 이상한 꼴이 되었지만, 잃어버린 필통과 감격스럽게 재회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옥인 줄 알고 샀던 것이 나중에 보니 석필(납석)로 된 것이었던 것 등. 수집 46년, 에피소드가 어디 한두 가지일까? 이렇듯 수집은 수집가가 겪은 스토리까지 더해져 완성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모우재필통박물관 ⓒ 제공 영주시청


“나에게 필통은 사랑스러운 자식 같습니다. 필통 역시 불후의 명문과 명화를 그려낸 펜과 붓을 자식처럼 보듬으며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해 줍니다. 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보람과 기쁨일까요? 필통은 어머니의 품이며 동시에 훌륭한 스승의 훈육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집을 통해 갖게 된 나름의 철학적 사고라고 정 총장은 말한다. 또 “필통이 비록 필기구를 꽂아두는 통류(筒類)에 불과하지만 값진 재료에 섬세한 조각과 아름다운 그림이 감싸고 있습니다. 예술적 아름다움이나 심리적 흥취감을 느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귀한가?” 도록에서 밝힌 정 총장의 필통 미학이다.

박물관을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희생을 수반하는지를 잘 알기에 만류했던 필자의 조언이 “이런 낭만적인 마음의 여유를 오래도록 간직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다.”(도록 ‘머릿말을 겸한 필통이야기’ 중에서)는 정 총장의 초월적 삶의 태도 앞에서 부끄럽기만 하다. 정 총장에게 박물관은 흩어져 갈 곳 잃은 필통의 안식처다. 그가 말한 필통이 그랬듯 말이다. 그리고 박물관에게 정 총장은 인류와 함께하며 문명과 대 역사를 이뤄낸 펜과 붓을 존중하여 요람으로 인도하는 매개자로 남을 것이다. 대 학자다운 면모다.




- 정범진(丁範鎭, 1935- ) 아호는 중당(中堂), 경북 영주 출생, 한국중어중문학회 회장, 한국중국학회 회장, 성균관대 교수와 총장, 중국 산동대 명예교수, 한국한시협회 회장, 소수서원 원장 역임. 동양대학교 석좌교수, 대만정치대학 명예문학박사, 한-우크라이나 친선협회장, 제1회 대한민국 선비대상 수상(2019). 『중국문학사』, 『당대소설연구』 등 저술. 『중국소설사략』, 『당대 전기소설선』, 『사기』(공역) 등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