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친필편지, 1962.5.18, 25×18cm, 3장, 신종섭 기증


김환기(金煥基, 1913-74)는 한국 추상미술 1세대 작가로 한국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니시키시로(錦城)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33-36년 니혼(日本)대학 미술부에서 수학하며, 1934년 일본 근대추상미술의 요람인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 들어가 일본 추상미술의 선구자 도고 세이지(東鄕靑兒, 1897-1978), 프랑스에서 20년간 활동하다가 돌아온 후지타 쓰구하루(藤田嗣治, 1886-1968) 등에게서 추상미술과 유럽미술사조를 배웠다. 1935년 일본의 재야 전람회인 이과전(二科展)에서 초현실주의 화풍에 고향에 있는 여동생을 그린 서정성을 담은〈종달새 노래할 때〉가 입선하며 등단하였다.

김환기는 중학교 5년간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적 감수성을 키웠으며 문학에도 관심이 많은 예술지망생이었다. 무엇보다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미술을 선택하였으며, 내면에 잠재된 음악성과 문학적 감성은 미술작품 전반에 내면화되었다. 김환기는 추상미술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것으로 고향인 전라남도 신안군 기좌도(현 안좌도)의 산과 바다, 하늘 그리고 한국의 전통적인 것들을 접목시키며 작가 내면의 정서를 담고자 평생을 연구하며 실험하였다.

광복 이후 김환기는 백자와 목기에 매료되어 집안 곳곳에 수집한 백자와 목기가 가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1950년대를 거치며 백자는 주요 소재였으며 그 외에 달과 산, 새, 사슴, 매화 등 한국적 소재를 그렸다. 1946년부터 1950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 종군화가단 활동 및 홍익대학교 미술과 교수로 부임하여 1955년 서울 종로에 미술교사가 있던 시절까지 재직하였다.



김환기 친필엽서, 1962.9.4, 15×11cm, 1장, 신종섭 기증


1956년부터 1959년까지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귀국한 후, 1959년부터 1963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로 복직하였으며 1963년 상파울루비엔날레 한국 참가단 대표로 참여한 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1974년 뉴욕에서 타계했다. 뉴욕시대에 김환기 평생의 추상을 집약한 전면점화를 제작하였다. 김환기는 평생을 예술가로 살았으며 홍익대 재직시절에도 제자들에게 예술가로서의 삶과 태도를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편지는 김환기가 군입대한 제자 신종섭(1937- )에게 보낸 편지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산을 색면으로 추상화하여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신종섭은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중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1958년 홍익대학교에 입학하여 1962년 졸업후 군입대를 하였다.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제자에게 보낸 답장은 김환기가 제자들에게 가졌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다. 특유의 필체로 쓴 편지는 시정과 격려로 가득하다.


“우리 美術學部 敎授室에는 자네가 두고 간 그림이 正面에 걸려있다네. 無時로 보아지는 자네 작품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네. 어디 꼭 붓을 드러야만 작품이 되겠나? 예술이란 정신적 준비 기간도 있는 법이니 장차의 예술을 하기 爲해서든 지금의 군의 군복생활이 살이 되고 피가 될지도 모르니 굿센 정신 훈련이 있기를 바라네. 우리 學生들, 모도들 열심으로 공부하고 있다네. 実로 좋은 美術學校가 되어야겠는데, 어려운 일이 泰山같네.” (1962.5.18.)

“군내에 여러 同志들이 있어 적적하지 않을 줄로 아나 예술에의 꿈은 못견디게 고독의 골목에 있을지도 모르네. 부디 명랑하고 아름다운 꿈을 잊이마소. 자네들은 훌융한 예술가가 될 것일세.” (196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