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강림과 회화적 제의를 모색하는 심적 풍경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원로화가 곽훈의 최근 개인전은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오마쥬(Hommage to Homo Sapience)’라는 주제 아래 선보인다. 이 작품은 그가 오래전 찻잔을 소재, 제재로 천착해 왔던 '다완(Tea Bowl)' 연작과 최근 몇 년 동안 몰입해 왔던 ‘할라잇(Halaayt)’ 연작을 계승하고 통합하는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번 전시는 현생 인류의 마지막이라 간주되는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을 위해 전인적 사투를 벌였던 포경이라는 이름의 사냥과 더불어 유목을 마치고 정주의 삶을 경영하면서 정신의 풍요를 도모했던 차 문화를 한데 아우르는 종합적인 세계를 선보인다.
유용을 도모했던 포획의 야만과 무용을 추구했던 식음의 사치가 어떻게 한 전시에서 맞물릴 수 있을까? 아니! 왜 뜬금없이 커다란 고래와 작은 찻잔이 그리고 신작과 구작이 그의 이번 전시 안에서 한꺼번에 만나는 것일까?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곽훈은 1층에 자리잡은 전시장 초입 벽면에 무수한 찻잔을 멀티플로 가득 그린 가로 7m, 세로 4m의 크기의 대형 회화 설치 작품인 '오마주 투 호모 사피엔스'를 설치하고 한 쪽에 7개의 찻잔이 찻물을 가득 쏟아내고 있는 형상의 도조 작품인 ‘푸링(pouring)’을 설치했다. 1층 전시장이 이번 전시의 정수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차와 차가 품은 세계에 관한 그의 초기적 관심을 근 10년 만에 ‘지금, 여기’에 곱씹듯이 다시 꺼내어 한꺼번에 쏟아내듯이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막사발인 이도다완(井戶茶碗)을 그린 것일까? 막사발처럼 비뚤어진 비대칭의 외형을 지닌 작은 찻잔들만 가득히 그려져 있는 대형 회화에 붙여진 작품명이 전시명을 대신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다도(茶道)라는 이름을 내 건 이 식음의 사치가 품은 세계관은 분명 이 원로작가의 마음을 훔치고도 남았으리라. 차를 담은 찻잔, 차를 마실 공간,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정원 그리고 차를 함께 마실 손님과 그 사이에서 지켜야 할 예절은 다도의 기본이다. 당나라 선승 조주(趙州)가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에게 “차나 한 잔 마시고 가시게”라는 선문답을 남겼다고 했던가? 차가 쏟아져 나오는 도조 작품 ‘푸링’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작은 그릇 안에 찻물을 담아 무한한 우주를 향유하는 다도의 세계와 미학을 그의 작품 속에서 능히 가늠할 만하다. 무용의 식음 사치! 그것을 지향하는 그의 작업은 제의적 가치 혹은 종교의 경지를 넘보는 것이리라.
반면에 2층에서부터 3층까지 선보이는 ‘할라잇’ 연작에는 고대 이누이트(Innuit)인의 고래사냥 풍경을 가득 채웠다. 푸른색과 흰색이 화면을 할퀴고 간 자리에 뒤섞인 채 떠오르는 커다란 고래의 형상, 그리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위 자그마한 카누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맡긴 채 사투를 벌이고 있는 에스키모인들! 30여 년 전 알래스카 여행 당시 해변에서 발견했던 다량의 고래뼈, 이후에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발견했던 고래사냥 장면에 영감을 받아 잉태한 그의 이 연작에는 ‘이누이트어(語)’로 ‘신의 강림 혹은 신의 선물’으로 불리는 ‘할라잇’이라는 말처럼, 제의적 가치와 신념으로 가득하다.
곽훈은 이 연작을 통해서 이누이트인의 고래사냥이라는 것이 자연을 정복하는 인류의 야만적 폭력이기보다 조상신이 점지해 주는 은총을 갈망하는 제의적 행위였음에 주목한다. 가족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이누이트인이 고래사냥에 나서면서 간절하게 기원했던 ‘신의 강림과 은총’이란 멀리 있지 않다. 삶의 위치에서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과 몸의 실천 속에 신이 강림하고 신의 은총을 입는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라는 현생 인류의 삶의 경영과 그것에 녹아 있는 삶의 지혜는 신의 섭리와 은총을 기원하는 가운데 빛난다.
작가 곽훈이 이러한 현생 인류의 세계관을 오늘날 현대인의 번잡한 마음속에서 찾고자 하는 까닭일까? 그는 일필휘지의 휘몰아치는 표현주의적 붓질과 물감의 운위 속에서 고래사냥과 찻잔이라는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세계관을 하나로 아우른다. 이 글이 그의 그림을 ‘신의 강림과 회화적 제의를 모색하는 심적 풍경’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
출전 /
김성호, 「신의 강림과 회화적 제의를 모색하는 심적 풍경」, 포커스, 『아트인컬쳐』, 4월호, 2023.
(곽훈 개인전-HOMAGE to HOMO SAPIENS, 2023.3.2.~3.31, 예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