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헌이 고서와 인연을 맺은 건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1898-1961)의 수필집 『명정(酩酊) 40년』에 의해서다. 이 책은 호주가(好酒家) 변영로가 40년 동안 술을 가까이하면서 겪은 기행(奇行)을 해학적으로 발효해낸 자전적 수필집이다. 고등학생 박대헌은 국어 선생님이 들려준 수주의 술주정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흥미진진한 얘기는 『명정 40년』의 일부였다. 그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명정 40년』 초판본을 구하기 위해 고서점이 몰려있던 청계천을 누비기 시작한다. 왜 그랬는지 그 짧은 국어 수업만으로는 설명할 재간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적지 않은 계기가 되었고, 초판본의 출간 연도가 박대헌이 태어난 해(1953)와 일치한다는 정도의 우연이 전부였다고 그는 회고한다. 책은 몇 해 지나지 않아 손에 쥘 수 있었지만, 그때부터 시간이 날 때면 고서점을 기웃거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박대헌 관장


고서점에 책을 대주는 이는 고물장수들이다. 고물장수들은 수거해온 책들이 쓰레기처럼 취급되는 것이 아깝기도 했지만, 폐지로 처분되기 전에 한 푼이라도 더 받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그런 이치를 알게 된 박대헌은 고물장수들이 들르는 시간에 맞춰 헌책방을 찾게 된다. 초창기 그렇게 얻은 책이 정지용의 『지용시선』(1946), 임화의 평론집 『문학의 논리』(1940)와 시집 『현해탄』(1938) 같은 희귀 도서다. 책살 돈은 늘 부족했지만, 헌책보다는 최근에 나온 책을 선호하던 헌책방의 생리 때문에 그에게까지 기회가 올 수 있었다.

그렇게 책이 모이자 동시대 계보가 어렴풋하게나마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무렵 헌책방은 심드렁해졌고, 고물장수를 일일이 쫓아다니는 일도 지쳐가고 있었다. 물고기를 찾아다니는 것에서 이들이 모여들 수 있는 웅덩이를 파기로 했다. 그것이 고서점 ‘호산방(壺山房)’이다. 호산방은 그간 모은 책을 재정리하는 방편이기도 했지만, 호서가(好書家)들의 사랑방은 물론 서가로 드나드는 길목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책도 사람도 머무는 교감의 장이 되었다.

그는 첫 번째 프로젝트로 그간 모은 자료를 정리한 『서양인이 본 조선』(1996)을 펴내게 된다. 서양의 선교사, 탐험가, 군인, 학자들이 그들의 시선으로 조선의 300년(1655-1949)을 기록해놓은 책자를 20년에 걸쳐 서지학적으로 분석해 낸 대역사였다. 이 책은 여타의 출판기념 행사와는 달리 전문미술관에서 전시와 함께 진행한, 참신한 시도와 더불어 150만 원이라는 책값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고서도 기획 여하에 따라 미술의 한 장르로도 손색없다는 것을 실증해낸 시도였다.”고 그는 당시를 기억한다.



2006 7회 영월책축제


박대헌이 고서를 싸 들고 강원도 영월로 들어간 것은 1999년의 일이다. ‘책 마을’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에 찬 포부를 안고 내린,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다시는 서울을 기웃거리지 않을 요량으로 ‘호산방’을 정리하는 배수진도 쳤다. 가족과 함께 둥지를 튼 곳은 1998년에 문을 닫은 여촌분교였다. 진입로는 사라지고 잡풀만이 무성한 폐교에 짊어지고 온 책을 내려놓고 우리나라 최초의 책 박물관인 ‘영월책박물관’을 열었다. 책 마을의 베이스캠프인 셈이다. 박물관에 획기적인 기획과 디자인을 입혀 나아갔다. “책을 보여준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크기도 비슷비슷하고 색깔도 누리 퉤퉤해 쉬이 매력을 줄 수 없거든요. 하물며 고서는 어떻겠어요. 이는 박물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디자인입니다. 그래야 관람객들도 흥미를 느낄 테니까요.” 책 마을까지 그는 짧으면 5년을 길면 20년을 내다봤다. 

박물관 로고와 초청장, 홍보물 등은 전문 디자이너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어느 정도 형태가 갖춰지자 전시부터 기획했다. 《옛날은 우습구나!》전이 그것이다. 송광용 화백이 기증한 101권의 『만화일기』를 전시품으로 했던 이 프로젝트는 큰 호응을 얻었다. 책 마을 조성작업도 병행하는 한편, 영월군을 박물관 고을로 특성화하는 데도 앞장서 박물관 유치에도 힘을 기울였다. 박물관협회장을 맡아 다양한 전문가들과 교감하며 사업을 차근차근 추진해 나아갔다.

그러나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 크고 작은 어려움이 불쑥불쑥 길을 막곤 했다. 순간순간 맛보는 보람과 성취감만큼 피로는 누적되어갔고, 급기야는 영월을 떠나야 해소되는 아이러니로 이어졌다. 그는 “명분을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일축하며 다 설명할 수는 없다고 했다. 어쩌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처럼 보였다. 2010년 12월, 박물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끝으로 영월 생활을 정리하기로 한다. 그렇게 영월을 떠난 박 관장은 서울프레스센터, 파주 출판단지를 거쳐 인사동으로 ‘호산방’을 옮겨 다시 문을 열었다. 모든 걸 잊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박 관장의 뇌리에는 영월에서 꿈꿨던 책 마을 프로젝트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삼례책마을 헌책방


2013년 박물관과 헌책방, 고서점이 어우러진 전북 완주 삼례에 ‘책 마을’을 기획하게 된 계기다. 책 마을에는 다양한 우리 옛 책을 판매하는 고서점과 북카페, 한국학문헌아카이브센터가 들어섰다. 박대헌은 초기‘고서 대학’을 열어 주민에게 고서란 무엇이며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수집과 연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피력해 나아갔다. 그리고 영월책박물관과 호산방을 점차 삼례로 옮기게 된다.

그렇게 10년여, 간간이 오가곤 하던 삼례 책 마을을 오랜만에 찾았다. 많은 변화에서도 어느 성곽의 초석처럼 잘 정착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반갑게 맞이해준 박 관장은 《세잔이 보인다-19세기 프랑스 명화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실로 필자를 안내했다. 이 전시에서 선뵈는 작품들은 작가의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에서는 발견되지 않지만, 박 관장이 타고난 안목으로 수집한 19세기 유럽 대가들의 작품이다. 그의 호산방 컬렉션이 공신력을 갖기 위해서는 감정 절차가 필요하다. 이에 앞서 이 작품들이 수집되기까지의 과정과 현재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목적으로 발간한 《세잔이 보인다-그림 감정과 컬렉션》은 그의 성품만큼이나 치밀하게 잘 정리된 ‘컬렉션 레조네’로 보기에 적절한 시도였음을 느끼게 했다.

얼마 전 박 관장이 바쁜 일정을 빼 남평주조장을 방문했다. 남평주조장을 통해 그와 같은 길을 밟고자 하는 필자에게 적잖은 조언과 함께, 주조장 연구에 필요할 거라며 희귀서 『조선주조사(朝鮮酒造史)』(조선주조협회, 1935)를 슬쩍 놓고 갔다. 이 자리를 빌려 그 애틋한 마음에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 필자가 오랫동안 봐온 박대헌 관장은 오래돼 누렇게 변한 책 한 권도 예술을 입혀 새로운 문화가치로 창출해내는 ‘마이다스’같은 분이다. 창의적인 감각과 치밀한 추진력으로 끊임없이 문화 지평을 넓혀가는 열정의 소유자이기
도 하다.



- 박대헌(朴大憲, 1953- ) 동국대 대학원 신문방송학 석사, 서지학자, 고서점 호산방 설립, 영월책박물관 관장 역임, 완주책박물관 관장, 삼례책마을협동조합 이사장, 그림책미술관 관장. 한국출판문화상(제37회, 제40회)·독서문화상·한국출판 우수학술상 수상. 『서양인이 본 조선』, 『우리 책의 장정과 장정가들』, 『고서 이야기』, 『한국북디자인 100년』, 『세잔이 보인다-그림 감정과 컬렉션』 등의 저서와 「서양지도에 나타난 제주의 모습과 그 명칭에 관한 연구」 등 여러 편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