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강 친필 추천서, 1961.12.21, 27×18cm, 2장, 조평휘 기증


본 자료는 서예가 유희강(柳熙綱, 1911-1976)이 강화도에 위치한 심도직물 김재소(1916-1972) 사장에게 한국화가 조평휘(趙平彙, 1932-)를 추천하는 친필 편지이다.

유희강은 한국의 전통을 잇는 마지막 세대로서 추사 이후의 명필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 근현대 1세대 서예가이다. 경기도 부평군(현재 인천)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가학의 전통에 따라 한학과 서예를 익혔고 1934년 명륜학원에서 신학문을 수학했다. 1938년 중국으로 건너가 8년간 체류하며 중국 서화, 금석학, 서양화 등 중국의 예술을 섭렵하고 중국 각지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다. 해방 후 1946년 인천으로 귀향하여 1세대 미술평론가인 이경성과 함께 인천예술인협회 창립에 참여하고 미술인연구회 회원, 문총 인천지부 미술부문에 활동하였으며, 2대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역임하는 등 인천지역 미술분야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하였다. 유희강은 서양화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온전히 서예에 전념하게 되는데, 자신의 호인 ‘검여(劍如), 검과 같은 준엄성과 돌과 같은(石如) 견고성, 박처럼(瓢如) 둥근 소박성’을 지니며 조형미와 회화미, 격조 높은 경지로 평가받는 그의 서예는 금석학과 서양화 연구 및 온건한 성품과 치열한 예술적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68년 급작스러운 오른쪽 마비에도 좌수서로 재기하며 문자향 서권기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한국화가 조평휘는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으로 인천으로 남하하여 주경야독하며 인천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술교사가 되기 위해 1955년 서울대학교 중등교원양성소에 입학하여 미술교사를 하던 중, 화가가 되기 위해 1958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이상범과 김기창에게 지도를 받으며 미술계에 입문하였다. 1963년부터 인천 대건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첫 부임하여 목원대 교수로 퇴임하기까지 교육자로서 활동하였으며, 신수회, 운사회 등 단체 참여하였다. 조평휘는 자신만의 현대적 산수화를 실험하며 활발하게 활동해 왔으며 2014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개최된 바 있다.

일제 강점기에 강화도는 직물공장이 40여 개가 있을 정도로 직물산업이 번화하던 곳이다. 김재소 사장은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직물업에 종사하다가 1947년 강화도에 들어와 심도직물을 설립하였으며, 1967년에는 김포, 강화지역의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유희강이 조평휘를 추천했던 시기는 조평휘가 1960년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다음해로, 유희강의 추천으로 잠시 동안 심도직물에서 근무하였다고 회고했다. 유희강은 조평휘가 좋은 인품으로 평이 난 것처럼 “인천의 미술동인으로 평소부터 친절한 교우이오며 매우 착실하고 어느 직장이나 생활 주변에서도 인화를 잘 맺을 수 있는 인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인천에서 함께 활동하던 예술인들과의 특별한 관계와 유희강의 친필,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들을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