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공생을 향한 이별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제22회 문신미술상 수상 작가 김성복 초대전》(2024. 5. 27~7. 28,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에는 ‘지금, 여기’를 사는 조각가 김성복의 예술적 발언으로 가득하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내세우는 주제 《이별》은 ‘이별(☆)’과 ‘이별(離別)’이라는 동음이의어로 구성된 두 개의 주제어를 함축한다. 즉 띄어쓰기를 고의로 방기한 ‘이별’이라는 주제어와 지구 행성의 의미를 상징하는 별 모양의 도상기호를 병기하는 한편, 헤어짐을 의미하는 ‘이별’이라는 주제어와 그 의미를 강조하는 한자어를 병기한 텍스트 표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언어적 장치는 지구라는 행성인 ‘이 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 위기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이별’을 실천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인류는 지구의 자연환경의 대 재난적 상황을 속히 치유하고 자연과의 공생의 길로 나가자”고 하는 ‘생태적 공생’의 메시지를 청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성복의 개인전에서, 자연과의 공생의 메시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또한 시대적 과제에 대해 시각 예술로 메시지를 전하는 김성복의 사회적 발언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가? 미학 외부로 관심을 돌리는 그의 작업이 지닌 사회적 메시지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II. 이 별 - ‘지금, 여기’의 지구환경
김성복이 제시한 주제어 ‘이별(☆)’, 즉 ‘이 별’이라는 지구환경은, 주지하듯이, 극심한 위기의 시대를 겪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에 기인한 오존층 파괴와 그것으로 인한 기후 온난화를 생각해 보라. 빙하는 감소하고, 홍수와 가뭄이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등 대재난 수준의 환경 기후 변화는 도처에서 발생하는 중이다. 그뿐인가? 자원 추출에 의한 열대 우림 파괴나 위기종의 사냥과 포획으로 인한 생물종 다양성 감소 등 인류가 직면한 지구환경의 위기는 지구 종말을 예감하게 할 만큼 심각하다.
누가 지구환경을 이러한 대재난의 상황에 이르게 하였는가?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예측, 예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자연현상과 달리,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대재난을 잉태한 이러한 기후 변화는 순전히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결과물이다. 우리 인간이 지구환경의 위기를 몰고 온 주범인 셈이다.
생각해 보라!! 지구를 유목의 공간으로 삼아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떠돌아다니던 원시인들에게 지구는 그저 순수 자연인 ‘매끈한 공간(espace lisse)’일 뿐이었다. 여기에 인간을 위한 벽을 쌓고 수로를 파서 ’집(住)‘ 또는 ’성(城)‘을 쌓아 올리기 시작한 문명의 공간은 인공물로 가득 찬 ‘홈이 팬 공간(espace strié)'으로 변모했다. 직조, 재배. 축산, 건축 그리고 기술 등 인간에 의해서 가속화한 문명의 지구는 순환의 생태계가 오염된 지 오래다. 인간이 지구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지질시대인 충적세(沖積世) 즉 홀로세(Holocene) 중에서 현재 시대를 새롭게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로 바꿔 부르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환경 대재난의 위기가 인간에게서 기인했음을 자백한 조치라고 하겠다.
조각가 김성복은 이번 수상 초대전에서, ‘이 별’, 즉 ‘오늘날 위기 행성인 지구’의 대재난을 초래한 주범이 인간이었음을 강조하려는 듯 전시장 초입 야외 공간에 인체 조각 한 점을 내세웠다. 지구의 위기를 촉발한 주범인 인간 형상을 말이다. 그것은 〈이별-낙원에서의 추방〉이라는 제명의 작품으로 두 손을 얼굴로 감싼 채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형상의 인체 조각이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마사초(Masaccio, 1401-1428)의 프레스코 벽화 <낙원에서의 추방>(1425)의 오마주로 기능한다. 그도 그럴 것이 김성복은, 마사초의 이 작품에서 ‘금단의 열매였던 선악과를 취한 후 야훼에 의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있는 아담(Adam)을 소재로 삼아 조각으로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성복은 마사초의 회화에 등장하는 두 인물인 아담과 하와(Eve) 중 왜 아담만을 조각으로 만들어 선보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자.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이름은 ‘신이 아담을 흙을 빚어 만들었다는 구약성서 내용처럼, ‘흙’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다마(Adama, אדמה)’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히브리어 아담(אָדָם)은 첫 인간 남자의 이름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 혹은 인류 전체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사용된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볼 때, 자연의 일부였던 인간(아담)이 에덴동산(자연)으로부터 추방되는 상황 자체를 작가 김성복은 오늘날 인간(자연 훼손의 주범)이 삶의 터전인 지구(자연)로부터 추방될 수도 있는 상황과 동일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아니라면, 작가 김성복이 마사초의 그림에서, 선악과를 취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부끄러움을 알게 된 두 사람 중 가슴과 치부를 가리고 있는 하와 대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아담의 모습에서 인류가 맞닥뜨린 참회의 고통을 더 깊이 읽어낸 까닭인지도 모른다.
김성복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단조의 방식으로 다룬 그만의 아담 형상을 통해서 기독교 신화 속 최초의 인간과 오늘날 문명화된 인간의 표상을 살포시 겹쳐 놓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의 원죄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최초 인간과 인간의 근원적 범죄로 인해 대재난에 도달한 지구로부터 추방될 ‘지금, 여기’의 최후 인간의 운명을 종말론적 시간에서 함께 탐구한다. 그래서 전시장 밖으로 추방된 이 작품, 〈이별-낙원에서의 추방〉은 원죄를 저지른 최초 인간 아담인 동시에 그 죄의 업보를 이어받은 최후의 지구 인간이라고 해설할 수 있겠다.




III. 이별 - 지구 최후의 날 앞에서
그렇다면, 조각가 김성복이 전시장 안에 구현한 지구 세계는 어떠한가? 그곳에는 또 다른(혹은 동일한) 한 명의 인간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동물들로 가득하다. 여기에 있는 인간은 두 팔을 벌리고 관객을 맞이한다. 그것은 관객을 반갑게 맞이하는 광경이기보다 관객에게 무엇인가 호소하듯이 외마디를 외치면서 달려 나오고 있는 형국처럼 보인다. 벌린 팔과 뛰어나오는 듯한 운동성의 동세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커다란 크기로 왜곡된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도드라지게 강조된 붉은색의 눈은 전시장 안 인체 조각을 극도의 긴장 상태의 무엇으로 만들기에 족하다.
작가는 왜 스테인리스 스틸의 인물상에서 유독 두 눈만을 붉은색으로 칠했을까? 이러한 조형적 장치는 붉은 노을빛이 동공에 투영된 상태를 의도한 것이다. 즉 그것은 저녁 무렵의 서정적인 풍경이기보다 지구 종말이 임박한 순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전시장 밖에 있는 인물이 원죄로 깨닫게 된 부끄러움을 감추고자 두 눈을 가리면서 참회하던 최초 인간 아담이자 동시에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종말을 맞이하게 된 최후의 인간이라면, 전시장 안에 있는 이 인물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최후의 지구 인간 사이에 위치한 누군가일 수도 있겠다. 또는 종말을 예감하고 극심한 불안에 허덕이는 동일한 최후 지구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전시장에 자리한 붉은 눈의 생명체는 비단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 최후 인간 주변을 서성이는 모든 야생 동물의 눈은 마치 충혈된 것처럼 벌겋게 칠해져 있다. 모리셔스의 도도새처럼 이미 멸종한 동물이거나, 황새, 크낙새, 북부 아프리카 흰코뿔소, 갈라파고스 거북, 금개구리, 백두산 호랑이, 산양, 독도 강치 등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물들이 그들이다.
전시장에 놓인 이 야생 동물들의 ‘붉은 눈’은 지구 종말의 순간을 상징한다. 붉은 눈뿐만 아니라 단조로 만들어진 스테인리스 스틸의 각진 피부는 멸종의 위험과 지구 위기의 불안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조각적 텍스처’로 작동한다. 전시장에 자리를 잡은 멸종 위기종들의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피부는 주변 풍경을 왜곡하여 반영함으로써 전반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더욱더 극대화한다. 천장에 매달린 새 한 마리는 또 어떠한가? 조명 장치를 통해서 벽면에 두 개의 그림자를 비추게 함으로써 전시장을 음습한 종말의 초현실주의적 분위기로 이끌어 간다.
이러한 차원에서 김성복이 전시로 꾸린 박제처럼 굳어버린 야외의 인물 조각상과 실내의 인물, 동물 조각상은 이미 종말 이후를 상상하는 군집 초상이자 미래 풍경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신이 계시를 통하여 진리를 나타낸다는 이론”인 묵시론(黙示論)적인 인류 종말의 풍경을 선명하고도 비장하게 선보인다. 그런 차원에서 김성복이 이번 전시에서 인간과 동물 초상이 만드는 군집 초상을 통해서 전하는 사회적 메시지는 자연 파괴의 주범인 인류에게 던지는 강력한 경고인 동시에, 이러한 ‘지구 최후의 날’을 앞당기는 반생태적인 상황과의 ‘이별’을 모색하자는 간절한 청유가 된다.
IV. 헤어질 결심 - 생태적 공생을 위해서
김성복은 오랫동안 구상 조각의 영역에서 인간 역사의 전통과 신화의 세계, 그리고 한국성의 변용과 현대적 재해석에 관한 주제 의식을 탐구해 왔다. 김성복의 이번 개인전은 이러한 주제 의식을 지구환경의 생태적 미래와 같은 문제의식으로 치환한다. 즉 전통, 신화와 같은 과거, 현재의 문제로부터 생태적 과제와 같은 현재와 미래의 문제로 자리 이동하는 중이다.
김성복은 이번 전시에서 지구환경의 종말적 위기를 고발하고, 지구라는 ‘이 별’에서의 일련의 반환경적인 인간 중심주의적 행위에 대한 결단력 있는 ‘이별’을 선포한다. 이러한 이별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방점이 찍힌 관점으로부터 ‘자연’에 방점이 찍힌 관점으로 이동할 과제가 요청된다. 오늘날 인간 공동체는, 탄소 배출량을 줄여 지구온난화를 늦추고 전 지구적 생태계를 회복하고자 한 파리기후변화협약과 같은 국제사회의 협력처럼 인간의 편의를 위한 인간중심주의와 이별하고 자연의 입장에서 사유하는 자연중심주의를 제시, 실천하는 중이다.
김성복 또한 이번 전시에서 인간에게 정복의 대상이었던 자연이 되어보는 체험을 관객에게 제공함으로써, 피폐해진 자연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자연중심주의적 사유를 실천하고자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김성복의 개인전이 요청하는 ‘인간중심주의와의 이별’이란 결국 들뢰즈와 가타리(Gilles Deleuze & Félix Guattari) 철학의 메타포인 ‘되기(devenir)’의 철학을 실천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여기서 되기란 ‘한 주체가 스스로 다른 것으로 되어 가는 과정’이자. ‘되려는 지향점에 주체를 투사하는 것’이다. 즉 그가 관객에게 전시장을 채운 벌건 눈의 멸종 위기종의 동물이 되어보길 청하는 것이다. 갈라파고스 거북이나 백두산 호랑이도 되어보고, 산양이나 독도 강치도 되어보는 식으로 말이다.
《제22회 문신미술상 수상 작가 김성복 초대전》은 ‘이별’이라는 주제 아래 ‘되기’의 사유를 시각 예술로 실천함으로써, ‘지구와의 이별’을 재촉하는 ‘인간중심주의’와 헤어질 결심을 선보인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인간중심주의’와 결별하고 ‘자연중심주의’라고 하는 생태학의 근본적 사유를 통해 ‘생태적 공생’이라는 실천을 청유하는 전시라고 평가해 볼 만하다. (20240718)
출전/
김성호, 「생태적 공생을 향한 이별」, 『미술평단』, 여름호, 2024.
《제22회 문신미술상 수상 작가 김성복 초대전》(2024. 5. 27~7. 28,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