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즐거움으로의 초대 – 2024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김성호(미술평론가, 성신여대 초빙교수)
새로운 변화
이천시가 1998년부터 개최했던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ISSI)》이 매해 행사를 이어오다 2022년 25회 행사를 마친 후 2023년부터 격년제로 새 단장을 했다. 이른바 비엔날레 형식의 행사로 변경한 셈이다. 행사는 이천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면서 첫해(2023)에 실내 위주의 프로젝트전으로, 다음 해(2024)에 야외 위주의 전시 개념으로 치러진다. 이러한 차원에서 올해 26회 행사는 장기적 비전 아래 변화를 시도했던 그간의 결과물에 대해 첫선을 보이는 장이다.
올해 8월 19일부터 9월 9일까지 22일간 이천 서희테마파크에서 열리는 《2024 제26회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은 ‘낯선 즐거움으로의 초대’라는 주제로 공모에 최종 선정된 4인의 작품으로 구성된 ‘본전시’와 함께 33개 부스에 국내외 유명 조각가들의 40여 점을 초대한 ‘특별전’이 동시에 열린다.
주최 측은 본전시에 최종 4인이 선정되기까지 오랜 시간과 준비로 공을 들였다. 2023년 국내외 공모를 통한 1차 서류 심사를 거쳐 60여 점을 선정한 후 전시로 구성한 프레 행사 개념의 《프로젝트전》을 선보였고, 이 기간에 국내외 미술 전문가들에 의한 ‘전문 심사’, 시민들에 의한 ‘일반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4인을 선정했다. 이상길, 이송준(한국), 아나 테레사 라신스카(Anna Teresa Rasinska, 폴란드), 마지드 하그히기(Majid Haghighi, 이란)가 그들이다. 이들의 출품작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자연의 순환과 가상의 생명체를 담은 조각
이상길의 〈Contact-together〉 연작은 자연의 조약돌이라는 미시 대상을 작업으로 끌어들여 대자연이라는 ‘거시 대상’을 이야기한다. 이 조약돌은 곧 자연이자 인간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메타포로 작동한다. 화성암처럼 단단해지고(생), 변성암처럼 시련을 겪다가(로병) 퇴적암처럼 흙과 몸을 섞는(사) ‘돌의 순환’은 인간의 생로병사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까닭이다.
그의 작품 제재는 조약돌이라는 자연이지만, 작품의 소재는 화강석이라는 자연물과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인공물이 하나의 쌍을 이룬 것이다. 작품의 형식은 자연물의 외형과 닮아있는 재현의 소산일 따름이지만, 그 내용은 자연과 인공이 맞물려 있는 현실을 사는 현대인에게 전하는 생태미학적 사유를 함유한다. 관객은 조약돌 형상을 품은 한 쌍의 자연 이미지 앞에서 조약돌이 간직한 과거의 시간을 더듬어보면서 저마다 자기의 과거 시간을 되돌아보고 ‘다시 숨쉬기’하는 충전의 힘을 얻게 된다. ‘더불어, 함께’라는 공존과 공생의 생태적 사유를 곱씹어보면서 말이다.

이상길(한국)_Contact_together, 2024
이란 작가 ‘마지드 하그히기’의 〈크리스탈 넥서스(Crystal Nexus)〉 연작은, ‘성장하여 일정한 형상을 이룬 결정체’인 크리스털과 ‘어떠한 것들의 연쇄적 결합’을 의미하는 넥서스를 결합하여, ‘미래의 새로운 혼성 주체’를 상상하고 조각의 언어로 제시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반투명의 보라색 플랙시글라스(Plexiglas) 시트가 마치 인간 뇌의 주름(혹은 꽃)처럼 무수한 겹을 이룬 채 똬리를 틀고 있는 기묘한 형상을 동물(혹은 곤충)의 세 다리가 떠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름진 인간의 뇌 혹은 활짝 핀 꽃의 형상이나 관절처럼 금속 조인트로 연결된 기계 다리 형상의 결합을 통해서 이 기이한 기계 생명체가 식물/동물/인간/기계 사이를 오가는 이종 혼성의 존재임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은 인간뿐만 아니라 기계와 같은 비인간 또한 동일한 ‘행위자’로 간주하는 철학자 라투르(B. Latour)의 자연의 정치학을 미술의 언어로 실천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 되기를 실현하는 조각’이라고 하겠다.

Majid Haghighi (이란)_Crystal Nexus)2, 2024
우주를 향한 기하학 추상과 낯선 즐거움을 전하는 판타지 조각
폴란드 작가 ‘아나 테레사 라신스카’의 〈정물의 기하학(Geometry of the still life) No. 2〉은 정물화의 전통 형식인 삼각형의 안정적 구조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하학적 도상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다양한 배치를 선보인다. 그녀는 최근작에서 기하학적 도상들이 마치 식물이나 동물과 같은 유기적 형상으로 변형되거나 에너지의 형상처럼 “자유롭게 변형되는 부드러운 구조의 조각”을 실험한다. 따라서 그녀의 조각은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지만, 역동적인 변화의 운동을 포착한 정중동(靜中動) 상태의 정물 조각으로 자리한다.
특히, 라신스카는 “한 변의 길이가 1미터인 정육면체의 부피”를 가리키는 세제곱미터(Cubic meter, m³)의 형태를 변주하는데, 그 변화의 양상은 “행성, 별, 은하계 그리고 모든 형태의 물질과 에너지를 포함한 모든 시공간과 그 내용물 모두”을 일컫는 우주(universe)의 에너지, 즉 카오스에서 질서의 코스모스로(혹은 반대로) 이동하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닮아있다. 가히 ‘우주를 담은 기하학 추상 조각’이라고 할 만하다.

Anna_Rasinska (폴란드)_Still life No 111, 2024
이송준의 〈Infinity〉 연작은 ‘스테인리스 스틸 볼’이 지닌 볼록 거울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관객에게 ‘판타지의 세계를 ‘지금, 여기’의 현실 공간에 실감 나게 부여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버핑(buffing) 작업이 완료된 ‘스테인리스 볼’ 오브제들을 마치 공을 둥그렇게 싸 감듯이 집적하여 구(球)의 형태를 만들고 그 안의 공간을 비워둠으로써, 크기가 제각기 다른 스테인리스 스틸 볼이 지닌 볼록 거울 효과를 통해, 내부로부터 촉발하는 무한에 가까운 공간을 환상적으로 선보인다.
스테인리스 스틸 볼의 미러 표면에 왜곡된 현실 이미지를 무한대에 가깝게 복제하고 반영하는 그의 〈Infinity〉 연작은 가히 ‘허상(虛像) 위에 허상’을 구축한 판타지의 공간이라고 할 만하다. 그것은 관객에게 익숙한 현실과 색다른 비현실을 중첩한 ‘낯선 즐거움’의 세계로 초대한다.

이송준(한국)_Wormhole70_70 25 70(H)Cm_Stainless steel, special glass_2024
낯선 즐거움을 향한 새로운 여정
이번 행사가 제안하는 주제, ‘낯선 즐거움으로의 초대’는, 새로움을 찾아 달려온 20세기 미술의 숨 가쁜 시기를 지나서, 20세기 중반에 도달한 다원주의 미술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개입하는 AI 아트 시대에서 우리에게 성찰할 과제를 던진다. 오늘날 미술은 이미 일상의 다채로운 삶과 연동한다. 미술은 문화 자본의 소유를 통해 양질의 삶을 도모하는 데 필요한 것이기보다, 삶의 일부처럼 여겨지는 문화 교감의 차원에서 요청된다. 특히 시민을 위한 미술 축제에서 원래 주인인 시민들이 문화 향유와 교감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시민 혈세로 이루어진 행사를, 전문가를 위한 행사로 마감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주제, ‘낯선 즐거움으로의 초대’는 현대 조각을 난해한 무엇으로 생각하고 거리를 두었던 다수의 시민과 일반 관람객의 입장과 눈높이를 강조한다. 2023년 프로젝트 전에서도 그랬지만, 올해 행사는 전문가와 일반 관객 사이의 편차를 좁히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중의 작품 감상을 인도하는 ‘도슨트 프로그램’, 본전시 참여 작가 4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탐구하는 ‘작가와의 대화’, 조각 작품 감상 및 이해를 돕는 ‘조각교양강좌’, 참여 작가들과 함께 한국의 또 다른 미술 현장을 둘러보는 ‘문화탐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은 현장에서 작품을 직접 제작하고 그 과정을 공개하는 조각심포지엄의 형식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면서 관람객에게 조각 창작의 과정이 무엇이고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주면서 시민과 함께하는 조각 축제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렇지만 오랜 역사에 비해, 부족한 예산과 관성화된 프로그램 등으로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감이 없지 않다. 그간 ‘조각공원 만들기 프로젝트’처럼 오해되어 온 이 행사가, 최근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한 새롭고 다양한 실험적 변화를 통해서 세계 미술 현장에서 새로운 조각심포지엄의 모델을 자리 잡길 기대한다. (2024)
출전 /
김성호, 「낯선 즐거움으로의 초대」, 『퍼블릭아트』, 9월호, 2024
( 2024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 낯선 즐거움으로의 초대, 2024. 08. 19~09. 09, 서희테마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