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을 위하여 - 불특정 대상에서 견인하는 생명 의지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작가 범진용은 우리가 일상으로 만나게 되는 주변의 익숙한 풍경을 캔버스 안에 담는다. 그것은 대개 이름 모를 식물들이 우거진 푸른 숲 그리고 그 속에 덩그러니 놓인 고즈넉한 연못 또는 눈발을 가득 안은 스산한 겨울의 들판과 같은 특별한 것 없는 자연 풍경이 주를 이루지만, 더러는 그 풍경 속에 인물들이 서 있거나 걸어가기도 한다. 그 인물은 작가와 친숙한 주변인이거나 그의 사진 속에 포착된 특정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는 많은 부분 인물의 구체성과 맥락적 연관성이 탈각된 이름 없는 존재로 치환된 채 관객을 맞이한다. 가히 ‘무명(無名)의 풍경과 인물’이라고 할 만하다. 



나옹  2021 oil on canvas 130x163cm 


까마귀 꽃밭 2020 oil on canvas 130x163cm 



I. 호명되지 않는 무명, 호명되는 무명 
무명은 이름이 없는 존재이자 동시에 호명(呼名)되지 않는 존재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무명의 존재는 명명(命名)의 사건이 있었던 과거가 존재했음에도 그 호명의 현재적 사건이 실종된 인간 주체나 사물 대상을 가리킨다. 시인 김춘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했듯이, 명명의 존재는 호명으로 인해 비로소 의미론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 까닭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작가 범진용의 작품 속 자연 풍경이나 인물은 의미론의 차원에서 그가 이름 없는 것에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이기보다 마치 ‘아무개’로 부르는 것처럼 이름 없는 것을 이름 없는 채로 불러내는 존재가 된다. 즉 ‘작가에 의해서 무명으로 호명되는 존재’인 셈이다. 이것은 역설이다. 범진용의 회화 대상은 ‘명명의 존재로 호명하는 것’이 아니라 ‘무명으로 호명하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의미론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 노트를 보자.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일상 속 풍경 또는 버려진 장소에 자라나는 이름 모를 풀들에 생명력을 그려왔다. 풀들은 실제로 웅장하다거나 특별하지 않다. 찢겼고 밟혀있으며 그들끼리 엉켜서 시들어 간다. 그런데도 계절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자라난다. 누가 원하지도 않았고 누굴 원하지도 않는다. 당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무심하게 당당한 생명력들은 불타오르고 흩날린다.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어디서도 볼 수가 없다. 그 풍경들을 캔버스에 증폭시켜 만져질 듯 생생하게 부각했다. 최근에는 일상적인 풍경과 돌아올 수 없는 주변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 범진용이 회화 대상으로 초대하는 자연 풍경이나 인물은 그의 작업 노트에서 기술된 ‘이름 모를 풀들’처럼 무명의 복수체로 호명된다. 즉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특별하지 않은 또는 흔하디흔한 모습으로 그저 ‘그것들 혹은 그들’이라는 지시 대명사와 무명의 집단체로 호명되면서 의미론의 가치를 견지한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 풍경과 인물들이 불특정의 미적 대상으로서 지니는 의미론의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그의 작품에서 ‘이름 모를 풀들’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눈여겨보지 않거나 호명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찾기 어려운 하찮은 존재이지만, “무심하게 당당한 생명력을 흩날리는” ‘살아 있음’의 존재이며, 뜨거운 생명성을 지닌 모태로서의 자연인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명인은 피상적으로는 특별하지 않지만, 본질적으로는 대중 혹은 민중과 같은 역사의 흐름을 이끄는 강인한 생명력의 주체가 된다. 



눈 오는 날 2019oil on canvas 386x194cm(2piece 193x97cm)


풍경 2018 oil on canvas 97 x 193.9cm 


II. 중성성의 표현주의로 견인하는 생명력  
그의 작품 속으로 호명하는 ‘무명의 자연 대상과 인간 주체’의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담아내는 데 있어서, 표현주의 조형 언어는 제격이다. 물감을 캔버스에 올려 끌고 다니는 방식으로 물감을 뒤섞으면서 캔버스를 팔레트처럼 사용하거나 사물의 경계 사이를 무너뜨리는 붓의 활달한 스트로크가 종횡무진으로 작동하면서 무계획적 회화로부터 우연을 적극적으로 견인해 내는 조형 방식은 표현주의 언어를 강화한다. 
표현주의 언어가 무엇인가? 그것은 리비도(libido)와 같은 내면의 감정으로 표출되는 주관적인 언어이다. 리비도란 성욕으로 대표되는 이드(id)로부터 나오는 무한한 정신적 에너지가 아니던가? 따라서 ‘통제를 원치 않는 존재’인 본능을 억누르며 구축한 현대 사회의 윤리, 제도뿐만 아니라 예술에서의 이성화된 질서의 체계는, 표현주의 언어를 구사하는 범진용의 작업 세계에 있어서 부정과 해체의 대상이다. 그는 표현주의 언어를 통해 구조화된 형식과 내러티브를 해체하여 또 다른 질서를 만든다. 즉 그는 ‘무질서 속의 질서’를 표방하는 표현주의적 언어를 통해서 일상의 내러티브를 해체함과 동시에 그만의 예술세계의 문법을 재편성한다. 
그의 그림에서 더디 마르는 유화물감의 물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표현주의적 붓질과 속도감 있는 빠른 필치의 붓의 운용을 통한 즉발적이고 즉흥적인 붓질은 화면 속 사물과 사물 또는 사물과 인물 사이의 경계를 조형적으로도 무너뜨리고 그 사이에서 형성될 수 있는 내러티브를 사전에 해체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이 언어적 해설과 의미론을 배제하고 시각에 포착된 미적 대상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도록 한다. 
작품을 보자. 거친 표현주의 붓질과 유화물감의 두꺼운 마티에르가 가득한 숲 혹은 정원을 배경으로 흰옷을 입고 걷고 있는 인물을 그린 작품 〈나옹〉(2021)이나 마치 미완성 드로잉처럼 스케치 선을 드문드문 남긴 채 녹색 물감을 질퍽하게 올린 커다란 식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인물을 표현한 작품 〈금자 씨〉(2021)는 작품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작가 범진용이나 ‘금자’라는 이름의 여성을 추적해 보게 만들지만, 특정 인물로 구체화하는 일에는 이내 실패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범진용은 특정 인물을 통해서 자신의 회화 메시지를 전하는데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은 단독자 개인이고 어느 정도 실명처럼 호명, 언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인물들은 풍경 속에 동화된 자연 속 일부의 풍경처럼 간주되거나, 익명처럼 처리된다. 애매하거나 모호하게 표현된 인물의 이목구비는 특정 인물의 의미를 지우고 익명성이나 무명성을 강조하는데 일조한다. 
또한, 마치 휘갈겨 쓴 텍스트처럼 자유롭고도 즉흥적인 붓질이 배경을 이루는 꽃밭에 검은 옷을 입은 채 서 있는 세 인물의 뒷모습과 옆모습을 포착하고 있는 작품 〈까마귀 꽃밭〉(2020)을 보자. 이 작품은 마치 무슨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전조(前兆)의 양상을 드러내지만, 배경과 인물 사이를 이격하는 막연한 긴장감 외에 그 이상의 내용을 함유한 내러티브를 포착하는 일에서는 쉽게 미끄러진다. 검은 염소로 보이는 가축들이 눈이 내린 한적한 농가의 뜰을 배회하고 있는 장면을 담은 작품 〈눈 오는 날〉(2020) 또한 굵은 붓 터치와 표현주의 언어로 인해 긴장감 넘치는 화면을 선보이면서도 소소한 일상의 풍경 너머 특별한 내러티브를 전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그의 작업에서 주목할 것은 특별한 내러티브에 관한 것이기보다 흔한 일상적 대상에 감정을 입히는 범진용의 중성성(neutrality)의 표현주의 언어에 관한 것이다. “대상에 감정을 입히는 중성성의 표현주의”? 불안한 구도, 현란한 색채, 과도한 즉흥성과 왜곡을 무기로 삼은 여타의 표현주의 언어와 달리, 그의 작업은 일상의 미적 대상, 보색의 대립이 거의 없는 중간색조, 자유로운 붓질에 비해 비교적 굴곡이 덜한 마티에르 등 비교적 차분한 조형의 표현주의 언어를 통해서 대상에 감정을 천천히 투사하고 그것으로부터 강인한 생명력을 건져 올린다. 
작품을 보자. 두 개의 캔버스를 이어 붙여 초록빛 성하(盛夏)가 한창인 자연의 풍경을 담은 작품 〈숲〉(2015)이나 같은 계절 작은 연못이 있는 숲의 풍경을 담은 작품 〈풍경〉(2018)은 이러한 중성성의 표현주의를 드러낸 대표적인 작품이다.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일상에서 흔한 자연 풍경이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여, 물감의 마티에르가 질퍽하지만, 비교적 담담한 ‘중성성의 표현주의’ 언어로 이러한 풍경을 화폭 위에 담아낸다. 



풍경 2017 oil on canvas  410x661cm(42piece 65x91cm) 


III. 에필로그
작가 범진용은 불특정의 일상에서 발견하게 되는 무명의 자연 풍경과 인물에 감정을 투사하여  자신의 화폭 위에 건져 올린다. 필자가 ‘중성성의 표현주의’라고 지칭한 담담한 어조의 표현주의 방식은 그가 불특정의 일상에서 견인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보다 더 강화하는 기제가 된다. 이처럼 무명으로 대별되는 평범한 존재로부터 견인하려는 정중동(靜中動)의 강인한 생명력은 그의 작업이 품은 여러 문제의식 중 하나로 보인다. 그가 향후 계획하고 있는 정물에 대한 탐구에서 이러한 중성성의 표현주의 언어가 정중동의 생명 미학과 어떻게 만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
 
출전/
김성호, 「무명을 위하여 - 불특정 대상에서 견인하는 생명 의지」, 범진용 작가론,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자료집,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