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 〈미인도〉, 개관기념전 《여세동보(與世同寶)》, 대구간송미술관 ⓒ 사진 장동광


지난 10월과 11월에 대구간송미술관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미술문화재단 전시를 둘러보았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여세동보(與世同寶)》(2024.9.3-2024.12.1)라는 개관기념전을 통해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국보와 보물을 공개했다. DDP에서는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이 부니 별이 빛난다》(2024.8.15-4.30)라는 간송미술문화재단 전통 IP를 활용한 이머시브&인터렉티브 미디어아트전이 열렸다. 이 두 전시를 함께 돌아보며 전시품의 원본과 가상현실에 관한 동시대성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국보급 고려청자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대표적 화가의 원본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커다란 안복이었다. 줄을 서서 관람하는 많은 인파 속에서 접견한 보물을 보며 간송 전형필 선생의 안목과 그의 문화사랑 정신에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간송 선생이 우리의 문화유산을 목숨 걸고 지켜내지 않았다면 이러한 국보급 문화유산 또한 현대까지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포스트모던의 걸출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 1950-2016)의 대표적인 유작으로 평가 받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몰입형실감체험 미디어아트전인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이 부니 별이 빛난다》는 이러한 간송미술문화재단의 문화유산 원본이 가진 의미구조와 가상현실성을 극대화시킨 미디어기술의 개가(凱歌)였다. 한글창제의 근본 체계를 밝힌 훈민정음 해례본(국보)을 중심에 두고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계시처럼 미디어영상으로 조성한 전시실은 감탄을 자아냈다. 이러한 도입부를 지나, 단원 김홍도를 비롯한 혜원 신윤복, 겸재 정선 등의 미디어아트로 구현한 실감체험 미디어아트 가상현실전은 관람자로 하여금 조선시대에 초대된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높은 해상도의 시각 영상과 물론 후각, 청각을 아우르는 총체적이면서도 창의적 소산의 발로였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보물)를 미디어아트로 구현한 전시실은 단지 하나의 인물초상화의 감상을 넘어선 시각적 상상력의 극치를 경험하게 했다. 한국의 모나리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만큼 혜원의 미인도는 우리 시대에 부활하여 그 자태며 표정이며 버선코의 매혹적인 미묘한 내비침까지 우리의 시각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고 가는 인식의 전도를 심어 주었다.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이 부니 별이 빛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 사진 장동광


원본의 아우라(Aura)를 접하기 위해 우리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한다.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의 개념에 대해 “저 먼 곳으로부터 온 일회적인 현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 원본이 지닌 예술가의 영혼과 철학, 표현의 특징, 실물에서 포착되는 재료와 필획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현장 체험이 필요한 것이다. 겸재 정선의 회화를 실경산수라 부르는 이유도 그가 관념적 표현을 벗어나 실경을 그리기 위해 금강산을 몸소 찾아가고 한강을 유람하며 직접 보고 그렸기 때문이다. 추사 김정희의 서예는 또 어떠한가. 그가 평생을 탐구하여 추사체가 완성될 때까지의 여정은 그야말로 수없는 서예 수련과 창의적 발상의 구체적 실현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가상현실의 기술이 발달하더라고 원본을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이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이 부니 별이 빛난다》전은 또 다른 예술적 사유의 영토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가상현실의 미디어아트적 구현도 새로운 창작이자 또 다른 원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과의 조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본이 없다면 이러한 미디어아트를 통한 변주나 2차적 창작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원본과 가상현실 사이, 이 두 영토성에 관한 미학적 질문을 만나려면 실경산수를 그리는 마음으로 대구간송미술관(임시휴관 2024.12.2-1.15)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가려는 예술적 결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