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작가 미술관의 특성과 장욱진미술관의 향후 운영 제안
하계훈 | 미술평론가
양주시가 장욱진미술문화재단과 협력하여 2014년에 설립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하 장욱진미술관)은 한국미술사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는 화가 장욱진(1917-1990)의 작품과 자료 연구를 통해 작가의 예술세계를 탐구하고, 더 나아가 한국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포괄적으로 이해하여 이를 바탕으로 관람객들과 소통함으로써 한국미술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하는 사명을 띠고 운영되어 왔다.
미술관 측의 안내에서는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장욱진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며, 한국현대미술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미술작품과 자료를 전시, 연구, 수집을 목적으로” 장욱진미술관이 설립되었음을 선언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양주시와 미술관은 연구와 전시, 그리고 교육 프로그램에 있어서 장욱진 정신과 관련된 작가 및 후대작가의 주제기획전시를 통한 한국현대미술을 연구하며, 미술관이 주관하여 신진 및 중견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여 입주작가를 중심으로 개인전시, 워크숍, 오픈스튜디오, 기획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한국미술계 뿐 아니라 지역사회 및 폭넓은 대중들과의 소통을 지향해왔다.
장욱진미술관처럼 단일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설립된 국내외 미술관들은 그 운영 주체에 있어서 국공립과 사립, 그리고 사립은 다시 개인(기업)과 재단으로 구분될 수 있다. 단일 작가 미술관의 대표적인 외국 사례로는 파리와 바로셀로나에 있는 피카소미술관(1985),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립 반 고흐 미술관(1973), 스페인 피게레스에 있는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1974) 등을 들 수 있으며, 국내에서는 양구의 박수근미술관(2002 공립), 제주의 이중섭미술관(2002 공립)과 대전의 이응노미술관(2007 공립), 서울의 환기미술관(1992 사립), 김종영미술관(2002 사립), 김세중미술관(2015 사립) 등을 들 수 있다. 현재 설립이 진행중인 미술관으로는 부산의 박서보미술관, 그리고 ‘미술관’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단일 작가미술관 역할을 수행하는 경기도의 백남준아트센터(2008 공립)와 부산의 이우환 공간(2015 공립) 등을 들 수 있다.
단일 작가의 미술관이 설립되는 계기는 주로 국가 선도적 혹은 국제적 명성을 얻은 작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주로 사후에 기념사업회나 재단이 만들어지고 나서 미술관 설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와 조금 다른 경로에서 상대적으로 지명도는 높지 않으나 해당 작가의 출생지나 연고지에 지역적으로 의미 있는 작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미술관이 설립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사회학과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단일 작가 미술관을 포함한 사립미술관의 설립은 상대적으로 국가의 역할이 적은 지역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대중들과 관련 전문가들의 시각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고 보고 있다. 긍정적인 시각은 무엇보다도 귀중한 작품들을 공공 자산화하여서 대중과 공유한다는 설립자들의 박애정신(Philanthropy)을 칭찬하는 태도로 나타나며, 이와 반대로 부정적인 시각에서는 미술시장과의 의심스런 연계성이나 작품 상속 관련 절세 수단, 그리고 해당 작가에 대한 주관적 평가와 객관적 평가의 불일치를 지적하는 시각이다.
미술관이라는 기관의 설립은 고도의 문화 의식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해당 미술관을 수용하는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수준이 일정 단계 이상으로 성장하여야 미술관 설립의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의 공사립미술관의 설립이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실시로 외국의 미술관과 박물관들을 직접 체험한 적지 않은 수의 국민의 문화 의식이 향상되어 온 시기와 움직임을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꾸준히 성장해 온 우리나라 경제가 궤도에 올라선 2000년대 들어서서 공립뿐 아니라 사립미술관들의 설립이 급속히 증가한 것도 그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는 과거에 단체장들을 국가지도자와 중앙 행정 부서에서 임명하던 방식이 주민 직선제로 바뀌면서 지자체장들의 경쟁적인 사업 수행 의지와 재선을 위한 업적 쌓기 수단으로 미술관을 포함한 문화 관련 시설들의 설립이 증가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기관장들의 의지와 목표가 미술관 설립과 운영의 주요 동기가 되는 만큼의 충분한 준비가 안 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공립기관과는 별도로 이 시기에 일부 사립미술관의 설립을 유도한 법과 제도 가운데에는 1990년 문화 분야 전담 독립행정 부서인 문화부가 출범하면서 이듬해인 1991년에 새롭게 제정된 <박물관및미술관진흥법>에 의해 사립미술관과 박물관에 대한 인건비와 사업비를 관련 기금과 정부 재정에서 지원하는 제도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사립미술관들도 설립을 위한 준비가 미흡하거나 제도의 허점이 악용되어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는 사례도 발생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장욱진미술관은 2014년에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개관하게 되었다. 장욱진미술관의 특이한 점은 작가와 양주시와의 연관성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굳이 연관성을 찾자면 장욱진이 머물며 작업했던 현 남양주시 덕소가 그 당시에는 양주시 관할로 되어있었고 나중에 남양주시가 양주시와 분할되었다는 사실로 미약하나마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작가 미술관들은 대도시나 관광 거점도시 등에 건립되는 경우가 많다. 피카소미술관이 작가의 고향이나 청년시절에 살던 집을 개조한 기념관 성격의 미술관을 뒤로 하고 파리에 개관한 사실이나, 암스테르담보다 파리와 프랑스의 남부에서 주로 활동하던 반 고흐의 미술관이 암스테르담에 건립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뒤집어 보면 작가의 미술관을 연고성이 적은 지역에 건립함으로써 그 지역의 문화 역량을 키우고 관광산업 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다.
장욱진미술관은 개관 이후 매년 장욱진 작가와 관련된 주제의 전시회, 작가의 생전에 깊은 관계를 맺었던 동료, 선후배 작가와의 접점을 찾은 비교 전시, 그리고 이와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과 강연회, 음악회 등을 꾸준히 개최해 옴으로써 다층적이면서도 동시에 집중적으로 장욱진의 예술세계를 탐구해왔다.
지난 10년간 시행해 온 전시와 교육프로그램 전체를 제한된 시간 안에 일일이 분석할 수는 없지만, 주요한 사업들을 들여다보면 장욱진미술관의 운영은 특정 작가의 미술관으로서의 전문적인 깊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관장하고 있는 유사한 형태의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장욱진 작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그 연구를 바탕으로 관람객들과 소통하려는 의지는 높이 평가받지만, 미술관에 대한 기대를 조금 높여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점은 미술관의 출발에 있어서 기본적인 준비가 미흡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관 설립의 중요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소장품 확보 측면에서 미술관 설립 당시 장욱진 작품의 시장 가격이 상당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구입에 의한 소장품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따라서 충분하지 않은 소장품을 가지고 개관을 맞음으로써 전시나 교육과 연구에서 외부의 조력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술관을 운영하는 전문인력 역시 출발점에서 충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미술관을 이끌어가는 관장의 지위가 비상임직이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게다가 미술관의 정식 개관 시점에서 관장이 부재하여 2개월 넘게 공석 상태였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에서 많지 않은 예산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인건비 지출의 압박이 심한 것은 이해할 수 있겠으나 관장과 학예직원에 대한 예산의 확보가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이 장욱진미술관 뿐 아니라 박수근미술관, 이중섭미술관 등에서도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이 장욱진미술관과 유사한 우리나라의 많은 미술관들이 갖고 있는 아쉬운 현실이다. 전문인력과 미술관 소장품 및 자료에 대하여 올바른 인식이 없는 사람들의 의사결정이 미술관의 설립과 운영에 반영되는 것은 해당 기관의 역량과 가치, 그리고 미래의 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하여 미술관 설립의 기본 요소 중 하나인 공간, 즉 건물을 세우는 면에서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단일 작가의 미술관은 작가의 생전에 거주하던 가옥이나 작업하던 공간 등 해당 작가와 연관된 장소와 공간이 선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장욱진의 경우 현 위치의 미술관과 별 관련성이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신축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장욱진미술관의 설계자는 장욱진의 작품 <호작도>와 집의 개념을 모티브로 개성적인 설계를 함으로써 영국의 BBC방송 등의 주목을 받았으며 김수근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만 염려되는 점은 개성적인 건축물을 유지하면서 향후의 확장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미리미리 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소장품과 전문인력을 확보한 상태에서 2014년에 새로 건립된 미술관 공간에서 출발한 장욱진미술관의 전시와 교육에 관한 역사를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적인 점이 발견된다. 지난 10년간의 전시들을 관통하는 주된 주제는 장욱진 자신이 “나는 심플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단순성(simple)’을 주제로 하는 기획전시가 거의 매년 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작가의 작품에서 추출한 가족, 나무, 불교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전시도 기획된 것을 볼 수 있다. 화가 장욱진은 이중섭이나 박수근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긴 창작 기간을 보냈으며 배우자의 헌신으로 앞의 두 작가보다는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았으므로 앞으로 작가와 그의 작품에 관한 연구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전시와 교육사업은 좀 더 풍부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희망적인 예측을 하나 더한다면 작가의 유족들이 작가와의 생전 밀착도가 높은 편이었으며 현재까지 작가의 사후 연구나 전시와 교육 등에 직, 간접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전시 전반에 관한 일관성은 유지되는 편이지만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관장의 교체로 인해서 전시의 주제와 경향이 다소 달라지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3번째로 관장직을 맡고 있는 현재의 관장과 초대 관장의 임기 중에 기획된 전시가 작가의 대표적인 화두인 ‘단순함’이나 ‘불사선’ 등의 철학적 내용을 담는 전시에 주목했다면 2대 관장의 재임 기간에는 장욱진 작가의 작품을 주제나 키워드 중심으로 천착해 나가기보다는 병원이나 복지재단과 같은 외부 기관과 연계하여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거나 패션, 섬유 등의 작업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관람객들과 새로운 접점을 찾고 감상의 시각을 제시해 보려 했던 시도가 눈에 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방향은 모두 유의미하고, 각각의 관장들이 미술관을 이끌어 나아가는 방향성에 대한 철학을 실현하는 방식이므로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판단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장욱진 작가의 철학과 그것이 시각적으로 실현된 작품 속에서 추출되는 적합한 주제라면 모든 전시기획이 작가를 더 잘 이해하고 그의 작품을 감상하여 한국미술의 제모습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장욱진미술관과 유사한 국내외의 선행 미술관에서도 이와 비슷한 전시기획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전시기획뿐 아니라 이에 관련된 교육프로그램이나 주제 강연에 있어서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운영 인력에 비하여 전시나 교육의 시행 횟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하나의 전시를 기획하기 위해서는 주축이 되는 학예사와 보조적 역할을 하는 학예보조 인력이 복수로 투입되고 적어도 1년 정도의 준비와 연구 조사 기간을 가져야 제대로 된 전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좀 더 규모가 있는 전시를 준비하는 외국의 유사 미술관에서는 심지어 하나의 전시를 위해 수년간의 기간을 준비 기간으로 확보하기도 한다.
그런데 장욱진미술관이 지난 10년간 시행해 온 전시기획과 교육프로그램의 양을 준비 기간이나 인력과 비교해 보면 전시의 완성도나 주제 연구의 깊이에 있어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획기적인 사업 환경의 개선 없이 이러한 패턴의 전시와 교육사업이 지속된다면 아마도 장욱진미술관의 기획전시는 그 완성도나 학문적 깊이 등에 있어서 제자리를 맴도는 수준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와 함께 전시 관련 교육프로그램에서도 내용의 특징이나 참신성이 발견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으며 굳이 장욱진미술관에서 실행하지 않아도 그만인 일반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수행하느라고 부족한 가운데 아까운 인력의 소모가 반복되는 것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좀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 미술관은 대중적 눈높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미술관의 공공성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도 인정된다.
장욱진미술관의 전시와 교육의 깊이가 한계를 드러내는 요인은 인력의 부족이나 전시와 교육에 대한 관성적 시행에 그 원인일 수 있지만 그 밖에도 양질의 소장품이 부족한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결국 재정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현실적으로 재정적 어려움이 있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장욱진미술관과 양주시는 장욱진 작품과 관련 자료를 더 많이 확보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러한 사업이 양주시민이나 시의회, 그리고 더 나아가 중앙정부의 관련기관을 설득할 수 있는 노력이 요구된다. 장욱진의 작품이 별로 없는 장욱진미술관이나 피카소의 작품에 별로 없는 피카소미술관이라면 그것은 작가 개인미술관으로서의 자격이 없으며 그냥 하나의 거푸집에 불과할 뿐이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분석된 장욱진미술관의 지난 10년간의 전시, 교육, 연구 등의 프로그램은 장욱진미술관만의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우리나라 정부 문화예술 행정이라는 큰 틀이 지나치게 행정 중심으로 전개되어 있고, 미술관이라는 기관의 전문성이나 특수성을 일반 행정의 패러다임에 끼워놓은 상태에서는 현재 상황이 크게 변화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시설과 소장품이 손상되지 않고 적당한 관람객과 교육 참여자가 있으며, 민원 발생이 없으니까 그러한 운영이 지자체 의회나 감사기관 등에서 별문제 없이 넘어갈 때 행정기관은 미술관의 운영이 무난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21세기 상황이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경제발전과 국제적 관심의 증대로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우리 사회의 작동 방식이나 의미 부여 방식도 이제는 국내를 넘어서서 국제적인 시각에 부합하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공립미술관의 운영 원칙과 관련 법규의 상당부분은 수십 년 전에 제정된 이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 사회와 미술관들을 둘러싼 환경은 급속하게 변화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 환경의 불일치를 그대로 방치한 채 앞으로 계속해서 미술관의 전시와 교육,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술관이라는 기관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줄 수 있는 연구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게 진행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 될 것이다.
장욱진미술관의 경우 무엇보다도 관장의 전임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한번 임용된 관장이 자신의 미술관 운영철학을 펼칠 수 있는 독립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임기 면에서도 이러한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기간의 최소한을 제공하는 조치가 필요하며 권리에 대한 의무도 철저하게 규정하여야 한다. 임용 계약 조건에서 목표 성과를 분명히 하여 관장의 활동을 보장하면서도 성과 달성을 위해서 긴장감을 가질 수 있는 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는 학예직원들의 임용과 근무 환경 조성에도 유사하게 적용되어 자연스럽게 우수한 결과를 낳을 수 있어야 한다.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활동하게 여건을 보장하지만 이에 부합하는 성과가 도출되지 않을 때는 철저하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미술관과 같은 전문기관의 작동 원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행정적으로는 그 유명한 원칙, “지원은 하되 (불필요하게)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소장품 측면에서는 최대한 많은 소장품을 확보할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며 작품 구입이 어려우면 기증과 장기 임대, 또는 때에 따라 발굴 등에도 힘을 쓸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개발 중심의 압축 성장 사회적 특성 때문에 작가의 활동 이력과 흔적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하며 이러한 활동이 보장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특히 장욱진미술문화재단과 유족의 협력을 유도할 방법 개발에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장욱진의 작품과 함께 연구와 수집에 힘을 써야 하는 곳은 관련 자료들이다. 장욱진 작가의 창작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는 모든 자료에 관한 연구와 발굴에도 학예인력의 노력이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한 예를 들자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빈센트 반 고흐의 경우에도 미술관 연구자들과 외부 전문가들의 끈질긴 추적으로 작가가 화가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한때 소설 창작을 시도했다는 자료가 런던 어느 가정집의 다락방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미술관의 공간에 대해서는 10년이 지나간 시점이므로 향후 노후화에 대비하는 한편 소장품과 관련 자료의 증가를 전제로 하여 공간의 증축과 일부 공간 변경에 대한 검토도 필요할 것이다. 모종의 필요성이 발생하였을 때 갑작스럽게 졸속적인 조치로 이어 나가는 공간 관리를 계속할 것이 아니라 여유 있게 대비하는 사전 준비와 검토가 요구된다.
이러한 모든 조치는 기본적으로 양주시민들의 공감과 동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감과 동의는 미술관이 양주시의 공무원들이나 의회 의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미술관을 운영할 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치밀하고 지속해서 노력할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장욱진 작가의 작품과 자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장욱진미술관의 경우에는 양주시를 넘어서 국제적인 무대에서 유사한 관련 미술관들과의 교류와 선의의 경쟁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러한 모든 일에 대해서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주체가 장욱진미술관의 운영 방향에 대한 이해가 높고, 바라건대 전문적 의견을 합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주체라면 미술관의 장래는 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즉 의사결정이 장욱진과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적은 엉뚱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장욱진미술관의 미래는 끝없이 제자리 뛰기를 반복하는 절망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