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내기와 치유의 과정에서 동반하는 양가감정(Ambivalence)


정영숙 (문화예술학 박사, 갤러리세인 대표)


장욱희 작가는 식물을 키운다. 지난 겨울 정오에 찾아간 작업실은 초록 빛이 가득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는 행위는 물을 주고 햇볕 방향 따라 적절히 화분을 옮겨주거나 때에 맞춰 분재를 하는 것이다. 작가는 여기에 두 가지 행위를 더한다. 버려졌던 식물이나 죽어가는 식물을 작업실로 옮겨 잎에 바느질을 한다. 그리고 기존 화분 대신 버려진 플라스틱을 식물에 맞게 높이를 절개한 후 구겨지고 찢어진 곳은 바늘질로 꿰맨다. 


2023년 개인전에 시작된 전시 주제 <사랑했다고 말한다>가 이번 전시에도 이어진다. 당시 소주제는 ‘돌보기와 상처내기’였다. 이는 상반된 행위이다. 더불어 ‘사랑했다고 말한다’ 또한 과거와 현재 언어다. 그렇다면 2025년 개인전에서는 더 명료해졌거나 식물에 새 순이 돋아나 듯 곁가지의 내용이 담겨있는지 들여다볼 일이다. 작가가 일상적으로 하는 예술행위의 흔적과 식물의 상태를 깊이 들여다보며 작가에게 질문을 던진다.


첫째 ‘사랑했다고 말한다’는 모순된 문장이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가 우선 궁금했다. 작가는 “사랑은 모두 구속이 동반된다. 상처가 있는 곳은 치유되면서 관계가 깊어진다. ‘사랑했다’는 과거형이고 ‘말한다’ 현재형이다. 진행형인지 이미 끝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도 사랑했다고 말한다.”라고 하듯 작품을 하는 행위에서 만큼은 과거와 현재가 이분화 되지 않는다. 어제의 사랑이 오늘의 사랑과 다를 수도 있고 이어갈 수도 있다. 다만 사랑이라는 것은 결론 내릴 수 없는 것으로 현재 사랑을 하면서도 헤어질 결심을 하는 연인처럼, 헤어졌지만 다시 만날 수 있는 애정을 나누는 사람처럼 과거는 현재의 속살이고 현재는 과거의 겉 옷처럼 안과 밖이 이어진다. 결국 하나의 존재처럼 연결되어 있다. 


두번째는 ‘상처주기와 치유하기’다. 이 또한 양가적이다. 버려지거나 시들어진 식물을 키우는 과정은 치유다. 여기에 작가는 ‘바느질’ 행위로 상처를 준다. 기르면서 바느질로 상처를 준 식물은 자라면서 심지어 새순이 돋는다. 바느질하면 절대적 미감 중에 조선시대 조각보 천이 우선 떠오른다. 이불이나 옷을 만들고 남은 천, 버려진 천을 모아 각각 정사각형으로 재단 후 바느질을 하면 밥상의 덮개, 베게 덮개 등으로 쓰임이 있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일컫는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추상회화 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버려진 사물이 바느질 행위를 통해 쓰임의 사물 이상으로 일상의 미감까지도 충족시켜준다. 무엇보다 당시 규방에서 바느질을 하는 여성들은 요즘처럼 “예술치유”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으로 바느질을 하지 않았을까? 20세기 이후 예술가의 행위에서 바느질은 물감 못지 않게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 동시대 작가 중에 퀼트로 작업한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은 바느질 행위로 개인의 서사를 담아내었다. ‘상처주기’ 또한 기존 예술에서 보면 종종 실현되고 있다. 행위예술가이자 개념미술가 비토 아콘치(Vito Acconci)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전시장 마루 밑에 웅크리고 누워 발자국과 사람들의 소리를 채집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살을 물어서 신체에 이빨자국을 낸 다음 그 자국에 물감을 칠해 종이로 찍은 작업을 한다.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설치예술가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은 좁고 긴 복도를 몸이 끼이듯 힘들게 듯 걷는 행위, 영상과 조각가 매튜 바니(Matthew Barney)의 행위미술 작업 중에는 자신의 몸에 줄을 매달아 공중에서 드로잉하는 작업, 생트 오를랑(Saint Orlan)은 수많은 성형으로 변화된 자화상을 찍는 행위 등 상처주기나 고통을 유발해 개념적인 작업을 끌어내는 작가들이 동시대에서는 더 많이 드러나고 있다. 장 작가의 상처주기는 식물과의 긴밀한 교감과 돌보는 모순이 이어지면서 식물을 장수하게 하는 극적인 장치이다.


셋째, ‘환경에 대한 단오 한 결심’이다. 작가가 플라스틱 잔으로 화분을 사용한 이유가 있다. 환경문제와 연결된다. “사람들은 편리를 위해 플라스틱 컵에 차를 마신다. 또한 환경문제 때문에 에코백을 사용한다. 하지만 환경 비용은 텀블러 만들 때 더 들어간다. 비용적 측면과 환경을 고려한다면 한 개의 텀블러, 한 개의 에코백을 수백 번 사용해야 한다. 환경을 위한다고 하지만 패션을 위해서 여러 개 에코백과 여러 개 텀블러를 사용한다. 진정성 있게 환경을 생각한다면 자기가 사용한 특정 한 개를 반복적으로 오래 사용하길 권장한다.”라고 작가는 단호하게 언급한다. 더불어 “특히 우리 할머니들, 조상들이 물건을 귀하게 여기며 재 사용하고 다른 용도로도 사용하는 삶의 태도가 환경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든다.” 라고 한다. 작가의 뚜렷한 의사 표현에 바느질해서 모아둔 플라스틱 화분들을 만져 보았다. 매주 분리수거로 버려진 플라스틱들이 떠올랐다. 환경문제에 진심으로 고민하고 실천하는 작가의 예술일상이 오버랩 된다. 


작업실에 화분 외 유독 눈에 띄는 오브제가 있다. 별 모양, 불가사리 모양의 것들과 큰 식물 잎을 연상시키는 꽤 큰 조형작업이다. 2020, 2022년 <길 잃은 풍경>의 구겨진 ‘비닐봉지’ 미학이 시작된 이전의 작업이다. 작가는 학부과 대학원은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박사는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학과 조소전공으로 <현대미술에서 생태학적 의미와 작품 해석에 관한 연구 : 연구자의 생태적 작업(1997-2011)>으로 미술학 박사를 취득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