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전시관에 흐르는 ‘보기’과 ‘사유’의 교차
- 《가득한 가덕》프로젝트 (2024.12.05.-17, 부산 예술지구p.) -
심현섭 | 미술평론가
《가득한 가덕》전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로 사라지게 될 자연환경, 문화, 역사 등 가덕도가 가진 본질적인 가치를 기록하고, 예술적 관점으로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이다. 부산 가덕도 신공항(2029년 12월 개항) 건설 계획이 어떤 경로로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이에 관한 미술전시가 어느 편을 지지하는지를 물으면 금세 정치적 논의로 바뀌면서, 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경제성, 지역성, 주민의 참여 및 소통, 전시의 미학적 가치 등의 문제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다. 이것은 《가득한 가덕》 프로젝트(2024.12.05.-17, 부산 예술지구p)도 마찬가지다. 이 전시는 부산의 중견 예술가 김경화, 박진효, 방정아, 여상희, 왕덕경, 유현욱, 이동근이 “가덕도에 담긴 삶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입체적으로 기록하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사라져가는 섬, 예술로 기록된 시간.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거나 개발을 반대하기 위한 목소리가 아닙니다. 그보다 섬이 품고 있는 본질적인 시간을 존중하며, 우리가 선택해야 할 방향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던지는 작업입니다. 12월 전시를 통해 가덕도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다시 한 번 주목받기를 바랍니다. 사라지는 섬이지만, 그 기억과 의미는 계속 남기를 소망합니다.
부산의 예술가들은 가덕도 공항 건설에 대한 찬반 의견을 내놓기보다는 그저 가덕도의 풍경과 그 장소에 존재해왔던 삶의 역사를 보여줄 뿐이다. 의견이 있다면 “부산의 아포리아 가덕도, 새로운 예술 활동으로 기록하다”라는 보도 자료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가덕도가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 있다는 것, 그리고 사라질 가덕도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프로젝트의 의도가 이와 같은 상황의 고지와 역사 기록에 멈춰있다고 볼 수는 없다. 기획자는 관객들이 가덕도 공항 건설 계획을 상기하고, 앞으로 달라질 가덕도의 풍경과 삶을 상상하며 그에 대한 각자의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득한 가덕》 프로젝트는 사회정치적 이슈를 언급하기보다는 가덕도라는 장소에 어려 있는 풍경과 사물, 삶의 기록들을 보여줌으로써 기억을 상기하고, 앞으로 그곳이 겪게 될 변화를 상상하게 한다. 이런 방법으로 이 전시는 장소에 속한 주민과 관객들에게 개발, 기억, 상실로 뒤섞인 사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이때 관객의 사유는 정치적 판단과 단절되는데, 이 단절은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에 불가피하게 내재해 있을 정치적 판단과 사유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을 말한다. 《가득한 가덕》은 관객의 자발적 사유와 판단을 도울 뿐 최대한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이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점은 관객의 자발적 사유와 판단을 유기적이면서도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두 전시공간이 합력하여 이끌어간다는 사실이다.

좌) 전시2관 전경 우) 전시1관 전경
《가득한 가덕》은 두 개의 전시관으로 나뉘어 있다. 2관은 가덕도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화하려는 사진과 설치, 영상, 기록물로 채워져 있다. 이와 같은 아카이빙은 특히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전시에서 하나의 공식처럼 일반화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여주느냐다. 이 전시 공간은 가덕도의 행정과 제도의 지배적 면모가 아닌 서민들과 그들의 문화, 평범한 자연, 사물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가덕도의 풍경과 역사를 위계 없는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과 오브제들은 관객에게 가덕도 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면서, 개발로 인해 상실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시한다.
1관 역시 위계 없는 풍경과 사물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2관과 달리 기록의 축적물을 보여주는 것을 억제하고 가덕도와 관련 있는 작품을 선별하여 상징과 은유로 보여준다. 이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은 2관의 기록물들에 비해 덜 직접적이다. 2관의 ‘채움'이 아카이브 충동이라면, 1관의 ‘추림’은 반-아카이브 충동이다. 2관이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의지로 채워졌다면, 1관은 덜 보여주려는 의지로 선별했다. 2관은 가시적인 것을 지시하고, 1관은 비가시적인 것을 지시한다. 이 같은 이유로 두 개의 전시관은 작품의 양과 배치, 공간의 활용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전시1관 작품 좌) 박진효 전시1관 작품 우) 방정아
이러한 차이는 기획자가 나눈 공간과 그 공간에 의해 배분되는 시간의 성질로 나타난다. 채워진 2관에서 관객은 보기 위해 시공간에 머문다. 이와 달리 1관에서 관객의 시공간은 생각에 머문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형식적일 뿐 사실 두 개의 전시공간은 상호투사하며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강화하고 보완한다. 2관의 ‘보기’는 1관의 부족한 정보를 채우고 1관의 ‘사유’는 2관의 이미지들이 내포한 의미를 밝힌다. 전시관을 교차하는 ‘보기’과 ‘사유’의 경험은 관객이 자기만의 성찰에 이르게 한다.
이처럼 《가득한 가덕》의 두 전시관은 합력하여 공간과 시간을 나누면서 관객에게 미치는 전달효과를 극대화하고, 아울러 공간의 배분과 전시 효과의 관계를 숙고하게 한다. 이는 아카이브와 반-아카이브 충동의 긴장과 균형, 아카이브의 과잉 충동에 깃든 불멸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 아카이브에 내재한 제작자의 의도의 적절성, 아카이브의 직접성과 예술의 은유 사이의 간격, 전시공간을 배분하는 기획자의 역할의 중요성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지역 문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이번 전시를 기획한 부산 지역 예술가들이 다음 전시에서 시도할 공간과 시간의 분배 방식이 기다려지는 것은, 그들의 전시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제공할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