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광수 친필 서문원고, 1977.3.7, 17×26cm, 4장, 김청정 기증
이 자료는 미술평론가 오광수(1938- )가 조각가 김청정(1941- )에게 쓴 친필편지로, 김청정 1회 개인전(1977, 서울 태인화랑)의 오광수의 친필서문과 전시 구성에 대한 간략한 조언을 담은 편지이다. 김청정은 1968년부터 1986년까지 오광수에게 받은 귀중한 친필편지를 25점 기증하였다.
오광수는 한국의 1세대 미술평론가로, 196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제1회 미술비평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당선 후 2년여 동안 동아일보에서 전시리뷰를 게재하며, 미술비평이 전무했던 시절 현장에서 발로 뛰며 미술비평의 길을 열어갔다. 부산에서 태어나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경북 예천으로 잠시 피난한 뒤 해방 후 부산, 안동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1958년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하여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천경자, 김기창 등에게 독창적이고 새로운 관점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평론의 길로 들어섰다. 전통의 계승과 현대화에 관심이 많았던 오광수는 당시 현대적인 작업을 하는 논꼴그룹 등의 청년작가들과 지내면서 청년작가연립전, AG 창단에 참여하며, 당대 앵포르멜에서 실험미술, 개념미술로의 미술사조의 변화와 작가와 평론가가 함께 참여하는 한국현대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에 가교 역할을 하였다.
김청정은 조각 및 설치미술가로 부산에서 태어나 1962년 홍익대 조소과, 계명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신라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1959년 경남미전 특선, 1961년 국전 특선을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부산에서 활동하며 부산현대미술 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부산에서는 1962년 ‘혁동인’이 “새로운 모색에 의한 실험적인 작업”을 표방하며 창립되고, 1965년 서울에서 미술대학 졸업후 부산에서 활동하던 20대 청년들이었던 김청정, 고수길, 김인환, 오춘란, 이정수, 이용길 6명이 “우리는 단지 자유로운 서식과 호흡과 조형적인 자유를 관심할 따름이고 인간존재의 원형을 찾는 자기확대와 잇닿는 모험과 실험의 자세로 부수고 바르고 깍고 쌓아올릴 뿐이다.”라는 선언문으로 ‘습지’동인전을 창립하였다. 이 두 단체는 연합하여 1968년 ‘이후작가회’를 창립하였다. ‘이후’는 추상미술 이후의 새로운 미술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이 단체들은 부산의 전위적인 실험미술의 시작과 부산현대미술의 전환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오광수 친필편지, 1977.3.7, 19×13cm, 1장, 김청정 기증
기증한 편지 중, 1968년 4월 9일의 편지에서 김청정은 이후작가전 창립전 개막식에 오광수를 초대하였으나, 오광수는 공간지 편집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전시시평에 넣을 원고를 요청하였다. 『공간』 1968년 5월호의 이후작가전 전시평에는 “즉물적인 요소가 강한 실험작들로 스텐레스, 파이프, 철판 …. 대체로 오브제를 중심으로 한 신현실주의계통의 현실적 문법을 도입한 구성적인 작품들로서 한결같이 우리생활의 현실감을 살려보려는 작가의 현실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엿보이는게 특징이다.”라고 평했다. 이후작가전은 1회전으로 해체되고 일부는 혁동인으로 흡수되었다. 이후 김청정은 1968년에 부산 최초의 조각단체인 공간회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였으며, 1971년 AG전, 1981년 상파울로비엔날레 등에 참여하였다.
김청정의 일관된 작품 경향은 일상적인 소재와 표현의식, 환원 의식의 절제와 단순화, 자율성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77년 개최된 김청정 1회 개인전에서 김청정은 돌멩이 시리즈를 통해 사물과 장소성, 자연회귀의 작품경향을 보여주었으며, 오광수는 “김청정의 작업, 또는 심정에 남아있는 돌멩이 하나”로 서문을 썼다. 한국현대미술의 전환기의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