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자료는 서양화가 임직순(任直淳, 1921-96)이 제자 임춘택(林春澤, 1942- )에게 보낸 친필편지로, 서양화가 임춘택이 소중하게 모아두었던 편지를 기증한 것이다. 기증한 자료는 편지 6건과 연하장 6건이다.
임직순은 한국의 근현대미술가로 독창적인 색채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충북 괴산군에서 태어나 1931년 서울로 가족들과 이주하였으며,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상업야간중학교, 1942년에는 일본미술학교를 태평양전쟁으로 조기 졸업 후 연구과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후 1943년 귀국하였다. 임직순은 일본미술학교에서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여 여인과 장미 등의 그림으로 유명한 하야시 다케시(林武, 1896-1975)와 강렬한 색채의 대조를 통해 사물을 표현한 다카노 신비(高野眞美, 1900-80)를 사사하였다. 임직순의 작품 경향도 여인과 꽃이 주요 소재였으며, 자유로운 원색의 사용과 색을 통한 면과 사물을 표현함으로써 자신만의 유기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임직순은 일본 유학중 1940-1941년 제19-2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으로 미술계에 입문하였는데, 귀국하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1949년 1회 국전에서 입선한 후 2회전에서 특선, 8회 대한미술협회전 및 5회 국전에서 문교부장관상, 1957년 6회 국전에서 〈좌상〉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1회 국전부터 30회까지 3회를 제외하고 출품하며 개인전 등 활발한 활동을 하던 중, 조선대학교에서 퇴임을 앞둔 오지호(吳之湖, 1905-82)의 천거로 1961년 가을부터 1974년까지 오지호의 후임으로 조선대학교에 부임하여 호남지역과 한국의 인상주의 화풍의 맥을 이를 뿐 아니라 전라남도미술대전 창설하였으며 많은 제자를 양성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임춘택은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낸 후 독학으로 조선대학교 미술과에 입학하여 임직순의 지도를 받았다. 기증한 편지 중 1960년대 6건의 편지의 내용은, 졸업후 어려운 시절, 교사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사범대학교 출신들이 먼저 발령을 받는 절차로 발령이 늦어지자 스승이었던 임직순에게 편지를 썼다. 임직순은 장학사에게 교사 발령을 알아보며 임춘택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꾸준한 작품 활동과 어머니를 잘 모시고 가정에 도움이 되라는 당부를 하는 내용이다. 1년 뒤에 제주도 교육감에게 제자 3명을 추천하여 임춘택은 제주도 대정여고에 근무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임춘택은 한서대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구상전과 개인전 등 활동하였으며, 쿤스트라움북촌갤러리도 운영하고 있다. 제자의 여러 가지 형편을 진심으로 공감하며 따뜻한 당부가 담긴 스승 임직순의 모습과 사제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편지이다.
임군에게
군의 2점의 서신 감사하게 읽어 보았네.
십분 군의 심정이 이해되매 무슨 길이 없나 걱정 중이네.
작년도, 금년도 졸업생은 거의 무직중인데 무척 답답하고 조급한 생각이 드네.
어른 모시고 좀 더 기대해 보게.
기회오는대로 즉시 소식 전하겠네.
무엇보다 소품이라도 제작하는 한편
집안 일 도우며 지내주게
긴 안목으로 본 가장 더 명장한 발전의 길임을 다짐하여 두겠네.
오늘 나는 학생들과 무등산을 가서 사생하기로 했네.
곧 떠나야겠기에 우선 수자 적어 보내네.
사방으로 알아보는 중이니 나도 좋은 소식이 빨리 입수되기를 기대하고 있네.
일기 고르지 못한 이때 모쪼록 어머님 모시고 귀군 집에 행운이 따르기를 비네.
1966년 3월 27일 임직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