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작가 임충섭의 예술에 내재한 한국전통건축의 미의식


I. 서론
II. 건축적 요소를 통한 기억의 형상화
III. 임충섭 작품에 내재한 한국전통건축의 미의식   
   1. 한국 마당의 여백  
   2. 개폐와 높낮이의 반복이 생성하는 리듬
   3. 한국 창호의 은근한 빛의 미학
   4. 지붕과 처마에 드러난 수평과 수직의 다원적 수용  
IV. 결론


I. 서론
 
이 연구는 1973년 뉴욕으로 이주한 이주작가 임충섭의 작업에 내재한 한국전통건축의 미학을 탐구한다. 특히 그의 설치미술과 회화에서 나타나는 마당과 여백의 공간미, 차이의 반복적 리듬, 창호에 비치는 은은한 빛, 그리고 지붕과 처마에서 발견되는 수평과 수직의 대비를 중심으로, 이러한 건축적 요소가 그의 예술적 표현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분석한다. 임충섭의 작업에서 건축적 기억은 단순한 공간적 재현을 넘어 그의 예술철학과 정체성의 근본을 형성하는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하며, 이는 동서양의 사유와 미학을 연결하는 독창적 통로로 작용한다.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설치미술, 페인팅, 아상블라주 등 폭넓은 작업 활동을 하는 임충섭은 1941년 충북 진천에서 출생했다. 그는 196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69년부터 미술 단체 ‘앙가주망’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형성한 조형적 습관과 도식을 벗어나고자 1973년에 뉴욕으로 이주한 이후 현재까지 거주하며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뉴욕 이주 후 1973년부터 1980년대 중후반까지 회화와 설치, 레디메이드 등 다양한 조형 활동을 자유롭게 실험하였고, 1990년부터 2000년대 초반 자연과 고향, 도시와 문명, 동양과 서양 문명 사이의 연결 고리로서 ‘사잇’ 존재로 작가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이주작가로서 형식적으로는 미국의 포스트미니멀리즘과 한국 단색화의 특성을 보이는 임충섭의 작업은 고향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고 재구성한다. 
이주작가인 그에게 고향은 단지 나고 자란 물리적 장소의 의미를 뛰어넘어 작업에 지속적인 영감을 제공하는 발원지로 고향에 대한 기억과 경험, 그에 대응하는 도시 문명에 대한 사유의 근원이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과 어머니의 죽음, 수평의 언덕을 지나던 장례 행렬의 기억은 평생 그의 작업의 모태로 작용한다. 뉴욕에 거주하는 그에게 고향은 부재와 결핍의 공간이자 사랑에 대한 갈망, 자연에 대한 회귀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기억의 장소로 예술가로서 존재론적 의미를 확인하는 정체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임충섭이 32세에 조우한 뉴욕의 첨탑 문명은 고향 및 자연과 도시, 동양과 서양의 극명한 대비를 불러일으켰고, 그에게 어느 한쪽의 대리인이 아닌 두 문명을 잇는 ‘사잇’ 존재로서 작가 정체성을 자각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그에게 있어 문명 공간은 인간의 기술이 자연공간을 잠식하는 인간 문명의 확장의 표시로서 자연과 문명이 혼성적으로 존재하는 중간지점이자, 고향 한국과 뉴욕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이주작가로서 임충섭의 고향에 대한 기억은 뉴욕에서 주목받는 설치미술가로 부상한 그의 작업에 한국전통건축의 특징인 자연과 인간의 조화, 여백과 비움, 그리고 반복 속의 차이를 강조하는 미학적 특성을 담는 작품으로 구현되어 독특한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 한국전통건축의 공간은 임충섭의 설치작업에 고향과 자연, 도시와 문명이라는 이질적 요소를 통합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고향의 기억과 그것이 담고 있는 건축적 이미지는 그의 작품에서 단순한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아니라, 동양과 서양 문명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사잇 존재’로서 작가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임충섭이 자연과 문명, 고향과 도시, 동양과 서양의 틈새를 잇기 위해 고안한 이 ‘사잇’ 개념은 인류학자 빅터 터너(Victor Turner)가 말한 역공간(liminal space)의 철학적 특성과도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역공간은 경계에 위치하며 이질적 요소 간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는 지점으로, 임충섭의 작업이 지닌 혼성적 특성과 맞닿아 있다.  
임충섭의 예술은 이주작가로서 서양과 동양 문화가 교차하는 정체성을 반영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그의 작업을 동서양 미학의 융합적 관점에서 예술, 건축, 기억과 정체성이라는 주제 간의 상호작용을 심도 있게 고찰한다. 연구자는 임충섭을 한쪽의 문화에 편입시키지 않고 그의 삶과 사유 자체에 공존하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논하면서 그 속에 중심적으로 자리한 한국전통건축의 미학을 조명하고자 한다. 임충섭의 작업에 관한 선행 연구는 미술비평이 주를 이루며 그의 이주작가로서의 정체성과 문화 간 교차성에 초점을 맞춰왔다. 학술적 접근으로는 임충섭의 오브제 작업에 관한 연구와 들뢰즈의 사상을 통해 임충섭의 작업을 분석하는 두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간혹 비평문에서 건축적 요소가 언급되기는 했지만 한국전통건축의 미의식이 임충섭의 예술철학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 속에 어떻게 구현되고, 그것이 자연과 문명의 ‘사잇’ 존재라는 철학적 개념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미학적으로 논의한 연구는 없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고, 나아가 세계의 현대미술에서 한국의 전통 미학이 고유의 담론을 형성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II. 건축적 요소를 통한 기억의 형상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장소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산다. 이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부재의 결핍과 상실감에 기인한다. 이러한 상실감은 동양의 심우도, 서양의 실낙원과 기독교나 율리시즈 이야기의 모티프로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가 보편적으로 안고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실감은 고향을 추상적 공간으로 기호화한다. 이런 이유로 마르틴 하이데거(M. Heidegger)는 인간의 현존을 장소, 특히 고향이라는 추상적 공간에 대한 부재와 상실에서 발견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과 대상 사이를 매개하는 기술이 인간의 욕구로 인해 개발, 가공, 정복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과 대상 모두는 기능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 의미를 갖는 부속품으로 전락하였다. 이러한 전락이 결국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상실과 본질의 위기를 초래하는바, 이는 “현대인의 고향 상실(modern homelessness)”의 시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추상적 고향의 상실은 고향에서 보고 만졌던 사물들, 거주했던 집, 인상 깊었던 건축물 등과 같은 구체적 물체들에 대한 기억으로 더욱 분명해진다. 이처럼 고향/장소에 대한 기억의 추상성은 물리적인 장소의 기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재현을 목적으로 하는 미술이나 문학에서 고향의 기억은 창작의 주된 자양분으로 작용한다. 임충섭이 뉴욕에 살면서 적은 아래의 글은 그가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고, 작업의 모티프로서 고향의 기억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해주며, 특히 그의 작품에 내재한 건축적 요소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나는 겨울과 그리고 걷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일요일 오후면 대서양의 바닷자락이 미 대륙에 미친 곳에 이른다. 엄청나게 길고 느린 포물선의 검푸른 겨울바다이다. 매미 허물처럼 얇은 파도가 소실점을 향해, 고리고리 몰고 간다. 그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빛빛의 조각들이 나의 앞과 뒤를 따르고 그 빛들은 살얼음 같은 바다 추위를 잊게 하여 나를 따사로움으로 이끌고 따사로움은 우리의 창호 문으로 데려다 준다. 우리 조상들은 그 문으로 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直線 行爲’를 했다고 본다. 옛날 나의 이웃동네, 가랫골, 멍심이, 우렁태, 어링이, 살구머리, 덕문이 … 바로 그 공간들은 문살과 창호를 통한 빛의 미학이었다. 나는 이 먼 곳에 와 옛날 빛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금의 그것에 고리를 만들고 있다.'

이 글에 의하면 그에게 고향은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물리적, 지리적 장소이자 추상적 정신적 공간으로 예술작업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다. 대서양에 비치는 햇빛의 조각들은 그를 고향 집 창호로 데려가고, 그는 창호에 비친 고향의 빛을 연상하며 우리의 조상들이 그 빛을 통해 가장 멋진 “직선 행위”를 했다고 기억한다. 직선의 빛은 그에게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여 옛날 자신의 이웃 동네들을 떠올리며 예술작업을 위한 기억의 고리로 작용한다. 고향에 대한 기억의 빛은 임충섭에게 시간으로 인식되어 과거와 현재를 잇고, 공간으로 형상화하여 작품으로 재현된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임충섭의 고향에 대한 기억이 건축물에 대한 구체적인 형상과 함께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에 의하면 건축은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동반자로서 어떤 예술보다도 인간의 삶에 밀착한 채 시각과 촉각과 같은 감각을 조정하면서 감각적 습관을 형성해왔다. 벤야민이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건축을 논한 배경은 인간이 예술에 참여하는 방식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는 예술작품을 정신분산적 지각상태에서 경험할 때 대중은 “예술작품을 자신들 속으로 흡수”한다고 주장한다. 즉 습관에 의해 산만하게 볼 때 작품에 대한 우리의 지각적 수용을 더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례로 그는 건축물을 거론한다. 그가 보기에 주거 건축물은 어떤 예술품보다 오랫동안 인간 가까이에 존재해왔다. 우리는 건축물을 미술관에 걸린 한 점의 그림을 보듯 거리를 두고 집중하여 보지는 않지만, 일상의 습관에 따라 보고 만지며 시각적 촉각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충섭의 어릴 적 건축공간의 체험은 벤야민이 말한 감각적 습관을 형성했으며 이는 그의 심상에 한국건축공간의 이미지를 각인한다. 이런 감각적 습관의 형성과 이미지 각인은 임충섭이 어릴 적 손등에 흙을 얹고 놀았던 놀이를 최초의 건축행위로 기억하고 인식하는 데서 익히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최초의 건축행위는 “20세기 중엽 우리 한반도의 가운데에다 그리고 내 손등에다 흙을 얹었다가 그 손을 비우면 되어지는(두꺼비집) 공간”이라고 술회한다. 건축물은 인간의 개인적이거나 집단적 삶이 진행되는 가운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상황과 내면의 변화와 함께하는 실제적인 체험 공간이다. 이는 임충섭의 경우에 더욱 분명해지는데 그에게 고향 집은 자신이 체험했던 존재의 근원과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는 구체적인 물질 공간으로,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말했듯이 “인간의 사상과 추억과 꿈을 한데 통합하는 가장 큰 힘의 하나”다. 
시각예술가 임충섭에게 바슐라르적 통합은 작품 제작 과정을 거쳐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임충섭과 동년배의 미국 작가 리처드 터틀(Richard Turtle)이 강조했듯이, 임충섭 작품의 탁월성은 마음의 상을 끄집어내어 손으로 형태화하면서 추상이나 개념을 넘어서 무언가를 “리얼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임충섭은 이 과정을 자기 안에 있는 기억이나 경험과 같은 마음의 풍경을 파내는 “마음파내기”라고 설명한다. 임충섭 작업의 리얼함은 재료를 선택하고 깎고 다듬고 조합하는 그의 손길과 그 과정에 지속해서 작용하는 한국건축공간의 체험에서 나오고, 긴 노동의 과정에서 작품은 놀라운 구체성을 띤다. 이로써 터틀이 간파했듯이 임충섭은 한국 전통 미학을 추상화하면서 동시에 강렬한 “리얼함”을 표출하는 고유의 미학을 완성한다. 그의 마음에 남아있는 고향의 건축에 대한 기억은 2000년 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에서 열린 《임충섭: 빛의 건축》전에서 선보인 <빛몰이>(2000), <물매>(2000)를 비롯하여 <처마>(1993), <우물>(2003), <마당>(2008), <지붕>(2009), <문간>(2009), <월인천강>(2009), <연못II>(2011), <월인천지>(2012) 등의 설치작업에 잘 드러난다. 임충섭은 이러한 작품들이 어릴 적 집 마당, 정원, 해와 달이 통과하는 창호의 빛, 처마, 지붕, 문, 우물과 같은 “자연, 문명, 기억의 건축적 축적물”이라고 술회한다. 이처럼 어릴 적 자신이 살았던 시공간을 재현하는 임충섭의 작품에서는 한국전통건축의 특성 즉, 빈 공간과 개폐를 통한 운율의 리듬, 은근한 빛의 운용, 수평과 수직의 조화로운 수용과 같은 미의식이 드러난다. 이것은 임충섭의 미의식이 고향이라고 하는 정신적 공간에 잠재한, 특히 오랜 세월 삶에 밀착하여 한국인의 미의식 형성에 영향을 준 한국 고유의 건축미와 상통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III. 임충섭 작품에 내재한 한국전통건축의 미의식   

1. 한국 마당의 여백  

공간은 사전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라는 의미이다. 이에 비해 여백은 그냥 빈 공간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남긴 빈 공간이다. 즉 “아무 목적도 없는 ‘0’의 공간이라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개입과 아이디어에 의해 무한적으로 가능성이 확장되는 시작으로서 ‘0’의 공간이다.” 여백은 이처럼 무언가가 드러날 가능성을 내포한 공간이다. 한옥 연구가 이상현은 이러한 공간과 여백의 차이를 건축에서 공간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서양 건축의 공간은 그야말로 빈 공간이다. 그러나 동양 건축에서 공간은 기(氣)로 채워져 있는 공간이다. 이렇게 봤을 때 여백은 기로 채워져 있어 무언가를 생성할 가능성을 내포한 공간이 된다. 
한국전통건축에서 이와 같은 여백의 의미가 잘 드러난 곳은 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 집은 크기에 따라 행랑마당, 사랑마당, 안마당, 샛마당(건물과 건물사이), 중마당(마당과 마당사이) 등과 같은 마당을 가지고 있다. 마당은 집뿐 아니라 바깥마당, 동네마당(동네 사람들이 모여 노는 정자나무 아래), 정자마당(동네 마당에 정자가 마련되어 있는 경우), 우물마당 등 공공장소에도 위치한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마당은 생활의 중심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한국의 마당은 빈 여백을 마련한다. 마당의 여백은 햇빛과 바람을 받아 배출하는 곳으로 통풍과 채광을 통한 대기 순환과 정화의 기능을 갖는다. 이렇게 마당은 비어있음으로써 그곳에 들어오는 것들을 순환하고 정화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제3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마당은 빈 공간이지만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 다음에 채워질 준비를 하고 있는 공간이다. 즉 무한히 확산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가들이 마당을 제3의 건물이라 일컬으며, 한옥의 생명력을 마당에서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충섭은 한국 마당의 미적 특성을 추출하여 간결한 형태로 재현한다. 그의 설치작업 <마당 Madang>(2008)은 최소한의 행위로 흩뿌려진 흙의 궤적을 연출함으로써 한국 마당의 여백의 미를 사유하게 한다[도판 1]. 붓의 획을 긋듯 지극히 단순한 몸짓으로 그어놓은 흙의 궤적은 전체적인 공간에 경계를 그어 공간을 확보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빈 여백을 강조한다. 경계를 지음으로써 공간의 빔(虛)을 드러내는 역설적인 전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한국과 서양의 사각형 공간인 마당을 비교하는 건축학자 임석재의 견해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에 의하면 서양 전통 건축은 기본적으로 불투명한 공간 개념을 갖지만, 한국 전통 건축은 투명한 공간 개념을 갖는다. 이와 같은 개념은 사각형 마당의 모서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서양이 모서리를 메우고 봉합하여 불투명한 기하학적 완결성을 드러내는 반면 한국 전통 건축의 사각형 공간은 모서리가 조금씩 열려 있어 투명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모서리가 열려 있는 사각형 공간은 경계가 분명한 공간의 완결성보다는 모호한 경계 속에서 여백을 생성하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동양에서 여백은 노자의 도의 한 양태인 무위와 관련한다. 인간의 행위가 최소화한 공간, 자연발생적인 공간으로서. 무위의 공간은 작위가 없고 형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위는 행위가 없거나 형체가 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위는 불필요한 행위의 절제로, 미술에서 그것은 최소한의 형태로 남는다. <마당>에서 흙의 쓸린 궤적, 즉 인간의 최소한의 행위가 없으면 여백을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마당>에서 여백은 인간의 행위와 무위, 형태와 무형의 경계에서 독특한 미를 창출한다.
한국의 마당의 여백이 햇빛과 바람을 순환시키고 정화하여 새로운 빛과 바람을 생성하고 배출하듯이 임충섭의 <마당>의 여백은 지나온 공간과 새로운 공간을 연결하는 동시에 사물들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전시 장소라는 공간의 차원에서 이 여백은 주위에 배치된 사물들이 순환하고 정화하는 장소다. 사물들이 순환하고 정화한다는 말은 사물들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눈과 발이 이곳에서 머물며 새로운 감상을 위한 휴지, 즉 에포케(epoché)를 얻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러한 휴지는 전시장을 돌아보는 관람객에게 깨달음을 제공한다. 즉 <마당>은 작품 자체로서 여백의 의미도 있지만, 주변의 사물들이 순환하고 정화하는 공간이자 관람객의 사유를 유도하는 에포케의 공간이다. 사물로 차 있는 공간은 더는 생성할 것이 없지만 여백은 이처럼 새로운 것을 생성할 여지를 남긴다. 
이와 같은 성찰의 공간으로서 여백은 먼저 작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다. 임충섭은 한국건축공간에서 마당이 갖는 순환과 정화의 기능을 이주작가로서 갖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승화한다. 그는 마당의 여백을 서양의 보이드 개념과 매개하여 상호 순환시키고 정화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부여한다. 

'내 작업의 기조는 현대 인간 문명과 자연, 그 사이(between)에서 조형적 다리를 놓는 것이다. 그 사이는 동양에서 여백이라고 불려왔고, 서양에서는 보이드(void)라 일컬었다. 이렇듯 현대문명과 자연은 이분법(dichotomy)적으로 나뉘어 있지만 동시에 상호 이해의 가능성도 있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이 미니멀리즘과 상통하듯이 말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임충섭이 조형 작업을 통해 서양의 미니멀리즘과 동양화의 여백 같은 상호 문명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이해의 가능성을 찾아 나간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차이’는 언제나 존재한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관점에 달려있는데, 이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차이를 인정하는 ‘비등가성’의 수용과 서로를 외적으로 측정하거나 계산의 대상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이다. 임충섭은 한국 전통 건축의 마당에서 발견한 여백을 서양의 공간 개념과 대척점에 두는 이원론적 사유가 아닌 차이의 수용과 상호 교접의 방향으로 이해하여 형상화함으로써 자연과 문명, 동양과 서양의 공존이라는 정신적 등가물을 자신의 작품에 심어놓는다. 

2. 개폐와 높낮이의 반복이 생성하는 리듬

임충섭이 뉴욕으로 이주한 1973년은 1960년대 중반 일어난 미니멀리즘 운동의 영향이 강한 세를 형성하여 현대 설치미술의 방향을 주도하던 때였다. 임충섭은 미니멀리즘의 산업적 재질과 기하학적 형태의 경직성에 부드러움과 작가의 손길을 가미하여 그 한계를 극복하려 한 소위 포스트미니멀리즘 설치 작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작품과 그것이 놓인 공간, 그 속에 서 있는 관객 간의 현상학적 만남이라는 미니멀리즘의 기본 조건은 그의 설치 작품에 지배적이다. 이는 미술에서 건축적 요소의 개입으로 나타난다. 미술에서 미니멀리즘 이후 인간의 신체와 작품 사이의 현상학적 체험이 제작 및 감상과 해석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해온 것처럼 건축에서도 현상학적 체험, 즉 인간과 건축 사이의 상호작용은 건축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그리스 사람들이 신전을 세웠을 때 그들은 건물 하나를 세운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오래된 신에 대한 사유 경험을 반영하여 신을 거기에 존재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건축물과 인간의 경험 사이의 상호작용을 말해준다. 즉 신전에 신이 거한다는 것은 ‘거기’에 있는 건축물과 사람의 역사적 경험이 합한 결과로서 신전이라는 건축물만으로는 신이 임재하는 장소로서 의미를 확보하지 못한다. 건축의 존재와 사람의 체험 사이의 상호작용이 신의 거주라는 의미를 생성하고, 사람의 거주 의미 또한 그 상호작용에서 발생한다. 이처럼 인간의 사유(thinking) 자체는 건축이라는 감각(sense)에 속하며, 건축과 사유 경험은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거주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건축도 사람도 상호의존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가 발현하다는 말로서 하이데거의 ‘세계 내 존재(das-in-sein)’와 상통한다. 크리스티안 노르베르크-슐츠(Christian Norberg-Schulz)는 하이데거의 실존적 존재 이해에 공감하여 이와 같은 거주공간을 ‘실존적 공간’으로 인식한다.  

         '하이데거는 말하기를 “단일의 세계는 항상 고유한 공간의 공간성을 드러낸다”고 하였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환경의 공간적 이미지를 구축한다. 이것을 우리는 ‘실존적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 (…) 실존적 공간의 구조는 ‘곳(places)’, ‘길(paths)’, 그리고 ‘영역(domains)’의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다. 곳은 인간 행동의 중심이며 통로는 환경 점유하기의 가능성을 묘사하며 영역은 친근한 혹은 먼 구역을 질적으로 정의한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실존으로서 자신의 공간적 이미지를 구축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러한 실존적 공간은 미리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존적 공간은 인간 실존이 세계 내 존재로서 세계와 맺는 관계 속에서, 그 시점마다 인간의 신체적 지각과 상호작용하는 현상학적인 공간이다.
한국전통건축의 공간이 인간의 신체와 관계하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체험은 시감각일 것이다. 한국전통건축 공간 구성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개폐에 의한 시각 체험의 반복은 신체 반응과 연동하면서 ‘거기’에 있는 사람에게 리듬을 제공한다. 임석재는 이러한 운율과 리듬을 ‘긴장감’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충남 공주시 태화산 마곡사와 같은 종교건축물을 예로 든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때의 긴장감은 건물 사이의 거리를 비정상적으로 좁히고 시선의 각도를 어지럽히는 방법을 통해 일어나는 것으로 편안함 대신 종교적 엄숙함을 제공한다. 반면, 한국의 전통 가옥에서 이러한 리듬과 긴장은 편안함을 동반한다. 예를 들어 전남 구례군에 있는 <운조루(雲鳥褸)>에서 개폐의 시각적 반복은 행랑마당, 큰사랑마당, 큰사랑 뒷마당, 안사랑마당, 안마당, 사당마당 등 여섯 개의 마당과 1개의 대문과 5개의 협문으로 이루어진다[도 2]. 대문에 들어서면 큰 마당이 있어 제일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내 낮은 담장이 시야를 가린다. 담장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고 들쑥날쑥하다. 게다가 쭉 이어질 것 같은 담장은 어느 순간 비어 있거나 협문으로 단절된다. 그 단절의 틈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시야가 열린다. 이런 식으로 담장과 마당이 낮은 담장과 작은 틈을 경계로 개폐를 반복한다. 회화에서 색, 선, 면의 운용으로 캔버스 내에서 반복하는 수축과 팽창의 정신적 작용을 틈과 담장, 마당이 대신하여 수행하는 듯하다. 개폐는 담장이나 사람의 신체와 조화를 이루는 기둥, 천정과 처마, 마루와 같은 구조물들이 사람의 시선 범위를 넘어서지 않고 변화하는 가운데 반복한다. 신체와 시선의 조화 속에 이루어지는 개폐의 반복은 배흘림기둥이나 담장이나 계단의 다듬어지지 않은 돌과 같은 재료들의 자연스러운 선과 더불어 비정형적이면서도 감각을 거슬리지 않는 질서를 생성하고, 그 질서는 사람에게 편안한 운율과 리듬을 느끼게 한다.   
임충섭의 자유형 캔버스 작업 <무제-단색적 사고>(1979)에 나타나는 형태의 배치는 운조루의 개폐의 배치와 흡사하다[도 3]. 운조루의 배치도와 비교하여 확인할 수 있듯 그의 작품에서 한가운데 위치한 형상은 운조루에서 사랑채와 행랑채가 사방의 마당 혹은 빈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것과 유사하게 각 귀퉁이의 형상에 둘러싸여 있다. 이와 같은 각 귀퉁이의 각기 다른 모양의 기호들은 비대칭적인 차이를 보이면서 수축-팽창 혹은 열림-닫힘의 공간 운동을 생성한다. 이러한 공간 운동은 완전히 열린 좌측 하단의 기호를 비롯하여 열린 정도에 차이를 보이는 각 기호의 변화로 더 활성화한다. 가운데 형상에서 다섯 개의 사선은 운조루의 마당을 거쳐 사랑채로 올라가는 계단을 떠올린다. <무제-단색적 사고>에서 전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리듬은 바로 이러한 빈 공간(마당)과 네 개의 귀퉁이 기호들의 차이에서 온다. 차이들은 다시 일치하려는 속성으로 인하여 반복을 내포한다. 운조루가 사방을 둘러싼 담장으로 인하여 어느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채 마당과 협문을 통한 반복을 유도하는 것처럼 <무제-단색적 사고>는 사각 캔버스의 한정성이 개방과 폐쇄의 반복을 유도한다. 이렇게 한정된 캔버스에서 생성하는 차이의 반복은 보는 이에게 리듬감을 제공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이러한 리듬은 화가의 감각의 독창적인 통일성과 다중 감각적인 형상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더 근원적인 힘으로서 ‘감각의 논리’를 형성한다.  

         '따라서 화가는 감각의 일종의 독창적인 통일성을 보여주고 다중 감각적인 형상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려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업은 오직 모든 영역을 넘어서고 횡단하는 생명력과 직접 접촉하는 특정 영역의 감각(여기서는 시각적 감각)으로만 가능하다. 이 힘은 리듬으로 시각, 청각 등보다 근원적이다. 리듬은 청각 수준에서는 음악, 시각적 수준에서는 그림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세잔이 말한 '감각의 논리'로서 이성적이지도 않고 뇌 작용도 아니다. 따라서 궁극적인 것은 감각과 리듬의 관계이다. 이 관계는 그 수준들의 각 감각과 그것을 통과하는 영역들에 위치한다. 이 리듬은 음악을 통과하는 것처럼 그림을 통과한다.'

임충섭의 작업에 나타나는 리듬은 그의 소리 감각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동물과 식물 등 자연이 내는 소리뿐 아니라 자동차 경적마저도 재즈의 한 리프(riff)로 해석한다. 임충섭에게 리듬은 일상적이어서, 이런 리듬에 대한 감각이 건축적 요소와 함께 작품에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사운드 시스템을 적용한 그의 작품, <월인천강>(2009-2014), <월인천지>(2012), <처마>(1993), <비틀즈II>(1999)에는 소리가 나지 않을 때라도 관객은 위와 같은 개폐와 비대칭의 형태로 인하여 마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환영에 젖는다. 특히 그의 대형 설치 작품 <월인천지>에서 이러한 리듬은 각 오브제 사이를 잇는 끈과 매듭, 연결로 극대화한다[도 4]. <월인천지>에는 오브제와 으브제의 연결, 의미와 의미의 연결 사이에 시간적 질서를 담은 리듬이 있다. 하지만 그 질서는 이성과 논리에 기초한 순차적인 체계가 아닌 감정과 찰나의 포착으로 이루어진 비정형성을 기초로 한다. 건축의 도면형식에 따라 <월인천지>의 정면을 입면도로 그려보면 거대한 조형물, 베틀, 정자, 달 모양 오브제들의 높이는 일정한 선보다는 무정형의 선으로 이어질 것이다. 단면도에서는 각 오브제를 잇는 실은 거리의 장단이 비정형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러한 무정형 비정형의 시각적인 높낮이는 관객이 현재와 과거의 시공간을 오가는 역동적 리듬을 경험하게 한다. 거대한 조형물과 작은 정자의 대비로 일어나는 크기와 색의 차이 또한 운율을 낳는다. 천정에서부터 내려오는 커다란 조형물과 그 옆으로 바닥에 낮게 깔린 작은 바늘, 바닥에 놓인 베틀과 그 분해물들, 아예 바닥과 밀착한 영상물 연못, 그 연못 위로 사람 키를 조금 넘는 곳에 매달린 창덕궁 후원의 연못에 있는 정자를 비율 그대로 본뜬 미니어처, 그 옆에서 돌아가는 무릎 높이의 달 모양 오브제들은 들쑥날쑥하다. 
이와 같은 시각적인 높낮이는 한국의 전통 정원을 닮아있다. 한국의 정원은 길이 꼬불꼬불한데다 굴곡이 있고, 담장이 들쑥날쑥하여 걸어가는 내내 다른 풍경을 접하게 한다. 임충섭은 2017년 초겨울 창덕궁 후원을 걸으면서 한국 건축의 담장과 길의 높낮이가 주는 운율과 리듬, 그리고 그 너머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담장의 은근한 감춤에 관해 이야기했다. 후원을 걷다 보면 담장 너머 건물의 처마가 보이다가도 살짝 돌아서면 모든 건물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긴 진입로를 따라가다 보면 불쑥 연못이 나오거나 정자가 등장하는가 하면, 길을 돌아서면 또 숲과 같은 새로운 풍경이 전개한다. 좁게 난 담장을 따라 펼쳐지는 이러한 풍경의 변화는 걷는 이로 하여금 내내 운율과 리듬을 타게 한다. 임충섭의 <월인천지>는 한국전통건축, 특히 정원에서 모티브를 얻은 장단과 운율을 타는 오브제들의 연결과 비정형적인 높낮이가 빚는 차이의 반복으로 리듬을 자아낸다. 

3. 한국 창호의 은근한 빛의 미학  

자신의 설치작업을 자연, 문명, 기억의 건축적 축적물로 인식한 임충섭은 어릴 적 손등에 두꺼비집 만드는 놀이를 건축에 대한 최초의 기억으로 되새기면서 건축 재료로서 빛, 물, 바람, 흙을 꼽는다. 이는 한국전통건축이 갖는 자연 재료의 특성과 일치한다. 건축에서 빛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서양의 건축이 전반적으로 빛을 차단하거나 막는 데 치중한다면 한국의 전통 건축은 빛을 받아들이는 데 치중하고, 빛을 받아들이되 매개를 통해 은근하게 받아들인다. 그 매개가 창호(窓戶)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와 같은 차이는 집의 구조물과 관련 있다. 서양의 집은 벽을 쌓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형식이다. 따라서 구조를 받드는 벽의 창은 작고 수가 많지 않아야 했는데, 이는 불가피하게 빛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는다. 반면 한국 전통 집은 벽을 쌓아 짓는 대신 기둥을 세워서 집을 짓는 데다, 추위를 막아주는 구들이 있어서 벽이 얇아도 되는 구조였다. 따라서 서양보다 창을 많이 낼 수 있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프라이버시 침해인데, 창호가 이를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임석재는 이러한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주는 편안함이 한국 전통 건축의 또 하나의 멋이라고 평가한다. 
창호는 창(window)과 호(door)의 합성어다. 호는 문(gate)과는 다르다. 문이 집에 들어가는 경계로서 큰 문이라고 하면, 호는 집 안에서 서로 다른 공간을 이어주는 작은 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 창호는 살대에 창호지를 붙인 창살문과 나무판으로 된 판문으로 나눌 수 있다. 임충섭이 지칭한 창호 문은 “바로 그 공간들은 문살과 창호를 통한 빛의 미학이었다”는 그의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살대에 창호지가 붙은 창호로 창과 호를 통칭한다고 할 수 있다. 창살은 창짝이나 미닫이 등에 가늘고 길게 자른 나무를 가로 세로로 교차하면서 대부분 정(井)자살, 띠살, 빗살 등 다양한 기하학적인 형태를 띤다. 이러한 형태는 창호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다양하게 변주한다. 창살의 형태를 따라 들어온 빛은 방안이나 마루와 같은 공간에 선을 생성하기도 하고, 빛의 강함을 순화하여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양의 유리창이 빛을 여과 없이 통과시키는 것과 달리 종이로 바른 한국 전통 창호는 빛을 일정 정도 머물게 하면서 빛을 순화시키고 이후 비치는 공간을 온화하고 은은하게 만든다. 이러한 빛의 기억을 임충섭은 자신의 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one drop
함축됨의 빛
      ○주어진 공간에서의 빛
hand in
       hand out           
      ○지나간 빛, 지금의 빛, 나중의 빛 
○마음에서 得한
        “빛”의 Physical은 
        마음에 의해 Function화
        · 즉 빛의 형상화

위 노트는 임충섭이 주어진 공간에서 인지하는 빛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며 마음으로 포착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의 작업은 마음에 자리한 빛을 기능화하고 형상화한 실체다. 임충섭의 마음에 자리한 빛은 은근하다. 태양처럼 적나라하게 작렬하는 빛 보다는 은은하게 톤이 가라앉은 빛이다. 이 빛은 ‘우리의 창호’를 통해 들어온다. 

         '나를 따사로움으로 이끌고 따사로움은 우리의 창호 문으로 데려다 준다. 우리 조상들은 그 문으로 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直線 行爲’를 했다고 본다. 옛날 나의 이웃동네, 가랫골, 멍심이, 우렁태, 어링이, 살구머리, 덕문이 … 바로 그 공간들은 문살과 창호를 통한 빛의 미학이었다. 나는 이 먼 곳에 와 옛날 빛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금의 그것에 고리를 만들고 있다.'

임충섭은 이국땅에서 어릴 적 창호로 들어오던 은은한 빛을 기억한다. 한국 건축에서 창호의 한지는 빛을 끌어들여 밝게 하기 보다는 빛의 양기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한국 창호의 은근한 빛은 이런 기능 아래 발생한다. 이러한 빛은 임충섭으로 하여금 달빛에 대한 사유로 나아가게 한다. 은은한 빛과 달빛의 관계에 대해 한국 전통 건축학자 이상현은 주목할 만한 주장을 펼친다. 그에 의하면 담으로 쌓인 서양 건축은 그만큼 직사광선을 선호했고, 창호로 빛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한국 건축은 그만큼 간접광선을 선호했다. 이상현은 이처럼 간접광선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성향을 달을 좋아하는 성향과 연결 짓는데, 아마도 달의 간접적인 은은한 빛을 선호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임충섭에 의하면 서양의 문명이 해와 함께 발달했다면 동양의 문명은 달과 함께 발달했다. 해가 양(陽)이라면 달은 음(陰)이다. 음인 달은 해처럼 확연하게 빛나기보다는 은은하게 빛나고 모호하게 드러난다. 

'서구 세계에서는 달보다 해가 더 큰 영향력을 지녀왔던 터라 달이 갖는 동양의 개념을 취해 그것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보고 싶었다. 달은 해보다 더 음성적(negative space/void space) 시적 구조와 이미지를 엿볼 수 있는 소재다. 내게는 달빛이 연상시키는 단색적 사고개념이 해보다 더 진한 여백의 개념으로 이끈다.' 

임충섭은 달이 갖는 음성적인 부분이 해보다 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해가 사실을 밝히는 논리를 낳는 데 비해 달의 은근한 감춤은 이야기와 신화를 낳는다. <월인천강>의 달은 신비롭고 모호한 분위기 속에서 인간의 곁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속삭인다[도 5]. 그 달은 어릴 적 바느질하던 어머니 옆에서 글을 배우던 임충섭에게 창살문으로 빛이 비쳤던 사실을 알려준다. 또 자신을 바라보며 계절과 조수의 변화를 예측하며 벼를 짓고 배를 띄우던 사람들의 이야기, 낙엽이 쌓인 장독대 위에 물 한 사발 올려놓고 거기에 비친 자신과 하늘을 번갈아보며 정성스럽게 기도하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속삭인다. 이처럼 무언가를 감추는 듯 은은한 달빛은 임충섭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작가의 제작에 관여한다. <월인천강>의 달이 비친 그림자 연못에는 두 마리의 작은 물고기가 노닌다. 그 위로는 점점 차고 이지러지는 달 이미지를 담은 비디오가 상영되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지극히 한국적인 장면은 엘리노어 허트니(Eleanor Heartney)가 그랬듯 “달빛 아래 고요히 젠 스타일(zen style) 정원에 앉은 느낌”을 제공하면서 “이황과 기대승의 대화에 흘렀을 평정을 관조 내지 성찰”하게 한다. <월인천강>의 달빛 아래서 관객은 실재와 허상이 하나인 세계,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지 않는 불이의 세계에 이르는 선문답을 경험한다. 이러한 예술적 성취는 임충섭이 경험한 한국 전통건축의 창호에 비친 은근한 빛의 미학에서 비롯한다.

4. 지붕과 처마에 드러난 수평과 수직의 다원적 수용  

이어령에 따르면 위로 솟구치는 수직은 자연을 거스른 인위적인 힘의 산물로서 서양 역사를 지배해온 힘의 상징이다. 반면에 동양의 역사는 흐르는 물처럼 인위를 자제하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같은 힘이라도 폭포가 자연 그대로의 힘이라면 분수는 거역하는 힘, 인위적인 힘의 산물이다. 여기에 바로 운명에 대한, 인간에 대한, 자연에 대한 동양인과 서양인의 두 가지 다른 태도가 생겨난다. 그들이 말하는 창조의 힘이란 것도, 문명의 질서란 것도, 그리고 사회의 움직임이란 것도 실은 저 광장에서 내뿜고 있는 분수의 운동과도 같은 것이다. 중력을 거부하는 힘의 동력, 인위적인 그 동력이 끊어지면 분수의 운동은 곧 멈추고 만다. 끝없이 끝없이 인위적인 힘, 모터와 같은 그 힘을 주었을 때만이 분수는 하늘을 향해 용솟음칠 수 있다. 이 긴장, 이 지속, 이것이 서양의 역사와 그 인간 생활을 지배해 온 힘이었다.' 

조금 문학적인 분석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위로 오르는 수직은 서양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문명을, 수직을 자제하는 수평은 동양을 중심으로 전개해온 문명을 가리키는 함축적 용어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오늘날 무의미해 보인다. 서양의 패권에 의해 근대의 식민화 및 탈식민화를 거쳤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문화에 있어서는 동서양 모두 서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력에 의한 일방적인 문화 권력이 분명 존재하지만, 확실히 과거에 비해 세계의 문화 속에서 혼종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은 눈에 띄게 증가했으며, 실제 그런 혼종성은 각 문화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비교적 건축물이 오래 남아있는 물질적 실체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근대 이전의 건축에서 문화 혼종성은 더욱 뚜렷이 남아있다. 근대 이후의 혼종성도 마찬가지인데, 마샬 버먼(Marshall Berman)은 이를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모든 단단한 것이 공기 속으로 용해’하는 혼동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가 보기에 이런 용해는 인류를 하나로 묶지만 ‘통일성 없는 통일’, 즉 다양한 통일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논하는 동서양의 차이는 지금 시점의 차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차이를 가리킨다. 건축물도 비슷하다. 현대에 이르러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직의 높이를 겨루는 건물들이 주를 이루지만, 적어도 한국과 서양의 건축 전통에서 사고하는 방식은 좀 달랐다고 여겨진다. 서양의 건축 전통은 수직의 높이를 지향하거나, 그 대응으로 수평을 강조하든지 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토대로 전개해왔다면, 한국의 전통건축은 수직의 높이를 견제하는 수평의 건축, 즉 둘 모두를 수용하면서 그 대비와 조화를 동시에 강조하는 다원적인 사고를 토대로 전개해왔다. 임석재는 이러한 차이가 하늘과 땅을 별개의 개념으로 보는 서양 문명과 하늘과 땅을 동시에 수용하고자 한 한국 문명의 차이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즉 한국 지붕과 비교할 때, “서양 건축의 지붕에서는 땅을 닮은 수평선과 하늘을 향하는 수직선이 동시에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전통건축의 지붕과 지붕의 끝부분인 처마는 수직과 수평, 하늘과 땅의 조화 혹은 상호보완을 상징한다. 한국 전통건축에서 지붕은 가운데로 솟구쳐 있지만 이내 수직의 높이를 제어하는 용마루에서 처마 곡선을 따라 아래로 향한다. 그리고 그런 형태는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이루어져 공간의 단절보다는 이음, 연결의 느낌을 제공한다. 기와의 굴곡이 이러한 느낌에 영향을 준다. 이러한 형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수직 혹은 수평이라는 별개의 느낌보다는 수직과 수평의 조화를 느끼게 한다. 처마도 마찬가지다. 건물 밖으로 튀어나온 처마는 그 적당한 길이로 인하여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러운 곡선이 수직상의 하늘과 수평상의 땅을 대비시키면서 둘 사이를 단절하는 대신, 둘을 절충하는 매개체로 보인다. 전통 건축뿐 아니라 근대 이전의 한국의 주택은 거의 이와 같은 지붕과 처마 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이와 같은 한국과 서양 건물의 미세한 차이는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조화를 추구한 것으로 알려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낙수장 Falling water>과 한국 전통건축물에서 드러난다. 숲속에 위치한 라이트의 <낙수장>은 수평으로 층을 이루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의지를 드러내지만 한국 전통건축의 지붕과 처마가 보여주는 하나의 덩어리로서 수직과 수평의 조화와 대비 같은 다원적 사고를 드러내지는 못한다. 임충섭은 이를 건축을 자연에 순응하고 존중하는 건축과, 대자연을 무시하고 기하 형체로 깎아 부수는 건축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에 따라 그는 서양 건축에서는 남다르게 자연과 순응하는 유기건축과 수평적인 건축을 시도한 라이트의 건축물을 좋아하면서도 <낙수장>의 지나친 인위적 요소에서 한국 전통건축과 차이를 발견하고 조금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낸다. 라이트가 일본 전통 건축의 영향을 받아 지붕을 낮게 만든 <윈슬로하우스>(1894) 또한 전반적으로 직선적이고 수직적인 느낌을 주는데, 그것은 한국의 전통건축과 달리 직선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인 형태 때문이다. 임석재의 분석에 의하면, 이는 서양 건축에서 시도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결국 “동일 요소의 반복이나 총체적 질서들과 같은 객관적 법칙”이라는 선험적 가치 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라이트의 건축은 자연과 유기적 관계를 시도했지만, 한국 전통건축과 비교하면 인간의 자연에 대한 개입 의지가 더 강한 서양 문명의 특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임충섭의 수평과 수직에 대한 다원적 사고는 2009년 12월 30일에 작성한 작업노트에서 찾을 수 있다. 

도시 문명 속에서 하늘이 내려앉음을 
느끼고, 만지고, 생각하고 냄새 맡는 것은 
나의 미술 acting에 커다란 움직임을 남겨준다. 

하늘이 하늘에 있질 않게 하고 
지상에 접함은 내가 갖는 예술의 영역의 자유감을 만끽한다. 

여기에서 임충섭은 ‘하늘과 지상의 접함’을 통한 자유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그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며 전개해온 ‘수직’과 ‘수평’의 접함이다. 이러한 임충섭의 사유는 자연/수평과 문명/수직의 공존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고, 자신의 작가 정체성을 자연과 문명을 잇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이는 자연과 문명 중 하나를 택하는 일원적 사고가 아니라 둘을 모두 포용하는 다원적 사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유 속에서 그는 한국전통건축의 지붕과 처마에 주목하고, 처마가 함의하고 있는 하늘과 땅의 공존과 조화를 형태화한다[도  6]. 
<처마>는 전시 장소에 따라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지만, 서구의 원근법적 공간 개념인 소실점 대신 한국 건축에서 강조하는 처마의 완만한 곡선의 미감을 구현하는 공통점을 갖는다. 바닥에 깔린 흙이나 돌은 모두 땅의 수평을 지시한다. 특히 임충섭에게 흙은 도시 공간에 모습을 드러낸 자연으로 현대인의 자연 회귀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도시의 경쟁적 일상에 쉼을 제공하는 여백의 상징이며 도시와 자연을 잇는 작업의 소재다. 전면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구조물은 수평과 수직의 대비를 지시한다. 처마가 가지고 있는 수직과 수평의 대비라는 추상적 개념이 흙과 돌, 반듯이 세워진 나무의 실체로 눈앞에 펼쳐진다. 작품과 마주한 관객은 처마의 형태와 함께 처마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탐색하면서 한국과 서양, 수평과 수직 문명의 조화로운 삶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를 맞는다. 

IV. 결론 

이주작가 임충섭의 작업은 한국전통건축의 미학적 요소를 현대미술의 언어로 재구성한 독창적 사례다. 본 논문은 임충섭의 작업에서 한국전통건축의 미학적 요소가 갖는 본질적 의미를 규명하고, 그것이 동시대 현대미술 담론 속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조명했다. 임충섭의 예술은 고향 상실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경험을 예술적 창조의 원천으로 전환하며, 이를 동서양의 융합적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임충섭에게 각인된 한국건축의 지각 경험은 단순한 향수가 아닌,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여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자연과 문명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임충섭의 작업에 나타나는 한국전통건축의 미의식은 동서양 문명이 만나 융합하는 과정에서 생성하는 한국현대미술의 새로운 담론의 가능성뿐 아니라 현대미술과 전통 미학의 지속적인 만남의 중요성을 증명한다. 
임충섭의 예술에 내재한 한국전통건축의 미의식은 그의 작업이 이주작가로서의 문화적 경험을 시각화함과 동시에 동서양 사유의 접점과 이를 잇는 예술의 역할과 기능을 탐구하는 중요한 사례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임충섭의 작업은 지역과 글로벌 문화의 혼종 속에서 지역을 바탕으로 한 미의식의 가치와 사유의 중요성을 새롭게 일깨운다. 또한, 임충섭과 같은 작가들이 글로벌화한 환경 속에서 지역 문화의 특징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지역 건축물처럼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촉각적 리얼리즘이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임충섭이 고향에 대한 기억을 예술적 사유로 재구성한 작업은 한국 전통 건축의 핵심 특성인 여백, 개폐, 높낮이의 리듬, 창호를 통한 빛의 은유, 그리고 수평과 수직의 다원적 사고를 환기한다. 이는 한국 고유의 미학이 글로벌 문화와 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의 중요한 토대로 작용한다. 임충섭은 기억의 형상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사잇’ 존재로 자각하며, 예술을 통해 고향과 뉴욕이라는 대조적인 두 세계를 잇는 통로를 만들어낸다. 그의 ‘사잇’ 개념은 동양과 서양, 고향과 도시, 자연과 문명이 만나는 경계에서 새로운 미적 경험과 정체성을 창출하였으며, 이러한 혼종성과 상호침투성에 대한 분석은 세계적인 미술의 맥락에서 한국현대미술을 폭넓게 해석할 기틀을 마련한다. 

* 이 글은 『미학예술학연구』 제74집 (2025.02), pp. 104-130에 실린 논문으로 원로작가 임충섭 디지털아카이빙사업의 연구원으로 일할 때, 책임연구원이었던 이필 교수와 함께 쓴 글이다.
도판과 각주를 포함한 이 글의 원본은 https://ksasa.jams.or.kr/po/volisse/sjPubsArtiPopView.kci?soceId=INS000001330&artiId=SJ0000000954&sereId=SER000000002&submCnt=1&indexNo=5 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사업신청 시, 후 작업으로 임충섭 작가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여 논문을 쓰기로 했었는데 사업을 마친 후 이 글을 포함하여 총 세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나머지 두 편은 다음과 같다. 이필, 「임충섭 작업에 나타난 오브제의 미학과 스토리텔링」, 『한국예술연구』23 (2019), pp. 123-147 (DOI 10.20976/kjas.2019..23.006). 
심현섭, 「들뢰즈의 ‘비자발적 기억·지성·통일성’을 통해 본 임충섭의 예술세계」, 『한국예술연구』 34(2021), pp. 97-118 (DOI 10.20976/kjas.2021..34.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