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시간을 움켜쥔 몸짓 회화
김성호(미술평론가, Sung-Ho KIM)
영화감독이자 미술가인 오점균은 이번 개인전의 전시 주제로 ‘시간의 몸’을 화두로 내걸었다. 구체적으로 “몸은 시간 속에 반응한다”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는 몸을 기치로 한 초기작에서 몸과 맞물린 자연과 사회라는 컨텍스트로 확장한 무엇이다. 필자는 그것을 ‘시간을 움켜쥔 예술가의 몸짓 회화’로 규정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의 최근작에 담긴 일단의 고민과 조형 세계 그리고 그것에 담긴 미학적 함의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I. 육화된 카이로스의 시간
오점균의 작업은 심리적으로 주관화하는 자신만의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에 천착함으로써 선형적이고 객관적인 ‘크로노스(kronos)’의 시간을 재구성하고 재맥락화한다. 특히 그의 작업은 일명 ‘몸짓 회화’를 통해서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육화(肉化)하고 재맥락화한다. 즉 크로노스의 시간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생로병사의 엄연한 몸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상상력의 이름으로 크로노스 시간의 맥락을 해체하고 재조합함으로써, 그 크로노스 속 카이로스의 시간을 유유히 횡단하는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 오점균의 작업에서 재구성되고 재맥락화하는 시간이란 내 몸이 되고 내 것이 되는 ‘육화의 시간(temps de l'incorporation)’이라고 할 만하다.
오점균의 작업에 나타나는 ‘육화의 시간’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살펴보자.
먼저 작품 〈원천리〉 연작을 보자. 이 연작은 그가 실제로 텃밭을 가꾸는 자신의 야외 아틀리에 풍경을 19세기 말~20세기 초 유행했던 미술 사조의 조형 언어로 담아낸 것이다. 즉 이 연작은 같은 풍경을 각기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의 회화 양식으로 표현한다. 그의 몸이 위치한 ‘지금, 여기’의 시공간에서 발견한 회화 대상을, ‘그때’의 역사적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옛 화가의 눈과 마음에 빙의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포착한 작업인 셈이다. 결국 이 연작은 현재진행형으로 달려가는 크로노스의 연대기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을 해체하고 오점균만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재맥락화한 작업이라고 해설할 수 있겠다.
또 다른 작품 〈습작- 원천리 풍경〉은 골판지 위에 작업실 주변 풍광을 봄, 여름, 가을이라는 세 계절의 풍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 작업이다. 오점균은 이 풍경 속 하늘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자신의 자화상을 추가함으로써 작업의 초현실적 분위기를 더한다. 이 습작과 더불어 같은 주제를 캔버스로 옮긴 또 다른 작품 〈하늘에 누운 남자〉 역시 크로노스의 시간을 해체하고 현재의 공간 위에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이 뒤섞인 초현실적, 심리적, 주관적 카이로스의 시공간을 펼쳐 보인다. 공간은 하나이되, 시간이 중첩된 카이로스의 주관적 시공간으로서 말이다.


자화상이란 늘 카이로스의 시간을 횡단하는 산물이다. 오점균이 작업실 바닥의 오염된 장판을 오려내어 장판 위 시간에 묵은 때를 닦아내면서 만든 작품 〈바닥의 자화상〉이나 엷은 물감으로 자화상을 그린 종이를 수세미로 벗겨내기를 반복해서 완성한 〈벗겨진 자화상〉 연작, 그리고 최소 분량의 물감과 최대 분량의 물을 섞어 희미하게 그린 작품 〈저렴한 자화상〉은 모두 불교의 허, 무, 공의 철학을 성찰하고 ‘지우기로 그리기’를 실현함으로써 크로노스의 시간을 해체하고 육화된 카이로스의 시간을 성찰한다. 한편, 작업 후 남은 물감을 사용해서 매일 자화상을 그려나간 작품 〈염원〉이나 〈24년 여름 자화상〉 또한 크로노스의 시간 안에서 날마다 육화된 자신만의 카이로스의 시간을 대면하고 자신을 성찰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다.
이처럼 오점균의 모든 작업에는 이미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이 ‘지금, 여기’에서 맞물리면서 해체되고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그만의 특별한 시간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가히 ‘육화된 카이로스의 시간’이 주도하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II. 창작의 개념과 과정을 드러내는 몸짓 회화
그렇다면 오점균에게서 몸짓 회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몸의 동작이나 제스처를 통해서 구현하는 회화로서, 화가의 감정이나 메시지를 표출하는 개념적 회화의 한 방식이 된다. 퍼포먼스 페인팅(performance painting) 또는 퍼포밍 페인팅(performing painting)으로 달리 불러봄 직한 이 몸짓 회화는 화가의 몸짓을 통해 구현된 결과물을 통해 감정을 듬뿍 담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한다.
한편, 오점균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이 주도하는 몸짓 회화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몰이해 혹은 소통 결여의 차원을 극복하기 위해 작품명이라는 텍스트로 창작의 의도를 유추하게 만드는 장치를 고려한다. 세로로 긴 캔버스에 휘어진 수직선들을 일필휘지로 겹쳐 놓은 작품 〈곡괭이질 액션에 의한 페인팅〉, 가로로 긴 캔버스에 다이내믹한 운동성의 붓질로 가득 찬 작품 〈땅 갈아엎어 고른 다음 씨앗 심는 동작에 의한 페인팅〉은 그 제목만 보아도 그의 회화 창작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가늠하게 만든다. 핑크빛 바탕색 위에 붓질의 반복되는 스트로크가 쌓여 있는 또 다른 작품 〈라틴댄스에 의한 페인팅〉은 또 어떠한가? 작품명은 그의 몸짓 회화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가늠하기에 족하게 만든다.
프랑스의 문화기호학자 바르트(R. Barthes)에 의하면 이미지는 “떠도는 사슬고리(une chain flottante)”처럼 모든 의미를 떠다니는 다의성의 존재이지만, 텍스트라는 기표(signifiant)가 부가됨으로써 이미지가 품은 다의적 기의(signifié)를 설명이 가능한 단의적 메시지로 잡아두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즉 텍스트를 통해 이미지의 다의적 기의를 하나의 메시지로 잡아매는 고정(ancrage)이나 유사한 메시지의 군집으로 묶어두는 중계(relais)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오점균은 이러한 작품명이 자신의 작업에서 의미의 단초를 제공하는 중계의 역할 정도로 머무르길 원한다. 예를 들어, 정확히 어떠한 몸짓이었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작품 〈선 자세에 의한 드로잉〉은 뒤로 들어 올린 한쪽 다리를 손으로 잡은 채 한 발로 서서 남은 한 손을 뻗는 요가 동작을 통해 넘어질 때마다 그려진 선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처럼 그의 작업에서 주요한 것은, 완성된 작품 이미지를 풀이하는 언어적 메시지가 아니라 이미지 창작 과정에 있어서, 순연한 몸짓을 통한 회화 창작과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개념과 과정이 무엇보다 주요하다. 즉 팔이나 무릎에 붓을 감아 그리거나 때로는 눈을 감은 채 몸에 의탁해 그리는 그의 몸짓 회화는 창작을 견인한 구체적인 몸짓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판별하기보다 그 창작의 개념과 과정에 집중하는 ‘육화된 카이로스의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오점균은 창작의 노동 혹은 유희에 흠뻑 빠진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결과물보다 회화의 개념과 창작 과정에 방점을 찍고 몸을 통한 시간 투여의 방식에 집중한다. 캔버스에 포장된 비닐을 뜯지 않고 그 위에 즉흥적 붓질을 남긴 〈캔버스를 구해줘!〉와 태극기를 그린 〈던지지 마세요〉와 같은 작품은 버려질 비닐이라는 잉여의 재료를 작품의 전면으로 끌어들인 개념적 회화로 자리한다. 또한 〈V자 몸짓〉, 〈옐로우 몸짓〉, 〈파란 몸짓〉과 같은 작품들은 창작의 개념과 과정에 관한 질문을 넘어서 순연한 몸의 언어 즉 ‘몸짓’ 자체에 골몰한다.
그는 걷기나 달리기를 지속하면서 옆에 세워놓은 캔버스에 흔들리는 수평 붓질의 흔적을 남기거나, 팔다리를 휘저으며 스트레칭하면서 앞에 세워둔 캔버스에 그 운동의 흔적을 남기거나 하는 식으로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표현이 가능한 몸의 다양한 언어를 실험한다. 그런 까닭일까? 오점균은 삶 속에서 일상으로 벌어지는 몸의 운동과 건강한 웰빙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운동을 교차하는 이와 같은 유형의 연작을 ‘헬스 아트(Health art)’로 특별히 명명하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몸짓 회화는 작가-작품-관객 사이에서 소통의 문제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몸 소통 회화(painting as a bodily communication)라고 달리 부를 만하다.



III. 소셜 아트로서의 몸짓 회화
오점균의 몸짓 회화는 나아가 소셜 아트(social art)로서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사회적 예술이라고 부를 만한 이것은 작가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의 맥을 잇는다. 보이스는 1982년 제7회 카셀 도큐멘타에서 한 그루의 떡갈나무와 6,999개의 현무암을 전시함으로써 향후 카셀에 시민 참여를 통해 7,000그루의 떡갈나무와 현무암을 함께 세우는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그것을 ‘사회적 조각’으로 명명한 바 있다. 일견 순연한 몸짓에 의한 창작 개념과 과정에만 골몰해 보이는 듯한 오점균의 몸짓 회화는 실상 보이스의 이러한 사회적 조각의 위상을 뒤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가로로 기다란 화폭 위에 색색의 붓질이 물결치듯 일렁이는 작품 〈행진〉은 2024년 말,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경악하여 탄핵과 파면을 외치는 한국의 들끓는 민심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형식은 추상이지만, 그 내용은 용산과 광화문 앞에서 흔드는 응원봉 물결을 형상화한 까닭에 소셜 아트 즉, 사회 비판적 예술로 어렵지 않게 자리매김한다. 수평 붓질로 채운 캔버스와 더불어 역동적이고 즉흥적인 붓질의 또 다른 캔버스를 병치한 작품, 〈두 세력이 대결하면 다양한 에너지를 모은 쪽이 이긴다〉는 형식은 추상이지만, 내용은 국민이 탄핵 반대와 찬성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는 작금의 혼란스러운 한국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다. 작품 〈위대한 몸싸움〉은 또 어떠한가? 이것은 물감을 덕지덕지 바른 비닐 우비를 입은 채 한 지인과 몸싸움해 가면서 만든 것으로, 비상계엄 해제 전까지 온몸으로 계엄군을 막아냈던 시민들의 행동에 감사를 표하며 그들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다.
물론 오점균의 몸짓 회화로서의 소셜 아트는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거시적 사건뿐만이 아니다. 황갈색 물감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추상 작품 〈취준생이 면접 보러 전철역으로 달려가는 데 설사 나온다〉나 혈흔이나 꽃송이들이 산포(散布)한 듯이 보이는 추상 작품 〈모든 가임기 여성이 한 달의 ‘삼분의 일’ 가량을 월중 행사로 고통받는 초저 출생국인 대한민국〉처럼 오늘을 사는 일상의 소소한 사건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품마저 아우른다.
오점균의 작업에서 소셜 아트는 대개 ‘추상화된 몸짓 회화’로 대별되지만, 형상성을 갖춘 구상 회화에서도 이러한 속성은 잘 드러난다. 앞서 언급했던 자화상이나 여기서 고찰할 타자의 초상은 대표적이다. 이러한 형상성을 표방하는 타자의 초상 혹은 사회적 초상은 추상화에 비해 소셜 아트의 직접적 메시지를 전한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과 더불어 그의 부인 김건희의 얼굴을 중첩해서 선보이고 있는 연작인 〈출생의 비밀〉, 〈천 개의 사랑〉, 〈천 개의 사랑 - 호러 버전〉, 〈시한폭탄을 제거하는 데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줄어드는 시간의 초조함을 잘 버텨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를 기다리기까지 국민 대다수가 오랫동안 감내해야만 했던 분통함과 울분을 미술이라는 언어로 토로한 것이다.
최근 탄핵 받고 직무 정지가 되었다가 다시 헌재의 판결로 복귀한 한덕수 대통령 직무대행의 초상을 그린 작품 〈한순간 결단력 부족으로 대대손손 ‘반란 협조자 후손’ 낙인을 찍어준 사람〉은 어떠한가? 이 작품은 한덕수 대행의 위헌적 내란 공조 행위를 단죄하고자 하는 작가의 민주시민으로서의 결기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렇듯 오점균의 작업에서의 소셜 아트로서의 몸짓 회화는 추상화뿐만 아니라 풍경이나 인물을 소재로 삼은 구상화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다르다면 추상화가 작가의 몸을 도구로 삼아 간접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한다면, 구상화는 육화된 풍경과 자화상 그리고 타자의 초상을 통해 비교적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다.

IV. 에필로그
오점균의 몸짓 회화는 시간 속에 반응하는 몸을 소재, 제재로 삼아 몸에서 자연과 사회라는 컨텍스트로 확장하는 중이다. 그의 ‘카이로스 시간을 움켜쥔 몸짓 회화’는 추상화이든, 구상화이든지 간에 몸을 통한 회화 창작의 개념과 과정을 드러내는 한편, 오늘날 자연과 사회 현상을 은유하고 확장하면서 소셜 아트로서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한다. 회화뿐만 아니라 설치의 언어를 횡단하면서 관객과 적극적 소통을 도모하면서 말이다. 이 글이 작가가 특유의 몸짓 회화로 매어놓은 개념적이거나 정치적이기도 한 다의적 메시지를 읽는 작은 안내서가 되길 기대한다. (20250330)
김성호, 「카이로스의 시간을 움켜쥔 몸짓 회화」, 『오점균』, 전시 카탈로그, 2025.
(오점균 : 시간의 몸에 대하여, 2025. 04. 23~05. 07, 예술공간 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