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스케이프로 견인하는 순수와 환상 자연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화가 최영달은, 《산촌화실(山村畫室)의 사계-동서양 여행 스케치》라는 제명의 개인전을 통해서 자신의 작업실과 그 주변에서 일상으로 맞닥뜨리는 정원 풍경과 함께 그가 매년 찾아 나선 해외 여행지에서 만난 자연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필자는 그의 작업에 담긴 작품 세계를 ‘마인드스케이프(Mindscape)로 견인하는 순수와 환상 자연’으로 평한다.


I. 심안으로 그린 ‘안의 정원 풍경’과 ‘밖의 자연 풍경’
‘마음 풍경, 내면 풍경, 정신 풍경’ 등으로 정의될 만한 ‘마인드스케이프’는 “개인의 내면세계나 감정, 생각의 풍경”을 의미한다. 즉, 마인드스케이프는 개인의 경험, 기억, 감정 등이 결합한 상태로 마음속에 형성된 내면 이미지를 가리킨다. 달리 말해 이것은 관조자가 미적 대상에 관해 시각적 지각뿐만 아니라 감정적 인식 그리고 개념적 사고를 한꺼번에 표현하는 ‘심상 풍경’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니까 미술에서 이 마인드스케이프는 화가가 맞닥뜨린 사물, 인간, 풍경, 세계 등 다양한 미적 대상을 단순히 시각적 재현이라는 ‘객관적 방식’으로만 포착하지 않고, 화가의 마음을 투사하여 표현, 상징, 은유, 개념 등 ‘주관적 방식’으로 건져 올리는 회화가 된다.
최영달은 작업실 주변의 정원 풍경이나 시간을 내어 떠났던 해외 여행지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되, 사실적인 재현 방식에 골몰하기보다 자신의 마음과 오감을 통해 선호하는 색채와 구도로 자신의 회화에 천착함으로써 자연의 깊은 울림을 그의 방식으로 전한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자연의 깊은 울림이란 무엇인가? 그는 말한다: “자연은 그 자체가 아름답다. 나는 그 아름다움 속에 매일 빠져드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건져내는 것이 나의 창작 행위다.”
작가 노트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최영달은 자연 자체의 순연함을 찬미하고 그 속에서 빠져들었던 자신의 미적 경험을 건져냄으로써 자연을 화폭에 담는다. 그리스어로 '자연'을 의미하는 피지스(physis)는 “인간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 것, 있는 그대로의 것”을 뜻한다. 자연의 한자어처럼, ‘스스로(自) 그러한(然)’ 존재인 셈이다. 흙, 물, 공기와 같은 원초적 본성을 품은 자연으로서 말이다.
최영달은 이러한 자연을 경주의 한적한 시골 작업실 인근에서 수시로 만난다. 그는 야트막한 야산과 그 안에 자리한 수목과 수풀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피어나는 꽃들을 지속해서 맞닥뜨린다. 그는 34년 전, 이러한 자연을 매일 가까이 맞이하고자 작업실 뜨락에 정원(庭園)을 꾸미기 시작했다. 작지만 튼실한 소나무와 벚나무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붓꽃도 심어 가꾼 그의 정원은 비록 삶의 터전으로 들어온 인공 자연이지만 자연의 정수를 담아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뜨락 앞에 가까이 둔 자연 풍경을 화폭에 담으면서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이란 기쁨과 환희의 연속이었다.
한편, 최영달은 1983~84년 일본 도쿄와 미국 여행을 시작한 이래 2025년 최근 베트남 여행에 이르기까지 47회의 해외여행을 다녀온 바 있는데, 그가 여행 중 만났던 자연 풍경의 감흥을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해외 자연 풍경을 크고 작은 화폭에 부지런히 담아왔다. 그가 국내외 여행 중 만난 자연에서 느꼈던 감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그때, 그곳’에서의 자연을 시각, 후각, 촉각과 같은 우리 몸의 모든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인 지각(perception)의 감흥이자, 다시 인식(recognition)이라는 이름으로 ‘그때, 그곳’의 미적 경험을 소환하는 것과 연동된다. 즉 ‘밖의 자연’을 ‘안의 작업실’ 안에 소환하는 그의 풍경화는 감흥으로 맞물린 지각과 인식 그리고 추억을 동반한다.
생각해 보자, ‘밖의 자연’을 ‘안의 작업실’로 옮겨오는 일이란 머리의 기억이기보다 마음의 깊은 심연에 거주하는 기억을 가져오는 것이다. 즉 ‘마음의 눈으로 보았던 자연’ 그리고 ‘마음에 품었던 자연’에 대한 ‘기억의 잔상’을 소환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몸의 눈으로 보고 읽은 랜드스케이프(landscape)'이기보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읽고 기억하는 마인드스케이프(mindscape)'라고 할 만하다. 그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사생하는 정원 풍경뿐만 아니라 감흥에 가득한 기억을 소환해서 그리는 해외의 자연 풍경은, 동일하게 그의 내면세계나 감흥을 투사했다는 점에서 ‘심안(心眼)으로 그린 ‘다른 듯 같은 마인드스케이프’가 된다. 즉 심안으로 그린 ‘안의 정원 풍경’과 ‘밖의 자연 풍경’이라고 할 만하다.


II. 자연의 이미저리와 환상 자연
최영달이 화폭에 담은 자연 풍경은 자연의 외피적 이미지(image)라고 하기보다 자연과 맞닥뜨렸던 당시의 마음과 감정의 기억을 소환한 자연의 이미저리(imagery), 즉 ‘자연의 내적 형상’이라고 할 것이다. 생각해 보자. ‘몸의 눈’으로 드러내는 이미지는 대상을 분석하고 해부해서 발가벗겨 내고 그것을 재조합하는데 골몰하지만, ‘마음의 눈’으로 포착하는 이미저리는 대상에 감정이입하고 대상과 교감하고 대화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의 작가 노트 속 발언을 들어보자: “고요한 산속에 있으면 나 또한 고요해진다. 그 고요 속에서 꽃과 새를 바라보노라면 나는 자연이 되고, 내 맘속에 ‘순수’가 피어난다. 그것을 표현한 것이 나의 그림이다.”
그의 발언처럼, 마음의 눈으로 포착하는 이미저리, 즉 그의 마인드스케이프에서, 자연은 작가의 마음속으로 오고 작가는 순연한 자연의 일부가 된다. 마치 물아일체(物我一體)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철학을 그림으로 실천하려는 듯이 말이다. 그는 말한다. “꽃나무의 꽃을 보며 환상을 느낀다. 메마른 가지에서 어찌 저토록 부드럽고 아름다운 색이 피어나는가? 그 놀라움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의 말처럼, 최영달의 마인드스케이프에는 육안(肉眼)의 재현 혹은 사생(寫生)의 의지를 어르고 다독이는 심안(心眼)의 환상적 표현과 비사생(非寫生) 의지가 넘실댄다.
작품을 보자. 마음의 눈으로 자연을 포착하는 최영달의 자연 풍경에는 재현을 밀치는 비사생의 의지와 함께 높은 명도와 채도 그리고 선명한 색상이 어울려 환상적 이미지를 창출한다. 해외 여행지에서 만난 거대한 설산의 풍경이나, 석양을 배경으로 한 미국 애리조나주와 유타주 경계에 있는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의 장대한 풍경은 환상적인 대자연의 모습을 선보이기에 족하다. 드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산양이나 짙푸른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의 모습을 담은 풍경에는 화면을 분할하는 과감한 구도가 돋보인다. 이러한 과감한 분할 구도는 해외 휴양지의 호텔 창문에서 내다보는 야자수가 늘어진 해변의 풍경이나 경주의 한 건물 안에서 내다보는 첨성대 풍경을 통해서, 마치 문학의 장에서 거론되고 있는 환상적인 ‘액자소설’과 같은 이중의 시공간적 맥락을 선보인다. 그뿐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배경으로 한 인물이 서 있는 풍경은 구상화 속 개입하는 큼직한 추상의 화면이 오버랩되면서 현실 속 비현실이라는 환상적 이미지를 선보인다.
한편, 작가의 정원에 불러온 자연 풍경 또한 환상적이다. 이른바 정원 풍경은 청명한 하늘을 감싸안고 화사하고도 청초한 자연의 싱그러움을 전한다, 물기를 가득 먹은 듯 보이는 초목 밑 잔디 위에 한낮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풍경이나, 푸르른 녹음 아래 오밀조밀하게 모여 피어난 붓꽃의 선명한 보랏빛을 보라! 세부 묘사를 고의로 방기하고 부드러운 색상의 음영으로 면이 분할된 울긋불긋한 단풍 숲 아래 펼쳐진 푸른 잔디 위에는 한 마리의 강아지가 뛰놀고 원경의 숲에는 작은 새가 동그마니 앉아 풍경을 지키고 있다.
최영달의 이러한 ‘환상적 풍경’은 피상적으로 화면 구도나 색면 분할, 그리고 아크릴 물감을 펴 바르는 독특한 붓질이 남긴 질감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연을 ‘순수의 근원’으로 대면하고 그것을 마인드스케이프로 번안하는 미적 관조 태도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III. 에필로그
최영달은 최근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한 자연 풍경에 이르기 전, ‘바람’이라는 테마 아래, 바람처럼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예술가의 희망을 담아 10년 넘게 실험적인 추상 회화에 천착해 왔다. 화폭 위에 물감을 덮고 마르기 전에 특수한 도구를 사용해서 마치 바람결의 흔적을 드러내듯이 순식간에 화면을 긁어내는 작업이 그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미적 대상으로 삼아 기운생동의 몸짓과 연동하는 회화를 실험한 이 ‘바람’ 연작은 생성, 소멸이라는 자연의 본질적 차원을 서체(書體) 미학을 통해 구현하려는 시도였다.
칠순이 넘는 노년의 화업에 들어선 최영달은 화가가 되기 이전 ‘순수’의 마음을 되새기면서 자연을 성찰하는 ‘느리지만 신중한 자연주의 회화 실험’을 실천하는 중이다. 세계를 대면하는 예술가의 초심, 즉 ‘순수’를 늘 견지하면서, 마인드스케이프라는 이름으로 대상에 대한 육안의 판별력’보다는 심안의 판별력’에 더욱더 관심을 기울이면서 말이다.
끝으로 그의 향후 작업에 대한 전망은, 그의 일관된 작가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아래의 작가 노트로 대신한다.
“어려서부터 화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자는 순수한 쪽으로 기울며 자란다. (중략) 감성이 풍부하여 진실한 가치, 진과 미에 대하여 잘 느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인간의 행복은 미감에서 오는 것, 물론 부에서도 오지만 그 맛이 다르다. / 나는 진과 미 속에 매일 담그고 싶다. 그래야 향수병에서 향이 나듯이 내 그림에서 아름다움이 풍겨 나오리라 믿는다.”
(20250422)
김성호, 「마인드스케이프로 견인하는 순수와 환상 자연」, 『최영달』, 전시 카탈로그, 2025
(최영달-산촌화실의 사계展, 2025. 04. 29~09. 28, 유리섬박물관/맥아트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