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돌의 초상 - 삶의 시간을 새기는 운동과 놀이 흔적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조각가 장성재는 오석 덩어리에 구멍을 뚫어 내부로 침잠하는 ‘열린 공간’을 만들거나 그 표면 위를 깎기(carving)의 기법으로 물결 모양의 패턴을 만들고 정으로 쪼거나 그라인더로 연마하여 검거나 흰 ‘돌의 피부’를 만든다. 필자는 이러한 그의 작업을 ‘유연한 돌의 초상 혹은 삶의 시간을 새기는 운동과 놀이 흔적’으로 평한다. 그것이 무엇이고 그의 이러한 조각이 품은 미학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





I. 돌의 삶에 투사하는 유연한 돌조각  
장성재는 오석(烏石, blackston)을 조각의 질료로 삼고, 깎기의 조형 언어로 작업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검은색 돌 전반을 가리키는 오석은 마그마가 식으면서 형성된 화성암(火成巖, 심성 화강암)이 주를 이루는데, 주로 비석으로 사용되는 오석의 정확한 암석명은 ‘흑운모 화강암’이다. 장성재는 이 오석을 조각의 재료로 사용한다. 오석은 단단함이나 긁힘에 대한 저항력을 뜻하는 경도(硬度, hardness)가 매우 높고, 압력·충격에 대한 저항력인 강도(強度, strength)나, 갈라짐이나 깨짐 없이 버티는 능력을 가리키는 인성(靭性, toughness)이 모두 높다. 게다가 오석은 내부에 규칙적인 결정 구조를 가진 광물들로 이루어진 밀도가 높은 결정질 암석인 까닭에 가공하기 쉽지 않다. 
장성재는 이처럼 다루기 쉽지 않은 오석을 왜 조각의 재료로 선택한 것일까? 단단한 재질로 인해 정교하게 깎고 가공하기 쉽지 않지만, 땀 흘리는 노동의 시간을 투여해서 오석 덩어리에 구멍을 내고 외부 풍경으로 숨길을 열어주는 투과체의 조각을 만들거나 돌의 내부 공간을 깎아 숨겨진 검은색의 속살을 발견하는 창작의 기쁨을 위해서다. 그런 면에서 장성재의 작업에서, 오석이라는 돌은 그가 물질적 상상력을 통해 예술 작품으로 견인하는 질료인 동시에, 삶의 대화를 나누는 또 다른 소통 주체가 된다.
장성재는 오석을 주로 사용하지만, 더러는 흑색 편마암 계열의 고흥석(高興石)이나 회색 화강암 계열의 황등석(黃登石)과 같은 또 다른 성질의 자연석을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종류와 상관없이, 돌의 순환하는 삶을 생각해 보자. 땅이 물을 만나 퇴적암(堆積巖)이 되고, 땅이 불을 만나 화성암(火成巖)이 되기도 하며, 땅이 물, 불, 공기를 만나 줄무늬 가득한 변성암(變成岩)이 되기도 하는 ‘돌의 순환적 삶’은 인간의 생로병사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마치 화성암처럼 단단해지고(생), 변성암처럼 시련을 겪다가(로병) 퇴적암처럼 흙과 몸을 섞는(사) 삶, 그리고 생성소멸로 순환하는 ‘돌의 삶’은 생로병사로 이어지는 ‘나/우리’의 인생으로 비유할 만하지 않은가? 
작가는 돌의 순환하는 삶에 투사하는 창작 노동을 통해서 인생을 반추하는 명상을 지속한다. 단단함과 강한 응집력을 지닌 오석이나 다양한 재질의 자연석 덩어리를 작업실에 가져와 끌, 정, 니들, 그라인더로 자르고 깎고 매만지는 고되고도 지난한 창작 과정을 통해서 돌의 삶과 인생을 거울처럼 만나게 한다.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원하는 크기로 잘라내어 추상적 매스와 볼륨으로 전환하고 돌을 마치 나무의 재질처럼 유연하게 만드는 그의 재능 넘치는 기술은 주목할 만하다. 마치 검은 푸딩을 둥근 숟가락으로 떠내어 만든 것처럼 보이는 조각 표면의 물결무늬도 그러하지만, 돌의 피부를 자연의 거친 양상으로 극대화해서 남겨두거나 인공의 매끈한 양상으로 변환한 후 양자를 대비해 볼 수 있도록 만든 마술과도 같은 조형적 기술 또한 그러하다.
조각에 해당하는 영어 스컬프쳐(sculpture)의 라틴어 어원이 ‘깎다(carve)’의 의미를 지닌 스쿨페레(Sculpere)와 조각품을 의미하는 스쿨프투라(sculptura), 그리고 ‘목조각을 만드는 사람’을 의미하는 용어인 스쿨프토르(sculptor)에서 기인한 것을 상기한다면, 돌을 나무처럼 유연하게 만드는 연금술적 전환을 선보이는 그의 ‘목조각 같은 돌조각’은 조각의 본질적 의미에 충실한 작업이라고 하겠다. 











II. 노동과 유희의 시간을 돌 위에 새기는 운동 흔적 
장성재의 작업은 동시대 미술이 교조적(敎條的)이라는 이유로 폐기하려고 시도했던 모더니즘 미술의 구조적 조형을 지닌 추상과 얼추 맞물려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구, 타원, 원추, 육면체와 사각형과 같은 원형적 도상을 변주하면서도 동양철학에 기반한 우주관을 선보인다. 
그의 조각을 보자! 그의 작업은 대칭(symmetry)에 근거하되, 그 구조를 흩뜨리는 비대칭(asymmetry) 또는 볼록(凸)의 매스에 기초한 채 자기 몸속으로 파고드는 네거티브의 구멍이나 물결무늬를 통해 그 매스를 허무는 오목(凹)과 같은 조형적 변주를 선보인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는 ‘색즉시공(色即是空), 공즉시색(空即是色)’과 같은 동양철학 속 ‘공성(空性)의 우주’를 탐구한다. 여기서 ‘공성’은 단순히 '비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고정된 자아나 실체를 가지지 않고, 인연(因緣)이라는 직접적인 원인(인)과 간접적인 조건(연)에 따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緣起)의 철학을 전한다. 
이처럼 장성재는 대칭 위에 비대칭을 덧입히거나, 조각의 매스에 구멍을 내고, 표면에 골과 마루가 있는 경계의 공간을 한자리에 만들고, 핸드 밀링 머신(Hand milling machine)으로 표면 위에 그물망 같은 얇은 선각을 올림으로써,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의 우주관에 기초한 추상의 세계를 시각화한다. 즉 그는 조형의 경계를 뒤섞고 변주하여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어떤 근원적 예술의 덩어리를 창출한다.
그런데 장성재는 자신의 작업을 왜 래프팅(Rafting)이라 명명하는가? 흔히 ‘급류타기’로 번역되는 이것은 ‘강의 급류 위에서 고무보트(raft)를 타고 벌이는 수상 레저 스포츠’를 가리킨다. 이 스포츠의 핵심은, 플레이어가 거센 물결을 거스르지 않고 그 힘에 순응함으로써, 물살의 흐름을 이겨내고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작품명인 ‘래프팅’은 그가 돌의 단단한 힘에 맞서 싸워 이기려는 태도를 버리고, 거대한 자연의 힘에 몸을 맡겨 자연의 순리가 이끄는 데로 작업을 이어 나가려는 태도를 은유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장성재의 래프팅은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활유(活喩)의 메타포로 자리한다. 
힘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움이나 래프팅의 작업 태도는 돌의 물성과 결이 만든 흔적을 따라 정과 끌, 그리고 그라인더의 날을 맞춰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결이 무엇인가? 나뭇결, 물결, 숨결에서 발견하는 것처럼, 결은 음과 양,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를 상호 충돌시키면서 평정의 상태를 만든다. 역으로 말하면 ‘결’의 평정 상태는 대립의 요소들이 끊임없이 그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는 운동성의 차원을 상정한다. 일테면 ‘물결’이란 ‘골’과 ‘마루’가 만들어내는 무수한 파동(波動)으로 형성되고, ‘마음결’이란 ‘희로애락’의 상반된 감정들이 끊임없이 생채기 내며 싸우는 가운데 생성되는 파동의 관계인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결국 연기의 동양철학처럼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대칭과 비대칭, 오목과 볼록, 골과 마루, 안과 밖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돌 표면에 새긴 물결무늬가 이루는 패턴의 관계, 그리고 비워진 돌의 내면을 마치 혈맥이나 섬유질처럼 이리저리 잇고 있는 관계들이 그러하다. 파동이 ‘어떠한 곳의 에너지가 흔들림을 통해 다른 곳으로 전달’되어 나가듯이 하나의 형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 나가면서 변화를 일으키는 장성재의 작업은 따라서 운동성의 에너지를 전한다. 그래서 그의 조각은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지만, 역동적인 변화의 운동을 품은 정중동(靜中動)의 상태를 드러낸다. 
파동이 관계와 움직임을 전제하는 것처럼, 그러한 움직임에 순연히 몸을 맡기는 장성재의 래프팅은 유연한 것이자, 맞서려고 애쓰는 태도를 버린 즐거운 놀이가 되기도 한다. 그에게 창작은 분명 노동이지만, 이러한 태도는 노동마저 놀이로 바꿔나간다. 장성재는 창작에 있어서 요청되는 지난한 노동의 시간을 실제의 레포츠인 래프팅처럼 역동적인 움직임과 즐거운 놀이의 태도로 대면하고자 한다. 오석 덩어리를 자르고 깨고 그라인더로 갈아내기를 반복하는 지난한 노동을 마치 돌의 힘에 몸을 맡긴 놀이처럼 간주하고자 한다. 돌을 잘라내는 놀이 혹은 돌 표면을 물에 적시면서 그라인더로 갈아내는 놀이 그리고 돌 표면에 샌딩 작업을 하고 철분을 올려 토치로 불을 지펴 색을 입히는 놀이! 놀이는 신명 나고 놀이의 결과는 유쾌하다. 오석 안에 있던 돌의 결을 발견하거나, 오석의 표면을 자연석의 깊은 맛으로 이끌고, 오석의 속살에서 숨은 검은색을 찾아내 표면 위로 끌어올리는 기쁨은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의 작업은 가히 ‘노동과 놀이의 시간을 돌 위에 새기는 운동 흔적’이라고 할 만하다. 
 (20250415)

김성호,  「유연한 돌의 초상」, 『장성재-Rafting』, 전시 카탈로그, 2025
(장성재-Rafting展, 2025. 05. 01~06. 26, 소원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