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김달진, (우)하영준
2013년엔 홍콩 중심가에 한국작가를 소개하는 코리아갤러리를 오픈했고, 한동안 한솔문화재단 뮤지엄SAN의 학예교육실 선임학예사이자, 동시에 국내외 백남준 연구자들이 탐내는 백남준아카이브 자료를 소장한 하영준 컬렉터를 만났다.
Q. 백남준아카이브 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게 된 계기는?
A. 컬렉터도 어쩌면 예술가처럼 자신만의 주관과 색깔(전략)이 없다면 곧 사라지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의미있는 컬렉터가 되고 싶었다. 백남준(1932-2006)은 다른 회화나 조각에만 집중했던 예술가와 달리, 헤아릴 수 없는 당대의 여러 유명 예술가와 협업하며 클래식음악·전위음악·퍼포먼스아트·비디오아트를 넘나드는 예술을 했고, 수많은 언론 매체에 등장했으며, 글도 기고했다. 그와 그의 주변인물을 탐구하는 것 자체로도 큰 학술적 가치가 있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Q. 소장 아카이브 중 대표적인 자료를 꼽는다면?
A. 내가 소장한 백남준아카이브는 대부분 아카이브이자 동시에 하나의 작품이다. 1963년부터 1975년까지 백남준의 행위예술을 기록한 93장의 기록사진과 관련자료, 그리고 백남준의 십대 시절 작곡을 살펴볼 수 있는 〈메리 바우어 마이스터를 위한 작곡〉(1947-1964), 또한 1980년도 서부독일방송(WDR)에서 실현된 〈교향곡 6번〉 등도 백남준의 서명이 있는 작품이자 동시에 중요한 아카이브다.
아카이브는 아니지만 내 백남준컬렉션에는 중요한 작품이 한 점 있다. 백남준의 맏조카이자 뉴욕 백남준스튜디오 이사였고, 고인의 저작권을 승계한 법적 대리인 하쿠타 켄(한국명 백건)이 작가 생전에 ‘이 작품은 나의 아름다운 여인(my beauty)’이라고 들었다던 작품이다. 그 작품 덕에 2019년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백남준 회고전(2019.11.4-2020.2.9)의 오프닝 디너파티에 하쿠타 켄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하쿠타 켄은 내가 소장한 작품을 ‘남준의 정수(The essence of Nam June)’라고 말했는데,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나도 그렇게 느꼈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훌륭한 작품에는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은 각각의 짝을 만나는 것 같다. 그래서 미술이 나에겐 흥미롭다.
내 백남준컬렉션에서 어떤 자료나 작품이 백남준의 대표적인 자료이거나 작품인가는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 대부분은 시간이 흐르면 고장나겠지만, 백남준의 모든 아카이브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모두 집적되어 하나의 가치로서 존재하고 세상에도 그렇게 중요한 가치로써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백남준이라는 작가의 인생이 곧 마스터피스(명작)라고 생각한다.
Q. 백남준의 기존 평가에 대한 단상은?
A. 백남준의 이름은 이미 유명하지만, 그의 예술적 여정은 사실에 근거한 심도 있는 연구와 전시와 같은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를 통해 보다 더 자세히 알려져야만 한다. 백남준이라는 작가를 알아갈수록 그의 예술 여정과 인간 관계는 범인(凡人)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영역이라고 느껴진다. 백남준의 독특한 화술과 글쓰기가 그의 특별함을 말해준다. 백남준과 그의 예술 세계를 통합하여 객관적으로 연구하려면 천재적인 작가에게 걸맞은 천재적인 평론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Q. 앞으로의 계획과 관심사는?
A. 나의 백남준컬렉션이 그를 이해하는데 보탬이 되는 초석으로 기여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비디오아트 발전에 백남준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과 기여를 했는지에 대한 기록과 문헌을 꾸준히 수집하고 싶다.
- 하영준(1972- ) 성균관대 영문·중문학과 학부 졸업. 뮤지엄SAN 학예사 근무(2023-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