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리움미술관(WATARI-UM, ワタリウム美術館)은 미술관 그 이상이다. 이 공간은 예술을 매개로 한 가족의 연대, 헌신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적 신념이 만들어낸 살아있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1990년 9월,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 1943- )의 설계(1985-90)로 도쿄 시부야구(渋谷区) 진구 마에(神宮前)에 문을 열었다. 약 400㎡ 전시 공간(3개 층)과 150㎡ 정도의 뮤지엄 숍, 카페 등의 부대 시설을 갖춘 크지 않은 규모다. 미술관의 핵심 가치는 공간을 채운 예술과 이를 이끈 인물들의 열정과 철학을 담고 있다.

왼쪽부터 와타리 에츠코 관장, 와타리 시즈코 설립자, 와타리 코이치 CEO
@ 와타리움미술관
이 모든 여정의 출발점은 설립자 와타리 시즈코(和多利志津子, 1932–2012)다. 패션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와타리 시즈코는 1972년에 지금은 미술관 터가 된 자택을 개조하여 현대미술 전문 ‘갤러리와타리(Gallery和多利)’를 설립했다. 현대미술을 통해 사회와의 소통을 추구하며, 예술가와 관람객간의 직접적인 교류를 중요시한 와타리 시즈코는 상업적 이익보다 예술의 본질과 실험성을 강조하는 전시를 기획하고자 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있는 백남준(1932–2006),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87),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94), 키스 해링(Keith HARING, 1958–90),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86) 등 대표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일본 현대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의 철학과 노하우, 풍부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축적해온 예술적 자산은 이 공간을 단순한 전시장이 아닌 국제적 예술 교류의 장으로 발돋움케 했다. 이것이 갤러리와타리 시대를 마감(1989)하고 와타리움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개관 당시, 세 명의 자문가가 이 미술관의 철학과 방향 설정에 깊이 관여했다. 백남준은 예술적 조언자이자 와타리 시즈코 여사의 친구로서 미술관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었고, 특히 1993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 이후 열린 개인전은 와타리움의 대표적인 전시로 기록됐다. 또 한 명의 자문역은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 1933–2005)이다. 그는 《태도가 형태가 될 때(When Attitudes Be Form》(1969 베른), 《도큐멘타 5》(1972 카셀) 등의 기획으로 독립큐레이터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벨기에 출신 큐레이터 얀 호엣(Jan HOET, 1936–2014)은 무명 작가와의 관계 설정 및 지역을 활용한 전시방식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

《키스 해링》전 오프닝
우측부터 와타리 코이치, 두번째 와타리 에츠코, 네 번째 키스 해링, 다섯 번째(중앙) 와타리 시즈코
@ 갤러리와타리, 1983
와타리 시즈코의 철학은 단지 예술의 수집과 전시에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예술가와 함께 호흡하고 사회적 의미를 공유하며 공간을 삶의 일부로 확장시키는데 집중했다. 이러한 정신은 후계자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었다. 와세다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딸 와타리 에츠코(和多利恵津子)는 1983년에 동생 와타리 코이치와 함께 키스 해링을 일본에 초청하여 작업공간 전체를 스프레이로 채색하는 파격적인 전시를 공동 기획했다. 어머니가 별세한 뒤에는 관장직을 이어받아 지역과 세계를 잇는 예술의 장으로 미술관을 재구성하고 있다.
《물의 파문’95(水の波紋’95)》전은 일본 최초의 장소특정적(Site-specific)기획전으로 도쿄 시내의 절, 신사, 거리, 역 플랫폼 등 18개 공간을 전시장으로 삼은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 운영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최근에는 2021년 도쿄 올림픽을 기념하여, 일본의 건축가와 아티스트 10명이 국립경기장 인근에 설치한 《파빌리온 도쿄 2021》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와세다대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한 아들 와타리 코이치(和多利浩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백남준 전시 준비를 돕는 등 자연스럽게 예술 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앤디 워홀, 존 케이지(John CAGE, 1912–92),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 요제프 보이스 등의 아틀리에를 방문하며 예술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그는 《도큐멘타 9》(1992 카셀)에 아시아인 최초로 전시팀 일원으로 참여했고, 1995년에는 요하네스버그비엔날레 일본관 디렉터로 활동하며 국제적 기획자로 성장했다. 2012년 이후 와타리움미술관의 CEO로 취임하여 실질적인 운영과 전략을 담당하고 있다.

와타리움미술관
최근 미술관은 건물의 노후화로 인해 대규모 개보수 공사를 시행했다. 2024년부터 2025년에 걸쳐 외벽 보수와 엘리베이터 교체 등의 긴급 수리가 이뤄졌고 운영 예산의 압박 속에서도 《ORIZA》(쌀을 의미하는 라틴, 일본 문화의 원점 상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예술과 문화유산의 보존, 계승을 목표로 출발한 이 프로젝트의 방향은 현대 작가의 한정판 작품을 제작해 글로벌 수집가에게 제공하고 블록체인과 디지털 아카이브, AR 기술을 접목해 문화 지원의 투명성과 접근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첫번째로 스기모토 히로시(SUGIMOTO Hiroshi, 1948- )가 촬영한 와타리움미술관 사진 25점을 스페셜 에디션으로 제작했다. 와타리움미술관은 공간이자 철학이다. 그것은 곧 와타리 시즈코의 신념과 실천 그리고 이를 이어받은 딸과 아들의 노력으로 집약된다. 예술을 사랑하고 그 가치를 사회에 돌려주려는 이들의 태도와 숭고한 활동은 미술관의 벽 너머로 이어지고 있다.
- 와타리 시즈코(和多利志津子, 1932–2012) 도야마현(富山県) 오야베시(小矢部市) 출생. 현대미술 대표 작가 전시 및 수집. 해외 작가와의 교류 일부를 『アイ ラブ アート 現代美術の旗手12人(아이러브아트 현대미술의 기수 12인)』(日本放送出版協会(일본방송출판협회), 1989)에 게재. 프랑스 슈발리에 문화훈장 수훈. 와타리에츠코, 와타리코이치 공저 『夢みる美術館計画 ワタリウム美術館の仕事術(꿈꾸는 미술관 기획, 와타리움미술관의 업무방식)』(日東書院(닛토쇼인), 2012)발간. 사후 추모 행사 「夢みる 和多利志津子(꿈꾸다 와타리 시즈코)」(2013) 개최 후 같은 해 9월에는 『アートへの組曲―追悼·和多利志津子(예술을 위한 모음곡-추도·와타리 시즈코)』(와타리움미술관 기획·발행) 발간.
- 와타리 에츠코(和多利恵津子, 1956– ) 와세다대 미술사 전공. 와타리움미술관 관장(2012- ), 키스 해링 일본 초청 전시 공동 기획(1983).
- 와타리 코이치(和多利浩一, 1960– ) 와세다대 사회과학 전공. 와타리움미술관 CEO(2012- ), 1978년부터 갤러리 업무에 참여, 《도큐멘타 9》 전시팀 아시아인 최초 참여(1992), 요하네스버그비엔날레 일본관 디렉터(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