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과 색동으로 응축한 삶의 미시적 풍경



변종필 | 미술평론가


화가 장현경은 단청과 색동의 색 면에 삶의 추억과 그리움을 갈무리해 산다. 그리고 색, 선, 면을 통해 기억에 각인된 감성적 색채를 탐닉하며, 자신만의 조형과 표현으로 추억을 구성한다. 작품 제목 ‘Living memories’는 철학적 관점에서 과거의 추억과 기억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이다. 과거의 기억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현재를 살아가는 데 밑거름으로 작용하고,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하고, 삶의 궤적을 그려 나가는 연장선이다. 또한 과거의 기억과 경험은 예술 창작 활동에 필요한 영감을 주고 동기를 부여한다. 이 점에서 장현경의 <Living memories> 연작은 과거 기억과 경험을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과정이다. 


시간을 상징하는 과거의 기억과 시각적 공간을 상징하는 단청과 색동(Multicolored pattern)을 응축된 색조로 구현하여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작가 노트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단청과 색동의 응축된 색조는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색이다. 그렇다면, 많고 많은 색 중 왜 단청과 색동일까? 왜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삼았을까? 

  

전통적 유산이 되어버린 단청과 색동에 대한 정서적 기억들은 색조가 변화하며 흐르는 듯 시간과 함께 함축된 시각적 이미지가 공존하고 있다. 과거의 기억이라는 시간과 단청과 색동이라는 시각적 현상을 통해 흔적으로 남아있는 시공간을 현재의 삶에서 촘촘히 기록하고 싶었다. 

-작가 노트


작가 노트에서 보듯 장현경은 단청과 색동을 전통적 유산으로 인식한다. 오늘날 단청과 색동은 특정 건축이나 장소에서만 마주할 수 있고, 색동 역시 명절이나 경사스러운 날에 입는 옷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색이다.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 민족적 생활감정과 시대적 기호에 따른 생활풍습과 관련이 있는 고유의 색이다. 단청의 경우 시대성을 반영하고, 표현방식에서 특수성과 상징성을 지녔다. 문양의 체계와 오방색(靑·赤·黃·白·黑)을 주조색으로 한 색채의 일정한 법칙(색깔 배열)으로 색의 조화를 중시했다. 색동 역시 단청과 유사하게 홍, 황, 백, 녹, 청의 다섯 가지 주조색과 다른 색상을 포함하여 사용했다. 단청이나 색동은 그 자체로 강렬한 색이며, 상징성이 강한 만큼 한 화면에서 어울림과 조화로움을 갖기란 쉽지 않다. 상호 질서나 조화가 무너지면 복잡하고, 어수선함만 남기 쉽다. 단청이나 색동의 색 배열을 일정한 규칙적 패턴으로 매뉴얼화한 것은 이 같은 이유가 크다.


그렇다면, 장현경은 단청과 색동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그에게 단청과 색동은 작품 표현의 분명한 동기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단청보다는 색동이 지닌 색의 배열을 조형적으로 구성한 측면이 강하다. <Living memories> 연작을 살펴보면 선의 넓이(두께)와 길이, 색의 배열, 백색 구획선 등 작품의 화면 구성에 따라 다르게 표현했을 뿐 사실상 단청과 색동의 차별화된 특징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이는 단청이 지닌 특징을 문양이 아닌 색 중심으로 파악한 결과로 보인다. 단청과 색동의 고유색과 아크릴 색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때문에 단청이나 색동의 고유색을 엄격히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오방색과 단청이 장현경에게는 작품 표현의 중요한 근거일지 모르지만, 정작 작품에서는 색동의 응용 비중이 훨씬 크다. 


<Living memories> 연작을 좀 더 들여다보자. 작품의 전체적 인상은 카메라 앵글에 잡힌 객관적 기록을 색채와 색 면으로 펼친 느낌이다. 항공에서 내려 본 풍경 같은 인상도 주지만, 들여다볼수록 작가의 경험과 기억 속에 사진처럼 각인된 풍경을 구조적으로 해체하여 평면으로 재구성한 느낌이다. 단청, 건축 구조물, 벽면, 질감 등 건축 공간을 이루고 있는 여러 구성 요소를 평면에 펼쳐놓고, 이를 색 면, 색 띠로 이어주는 식의 표현이 주를 이룬다. 산, 바다, 건물, 도심 등 삶 속에서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의 풍경들을 아름다운 색 배열로 치환한 느낌이랄까. 한마디로 작가의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자기 경험의 색들이 화면을 차지한다. 다양한 색의 배열로 채워진 추상 화면은 기억과 상상으로 조합한 마음의 색으로 읽힌다.


독특한 화면 마티에르도 <Living memories> 연작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물감을 감싸거나 머금은 듯한 특유의 백색 마티에르 표현 기법이 색의 화려함을 부추긴다. 전통 프레스코 기법이 색(안료)을 흡수한다면, 장현경의 마티에르는 석고를 입힌 평면을 긁고, 파내고, 갈아내는 기법으로 질감을 그대로 노출 시켜 시각적 촉각을 살렸다. 그 위에 물감을 얹는 방식이다. 그리고 번짐의 강약으로 표현한 자유로운 선(線)들은 색과 색을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살펴 본대로 장현경의 회화는 강렬한 색채, 픽셀 같은 색면의 배열, 촉각적 마티에르를 특징으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조형 탐구가 특징이다. <Living memories> 연작은 작가 개인의 인생에서 겪은 희로애락이 담긴 ‘단청과 색동으로 응축한 삶의 미시적 풍경’, 혹은 ‘색동 하모니로 집약한 기억의 파편’ 정도로 표현할 만하다. 


아서 단토는 ‘아름다움이란,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어떤 것이다’라고 했다. ‘어떤 것’은 아름다움의 개념 자체를 뜻한다. 아름다움은 단순히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측면이 더 중요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외모나 겉모습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 가치와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더 깊게 이해해야 한다. 결국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자연과의 소통과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시각적 아름다움에만 매몰되지 않고, 작품에 내재된 상징성이 이해될 때 비로소 아름다움도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며, 예술의 아름다움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다른 이유이다. 


화가가 뚜렷한 자기만의 조형 언어를 갖는다는 것은 예술가로서 의미 있는 성과이다. 이 점에서 장현경은 분명한 자기 색을 지닌 화가이다. 조형 언어의 폭과 깊이를 확장해나가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꾸준히 자기 세계를 탐구해 온 열정만큼 발전을 기대한다. 장현경의 단청과 색동을 통한 삶의 궤적이 앞으로 어떠한 변주로 전개되고, 어떻게 이해의 폭을 확장해나갈지 궁금해진다. <Living memories> 연작이 대중과 함께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미적 대상으로 이해되느냐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