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수로요 레지던스>

임지윤의 해부된 상상: 미지의 생명체의 낯선 형상 탐구



변종필 | 미술평론가


임지윤의 페인팅은 순간순간 보여지는 어느 부분, 혹은 어떤 형상이 흥미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드는 끌림이 있다. 보면 볼수록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시공간을 초월한 어떤 불멸적 존재들을 모아놓은 느낌이랄까? 그의 그림을 처음 보면 특이함, 불편함, 괴이함 등이 교차한다.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괴기스러운 유령체가 발산하는 묘한 기운이 화면을 지배하고, 여러 기관을 파헤쳐 해부한 듯 그린 정교한 묘사에 끌려 숨겨둔 비밀의 문을 여는 것 같아 신경이 곤두선다. 다수의 작품에서 감지되는 성적(性的) 분위기의 영향이 크다. 그의 그림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여성성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대상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본능이 강한 것일까? 내부를 해부한 듯한 임지윤의 집요한 탐구적 습관은 유년 시절, 정형외과 의사의 딸로 자라면서 병원에서 보았던 해부학 도감들이 끼친 시각적 충격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환자들의 신체 일부를 차가운 금속 물질로 대체하는 수술은 잊혀지지 않은 충격이었다. 이 충격적 경험은 그의 작품에서 신체를 단순한 생물학적 대상이 아니라, 조형적 탐구의 핵심 주제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곧 그만의 독특한 시각적 접근 방식이 반영된 형상들로 나타났다. 복잡한 생물학적 형상과 요소들이 결합된 혼합 형태거나 자연 속 생물체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한 듯한 낯선 모습들이다. 예를 들어 <고슬고슬> 이란 작품을 보면 곤충과 해양 생물, 나비의 날개와 같은 이미지들이 기계적인 설계와 융합된 초현실적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중앙 이미지는 곤충의 머리나 복부를 떠올리게 하고, 외곽의 커다란 날개 모양은 해양 생물의 지느러미나 대형 나비의 날개를 연상시킨다. 동시에 기계부품의 일부를 보는 듯한 느낌도 있다. 이러한 형상들은 수로요 레지던스 기간에 구상한 도예 작품으로도 이어진다. 상하 대칭 구조의 입체 조형을 구상하면서 베어링으로 상하를 연결하여 움직이도록 했다. 이는 도예와 금속이 결합(조립과 분리가 가능)된 조형물로서, 움직임과 형태의 상호작용을 탐구한 결과물이다. 이처럼 임지윤의 작품은 유기적인 곡선과 낯선 물질이 결합 된 것이 특징이다. 이때 정밀하게 그려진 선과 패턴은 움직임(생명력)을 부각시키며, 대칭적 구조를 통해 자연스러운 질서가 규칙성을 형성한다. 그 규칙성은 균형에 대한 강박관념이 무의식으로 작용한 것으로도 보인다. 


돌이켜보면, 임지윤의 2010년대 거대 설치작품에서의 대칭적 구조와 곡선의 변주는 균형과 불균형 사이에서 강렬한 긴장을 유발시켰다. 당시의 복잡한 입체 조형물들은 다양한 시각에 따라 부피, 면적, 밀도, 그리고 느낌이 변화하며, 각도에 따라 선이 도드라지기도 하고 면이 강조되기도 한다. 공중에 매달린 이 입체물들은 어느 공간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이러한 작품들은 공간에 대한 탐구일 뿐만 아니라, 부유하는 정체성과 존재에 대한 자각을 담고 있다.1)


두 번에 걸쳐 수로요 레지던스 작가로 참여하면서 선보인 도예 작품은 평면 작품을 입체화시키면서 공간감과 질감을 더하고, 촉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평면 작품에서 반복표현되는 유기적 곡선은 생명력과 창조적 에너지를 은유하고, 도예 작품에서 감싸 안는 듯한 형태로 변형되어 생명 보호와 동시에 생명 잉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여성의 모성적 특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도예 작품의 일부에서 팽창하는 형상이 생명의 확산과 창조적 에너지가 외부로 방출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촉수 같은 부위가 꿈틀거리며 외부로 뻗어 나가거나 작품의 윗부분이 개방되거나 구부러지는 형태는 생명 방출의 순간을 극적으로 강조하며, 공간과 물리적 상호작용을 통한 감각적 경험을 극대화한다. 


질감 대비 역시 흥미롭다. 도자기의 매끈한 표면과 거친 표면의 질감 대비는 상반된 감각을 조화롭게 연출하며, 양면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작품 속 존재의 복합적 본질을 표현한다. 이 대비는 단순한 시각적 차이 이상으로, 창조적 에너지와 고요한 내면의 균형을 함축하며 양극적 감정의 교차를 은유한다. 이처럼 평면에서 선과 면을 통해 괴이한 형태를 해부학적으로 구상하고, 도예에서는 그 형태가 실질적 물체로 구현된다. 이러한 과정은 작가의 조형적 사고와 2차원에서 3차원의 전환 과정을 통해 시각적 구상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준다. 결국에 평면과 입체의 상관관계는 임지윤 작가가 추구하는 조형적 목표가 선, 면, 그리고 입체적 공간 사이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음을 증명한다. 


살펴본대로 작가 임지윤은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이미지들을 다각도로 해부하고, 다양한 시각적 방식으로 탐구하며, 현실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낯선 형태로 재창조하는 데 몰두한다. 그의 작업은 해부학적 상상력을 통해 생명체 내부를 탐구하는 동시에, 독창적인 유령체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의 생명체의 존재를 반영하는 상징적 장치로 기능한다. 궁극에 레지던스 기간의 평면 작품과 도예 작업 모두에서 강조되는 곡선과 대칭, 그리고 평면과 입체의 유기적 연결은 그의 조형적 탐구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지윤의 작품세계는 지속 성장, 변화하는 미지의 생명체처럼 낯선 형태로 또 다른 변모를 시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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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에는 파리에 정착한 지 20여 년째이지만 여전히 이방인으로 느껴지는 자신과 이제는 고향인 부산에서 조차 이방인이 된듯한 자신을 자각하면서 어느 곳에도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작가 자신이 투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