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델프트에서 온 편지
변종필 | 미술평론가
미스터리 화가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 시대의 풍속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는 미술사에서 미스터리 화가로 꼽힌다. ‘북구의 모나리자’, ‘빛의 화가’, ‘사실화의 대가’ 등 그를 일컫는 수식어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 1962~)의 장편소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2003년에 동일 제목으로 제작된 영화 속 화가로 더 친숙하다.
페르메이르의 삶과 예술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확인되지 않은 일들로 가득하다. 부유한 가톨릭 집안의 카타리나 볼네스와 결혼하기 위해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15명(4명은 어릴 적에 사망)의 자녀를 낳았다는 법적 문서에 기초한 몇몇 사실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성격, 부부생활, 장모와의 관계, 취미 생활, 과학자 안토니 반 레벤후크와의 관계, 사인 등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은 진실과 허구로 뒤엉켜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작품 한 점에서 영감을 얻어 쓴 소설처럼 페르메이르의 삶에 관해서는 생각과 시각에 따라 다양한 추론이나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수수께끼로 가득한 그의 인생이 궁금할수록 그가 남긴 그림에 시선이 끌린다. 어딘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그림은 페르메이르가 살았던 시대상을 짐작해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페르메이르의 유작은 35~40점 정도로 알려져 있다. 1952년 화가들의 길드에 가입해 1975년 43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하기까지 23년여 동안 활동한 것으로 볼 때 작품 크기도 작고, 작품 수도 매우 적다. 1654년 델프트 잡지의 폭발로 인해 그의 초기 작품들이 파괴되었다고 보는 추론이 있지만, 그렇다고 작품 수에 큰 변화를 줄 수준은 아니다. 어쨌든 완성한 작품 수만으로 보면 작품을 팔아서 생활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1660년대 지역 내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고, 부유한 처가 도움도 받았지만, 당시 유럽 한 가정의 평균 자녀 수가 두 명 정도였던 것에 비해서 무려 6배가 많은 자녀를 두었던 그에게는 항상 돈이 궁했을 것이다. 그래서 온전히 그림을 팔아서 아이를 양육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연히 다른 일을 했을 것으로 짐작하기 쉽다. 실제 그는 미술품 거래상과 여관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아 운영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심각한 재정적 문제에 부딪혀 빚에 시달렸고, 결국 해결하지는 못하고 부인에게 막대한 빚을 떠안긴 채 43세에 죽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다음 해에 부인은 파산 선고를 받았다.
작은 그림 속에 담은 빛의 효과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해 찍은 총천연색 사진 같다. 평소 광학적 효과와 기구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호기심은 카메라 옵스큐라와 같은 기구를 사용해 빛과 그림자의 정확한 배치를 포착하여 비교 불가한 수준의 정확성을 자신만의 회화에 적용하였다. 그림을 보면 핵심 부분을 벗어날수록 흐릿하게 나타나는 카메라의 포커스 아웃 기법과 유사한 것이나 공간 구성에서 종종 왜곡된 재현이 나타난 것에서 카메라 옵스큐라를 가이드로 활용한 추론이 사실로 확인된다. 그의 그림은 태연한 듯 느긋해 보이는 단조로운 일상을 담고 있어서인지 현실의 시간과는 다르게 시간이 흐르는 착각을 준다. 그림 속 인물들은 빠르게 움직이기보다는 어떤 동작에서 멈춘 듯하다. 느릿느릿한 속도감과 더불어 색조와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따뜻함과 평화로움을 유지하고 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의 효과를 자연스럽게 살린 기법이 독보적이다. 공간 속 물체나 사람을 표현하는 데 빛의 효과를 나타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빛 사용은 그림자의 미묘한 뉘앙스를 포착하여 3차원성과 실재감을 형성하는 효과를 낸다. 특히 작품에 따른 깊이와 분위기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가톨릭 신앙의 우화>(1671~74)처럼 영적 혹은 신성한 존재감을 느끼게 하거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처럼 부드럽고. 몽환적이면서도 친밀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모델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암시하기도 한다. ‘페르메이르의 빛 효과’는 따뜻한 빛이 들어오는 작은 방에서 일상에 집중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우유 따르는 여인>(1658)의 그림만 봐도 페르메이르만의 스타일이 쉽게 드러난다. 이 그림은 그의 그림 중 소소한 일상을 담은 가장 단순한 장면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그림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다른 그림과 비교해서 오히려 강하다.
45.5x41cm 크기는 작지만 치밀하다. 흰색, 노란색, 파란색을 기본색으로 이토록 차분한 색상 조화를 끌어내는 그림은 흔치 않다. 여기에는 낡은 겨자색 윗옷과 귀한 청금석(라피스라줄리)을 갈아 만든 울트라마린과 색조의 대비로 시선을 유도한 표현이 큰 몫을 했다. 어두운 항아리 속에서 흘러내리는 하얀 우유를 신선하게 보이도록 해서 보는 사람의 시선을 우유에 쏠리도록 표현한 감각도 이 그림의 포인트이다. 그리고 이 모든 효과의 근원은 빛이다. 이처럼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공간 배치에 어울리는 감각적인 색채, 인물의 신분과 일상에 따른 구분, 빛과 그림자의 뉘앙스를 포착하는 표현이 절묘하다. 이러한 그의 조형적 특징은 <저울질하는 여인>(1662~63), <회화의 알레고리><1665~1666), <천문학자>(1668), <지리학자>(1668) 등을 비롯해 원숙기에 접어든 기량과 고요한 초연함이 한층 깊어진 여러 그림에서 공통으로 발견된다.
한가지, 빛의 효과를 살린 기법 중 작은 점들을 엷게 덧칠해 질감을 표현하는 점묘법 일종인 '푸앵틸레'(pointillés)도 빼놓을 수 없다. 진주의 반짝임을 강조하기 위해 몇 번의 하이라이트 붓 터치만으로 반사효과와 주변 표현 대상과 어울리게 빛의 효과를 잘 드러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에서 확인된다.
델프트의 소소한 일상의 풍경
페르메이르의 그림 속 인물들은 대부분 신원미상의 부유한 젊은 여성들이다. 모델 여성들에 관한 정보는 없지만,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지 않고, 건반악기를 연주하고, 편지를 읽거나 쓰는 모습에서 부유한 집안의 여성임을 짐작하게 한다. 물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 속 모델처럼 신비로움이 가득한 여성도 있다. 귀족인지 하녀인지 신분이 모호하고 지위가 불분명한 여성도 등장한다. 페르메이르의 그림 중 부유한 젊은 여성이 등장하는 몇몇 예시 작품을 보면 그의 조형적 특징을 알 수 있다.
우선, 작품표현의 주요 장소로 등장하는 공간 구성이 서로 유사하다. 창문의 빛에서 커튼, 벽을 장식한 그림들, 악기, 테이블과 다양한 사물들, 사 각 패턴의 바닥재까지. 그림의 구성 요소들이 사소한 부분을 빼면 큰 틀에서 매우 비슷하다. 윗줄의 세 작품은 모두 젊은 귀족 여인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첫 번째 그림 속 여인은 뒷모습을 하고 있어 표정을 읽을 수 없다. 대신 거울에 반사된 얼굴과 옆에서 연주를 지켜보고 있는 남성의 얼굴에서 어딘지 묘한 분위기 느껴진다. 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림 속 여인은 연주 중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 순간 돌아보는 모습이다. 이렇듯 그의 그림은 그림 속 인물이 보는 사람을 응시하거나, 관찰자가 몰래 인물들을 들여다보는 듯한 두 가지 형식으로 그렸다. 이는 아래 그림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래의 세 그림은 편지를 읽거나 쓰고 있는 여인이 그려져 있다. 같은 듯 다른 상황의 장면이 흥미롭다. 첫 번째 황금빛 노란 재킷을 입은 여성이 테이블에 앉아 편지를 쓰던 중 관찰자를 응시한다. 단순한 구성에 배경을 전체적으로 어둡게 처리해 다른 그림에 비해 인물의 개성이 돋보인다. 두 번째 열린 창 앞에서 편지 읽기에 몰입해 있는 여인은 창문에 어렴풋이 비친 얼굴이 어딘지 고민이 깊어 보인다. 어떤 내용의 편지인지 궁금증이 커진다. 세 번째는 편지를 쓰는 주인 여성보다 옆에서 창밖을 응시하는 하인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이는 그림이다. 열심히 편지를 쓰기에 몰입한 여성과 대조를 이루는 분위기가 눈길을 끈다.
이상 예시로 든 여섯 작품은 17세기 델프트 여성의 단조로운 일상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이다. 다만, 언급한 내용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일차적 해석일 뿐, 작품마다 모델의 신분과 상황, 다양한 오브제(특히 벽에 걸린 그림들이나 테이블 위 사물)에 따른 상징성과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림에 내재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페르메이르가 그림마다 장치해놓은 사물의 상징성과 인물들과의 관계성을 알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예시 작품들의 내면적 의미와 연출상황의 진실은 단번에 읽어내기 어렵다. 그러나 페르메이르 회화의 조형적 특징인 빛의 효과, 사물성과 질감이 느껴지는 섬세한 촉각적 표현, 관찰자의 시점은 명확히 확인된다.
끝나지 않은 유명세
페르메이르의 이름은 살아있을 때보다 사후에 더 유명해졌다. 1672년 헤이그를 방문한 것을 제외하면, 평생 델프트를 떠난 적이 없는 페르메이르는 지극히 개인적 회화 양식에 머물러서인지 동시대에 끼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잊혀진 화가였다가 19세기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와 같은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들이 페르메이르의 회화 양식을 추종하면서 재평가되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다른 일 때문이다. 1945년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모사한 위작꾼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1889~1947)과 나치 독일의 이인자였던 괴링 장군 사이에 일어난 세기의 위작 스캔들이나 2004년 페르메이르 그림으로 추정된 작은 그림 한 점이 진위논란을 뛰어넘어 경매에서 3천만 불에 낙찰되었을 때 다시금 그의 작품의 진가를 되짚어 보게 했다. 미스터리로 가득한 삶, 신비로운 색채와 빛의 조화를 담고 있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삶과 작품세계는 시공간을 초월해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며 유명세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