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놀이 퍼포먼스 


변종필 | 미술평론가


촉각은 인간의 오감(五感) 중 가장 먼저 발달한다. 그리고 손은 인간의 촉각 중 가장 많은 정보가 들고나는 곳이다. 무엇보다 손은 인간이 오감으로 수집한 정보를 재구성해 표현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실현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다. 특히 조형세계에서 손은 원초적이고 순수하며 솔직하다. 이러한 손의 장점을 살린 핑거페인팅(finger painting) 기법은 안료와 화폭에 대한 정보를 촉각으로 수집하고 둘 사이를 연결해 화면을 만드는데 탁월하다. 손은 붓, 나이프 등의 도구를 이용할 때 재료에 불과하던 안료와 화폭을 어르고 달래며, 쓰다듬고 이끌어 원하는 화면을 실현한다.


아야코 록카쿠(Ayoko Rokkaku,1982~)는 핑거페인팅 화가이다. 록카쿠의 작업 영상을 보면, 손이 그녀의 감정 표현에 얼마나 효과적인 도구인지 알 수 있다. 플라스틱판 위의 안료를 손가락에 묻힌 후 마치 건반을 연주하듯 자유자재로 손을 움직이며 종이(골판지)와 캔버스에 색의 향연을 펼쳐낸다. 그의 예술적 퍼포먼스는 직관적으로 차오르는 감정을 물감 묻은 다섯 손가락을 통해 표출되는 흔적을 그대로 남긴다. 록카쿠의 손가락 끝에서 드러나는 거칠고, 부드럽고, 얇고 두꺼운 다양한 선과 캔버스를 채워가는 다채로운 색면은 독자적 양식의 표현주의적 경향을 띤다.


아야코 록카쿠의 그림은 순수하다. 156cm의 작은 체구를 지닌 록카쿠는 자신보다 큰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마치 아이가 어른을 대하듯 흥미롭게 생각한다. ‘그림을 그릴 때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과 연결되려고 노력한다’는 자신의 말처럼, 록카쿠의 그림은 어린 시절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큰 눈과 긴 팔의 소녀가 등장하는 알록달록한 색채의 꽃과 무지개로 가득한 화면에 스며들어 생기있는 모습으로 반짝인다. 록카쿠의 이미지와 색채는 마치 아이들이 꿈꾸는 몽환적인 풍경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록카쿠의 창작행위는 시작단계부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재, 어디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대중의 시선이 집중되는 열린 공간에서 펼치는 핑거페인팅 퍼포먼스 등 미술계의 일반적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이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비전공자인 록카쿠가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독학으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수줍음 많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그녀가 화실이 아닌 잔디밭을 아틀리에 삼아 거리의 아티스트들과 어울리며 자존감을 높이고, 2002년 도쿄에서 열린 디자인페스타에 참여해 골판지에 핑거페인팅 퍼포먼스로 뜻밖에 관객의 호응을 얻었던 그 지점이 지금의 록카쿠를 있게 한 시작점이었다. 



아야코 록카쿠는 쿠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요시토모 나라 등 일본 현대미술의 ‘아이코닉 스타일(iconic style)’의 계보를 잇는 차세대 아티스트로 꼽힌다. 아이코닉한 스타일은 그 자체로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며, 다양한 세대와 시간을 초월하여 지속적으로 기억될 만한 가치를 지닌다. 가령, 패션 분야에서의 아이코닉한 아이템이나 스타일은 특정 시대나 문화에서 큰 영향력을 미쳤고, 그것이 독특한 고유성을 갖춘 스타일로 여겨진다. 마이클 잭슨의 레드 레더 재킷이나 오드리 헵번의 '티파니의 아침'에서의 블랙 드레스와 같은 패션 아이템은 아이코닉한 스타일의 대표적 사례이다. 록카쿠는 일본 대중문화가 낳은 ‘카와이’(かわいい)캐릭터를 잇는 차세대 화가답게 자신의 분신 같은 귀여운 소녀를 탄생시켰다. 큰 눈과 긴 팔을 지닌 귀엽고 깜찍한 여자아이는 이미 그림 속 주인공을 넘어 록카쿠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가 됐다. 만화 컷의 한 부분들을 옮겨놓은 듯한 여러 모습의 깜찍한 소녀는 누구나 인정하는 록카쿠의 시그니처 캐릭터다.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큰 눈만으로도 시선을 끄는 노랑머리 헤어스타일의 소녀는 다양한 표정으로 관람객을 응시한다. 판지에 독립적으로 그려진 소녀는 토라지듯 샐룩거리는 표정에서 화나고, 놀라고, 못마땅하고, 외롭고, 즐거운 표정까지 매번 다른 감정을 드러낸다. 비슷할 뿐, 같은 표정이 없다. 마치 앞뒤 컷이 생략된 만화처럼 소녀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다. 자연스럽게 관람객은 주변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한편, 소녀와 배경이 함께 그려진 그림은 마치 소녀가 배경을 그리고 있거나, 소녀가 꿈꾸는 세계에 빠져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뚜렷한 형상 대신 소녀의 감정을 대변하는 선과 색으로 회화성이 강해졌다. 이처럼 록카쿠의 작품은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나 아름다운 화면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이 경험한 ‘카와이’와 ‘애니메이션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접목시킨 독창적 화면으로 새로운 시각과 경험을 제공한다. 그림이 누군가의 마음에 행복함을 주기 시작할 때 화가는 처음 의도와 달리 자신의 그림에 새로운 희망을 담게 된다. 록카쿠 역시 처음에는 어떤 특정한 의도 없이 그렸지만, 관람객들의 반응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모은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선보였다. 예컨대 2010년 록카쿠가 참여한 어바웃어스(About Us)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연결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로 200개 이상의 그림을 그리는 열정으로 자신의 그림이 지닌 역할의 확장을 시도했다. 


아야코 록카쿠는 차세대 일본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언급될 때마다 일본 현대미술의 거장들과 비교된다. 하지만 록카쿠의 그림은 무라카미 다카시, 쿠사마 야요이, 요시토모 나라 등의 작품 세계가 가진 시대 문화와 배경, 판타지적 요소, 고유의 세계관과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스스로 밝혔듯이 잭슨 폴록과 사이 톰블리의 영향이 더 직접적이다. 이는 록카쿠의 기법과 작품에서 확인된다. 특히 핑거페인팅 퍼포먼스는 록카쿠 회화의 독자성을 명증하게 해주는 단단한 요소이자 록카쿠 회화가 지닌 확실한 힘이다. ‘손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안내하며, 말보다 강력해요’라는 고백처럼 록카쿠의 상상력 놀이 퍼포먼스는 록카쿠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록카쿠의 성공을 보면,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계미술시장에서 컬렉터들의 단골 수집대상 리스트에 링크되는 것은 작가라면 누구나 바라는 희망사항이다. 록카쿠처럼 미술대학 정규 커리큘럼을 거치지 않고 아마추어의 길을 걸었던 화가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미술비전공자는 미술대학이나 미술사에서 반복되는 특정한 조형문법이나 규칙에서 자유롭다. 이러한 자유는 기존 미술계의 관성을 벗어나 파격을 실천하기가 용이하다. 그러나 그 자유는 위태롭고 무모한 행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자신만의 독창적인 캐릭터와 스타일로 미술계에서 주목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 점에서 ‘마음 가는 대로 자기 맘껏 표현’하는 록카쿠식 조형언어가 미술시장에서 소장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통하고, 경매시장에서 높은 낙찰가로 미술계를 놀라게 한 일은 그 자체로 이슈다. 여기에는 본능적 감각을 표현할 수 있는 록카쿠만의 남다른 퍼포먼스(예: 2022년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24시간 라이브 페인팅을 선보인 퍼포먼스)가 큰 원동력이 됐다. 자신을 브랜딩하는 방법을 아는 화가의 창작행위는 주목받기 마련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예술의 전당의 <아야코 록카쿠: 꿈꾸는 손> 특별전은 록카쿠의 조형세계는 물론 신진 무명화가가 이슈를 몰고 다니는 상업 화가로 성장한 과정을 살펴볼 만한 전시다. 전시는 전체적으로 어린아이와 젊은 세대의 관심을 집중시킬만한 기획이다. 인트로 섹션부터  출구까지 록카쿠의 삶과 작품세계를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게 구성했다. 주제별 6개의 섹션을 중심으로 판지 위에 그린 초기원화와 다양한 매체 위에 표현을 시도한 실험적 작품, 대형 오브제를 포함한 델레이브 패밀리의 130여 점의 소장작품, 작가연보 타임라인, 애니메이션(About Us), 체험형 인터렉티브 등의 구성을 통해 록카쿠의 작품세계에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다. 230cm 높이의 소녀 오브제(<고스트 래빗>)나 루이비통 제품에 드로잉한 작품, 아야코와 델레이브 15년간 협업 기념 한정판 세라믹 도자기 등 미술시장에서 성공한 작가들이 시도하는 퍼포먼스형 콘텐츠도 빠지지 않았다. 이러한 시도는 세계미술시장에서 성과를 낸 일본 출신 미술가들의 상업미술 성공사례와 닮았다. 한마디로, 미술시장에서 핫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작가답게 다분히 상업적 성격을 강조한 구성이다. 특히 디렉터 니코 델레이브(Delaive, 1957~)와 2006년부터 맺어온 작가와 후원자의 밀접한 관계와 무라카미 다카시의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가 2006년 주최한 게이사이 아트페어(GEISAI Art Fair)에 참가한 인연이 록카쿠의 성공의 발판이 된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미술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술시장을 분석하고, 세계미술시장에서 핫한 작가를 넘어 예술기업가까지 불리는 무라카미 다카시와 같은 경험자의 이야기는 록카쿠의 창작활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은 자명하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어떤 것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만 알아도 시간을 헛되이 소비하지 않는다. 록카쿠의 오늘의 성공은 자신만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2007년 천만원대 수준의 그림이 현재 평균 2-3억대(최고가 16억 7천만원)로 거래될 정도로 성장한 아야코 록카쿠. 이는 20여 년 전 공원잔디밭에 앉아 판지 위에 손가락으로 천진하게 그림을 그렸던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결국에 <아야코 록카쿠: 꿈꾸는 손> 특별전은 록카쿠의 ‘꿈꾸는 손’이 펼치는 상상력 놀이 퍼포먼스의 독보성과 함께 록카쿠의 독창적인 그림의 잠재력을 간파한 이들의 안목과 힘이 미술계에서 어떻게 작용되는지 살펴볼 만한 흥미가 있다. 



1차 게재 아트인컬처 2024년 2월호 리뷰